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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메
 고르메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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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메라는 바닷말

고르메, 고르매라고 하는 바닷말이 있다. 제법 나이든 사람 말고는 바닷가 사람들도 대체 그게 뭔가 고개가 삐끗 꼰다. 바닷가 사람이 그럴진대 바다에서 뚝 떨어진 데서 사는 사람들한테야 오죽하겠나.

고르메는 파도가 없는 갯바위 안쪽에서 자란다. 초겨울부터 나기 시작해서 김이나 파래보다 먼저 나온다. 손으로 뜯기도 하지만 전복껍데기나 섭 껍데기 같은 걸로 긁거나 훑듯이 뜯는다. 그런 다음 갯돌에 얼기설기 놓아 콩콩콩 찧고 빨래하듯 바닷물에 여러 번 헹궈야 깨끗하다. 그리곤 그물 발이나 김발에다 이래저래 얽듯이 널어 햇볕에 바싹하니 말려야 하니까 꽤나 품이 든다.

김보다는 투박하고 두툼한 데다 모양새가 누덕누덕하다 해서 '누덕나물'이라는 별명도 있다. 갯바위에서 뜯다 보면 김, 파래, 고르매를 마구 섞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것저것 섞인 채로 말린 건 '막나물'이라고 한다. 고르메는 음력 동짓날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입에든 코에든 가장 맛이 좋을 때다. 이때를 놓치면 재철 맛을 느낄 수 없을뿐만 아니라 고르매는 마디마디에 물이 차는 까닭에 모래 알갱이 같은 게 씹혀 먹지 못한다.
 
잘록이고르매
 잘록이고르매
ⓒ 국립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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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모르는 사람이 알 수 있게 풀어줘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리매'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생명』 고리맷과의 해조(海藻). 몸의 길이는 15∼60cm이며, 몸 군데군데에 잘록한 주름이 있고 혁질(革質)이다. 조간대(潮間帶) 부근의 바위에 붙어 살며 전 세계에 분포한다. (Scytosiphon lomentaria)
 
우리 말 사전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성의없고 불친절하다. 독자 처지에서는 단순히 어떤 말이 사전에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부러 사전을 펼치는 사람은 고르매가 어떤 빛깔을 띠는 바닷말인지, 물속에서 자라는지 물밖에서 자라는지, 다른 바닷말하고는 어떻게 다른지, 먹을 수는 있는 건지, 모양이나 습성은 어떤지를 알고 싶은 거다.

사전 풀이에서 '해조(海藻)'를 '바닷말'로 바꿔 말하면 어땠을까. '해조'나 '해조류'만 쓰다보니 '바닷말'이라는 말이 이제는 세상 바깥으로 밀려날 처지에 이르렀다. 뒤에 오는 '혁질'이란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가죽처럼 질기고 억세다'로 바꿔 말해 주었더라면 누구라도 알아들을 말이다. 한글로 적어주고 묶음표 치고 한자를 적어준다고 해서 사전이 할 도리를 다한 게 아니다. 한글로 적어줘서 고개 갸웃대는 사람한테 묶음표 치고 한자를 적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조(海藻), 혁질(革質), 조간대(潮間帶)' 같은 말은 한자를 알아야 낱말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나라면 이렇게 풀이하겠다.
 
고릿맷과에 드는 바닷말로 잘록이고리매, 꼬인고리매, 매끈이고리매 따위가 있다. 우리 나라 어느 바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폭은 3∼8밀리미터, 길이는 50∼6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긴 대롱이 마디마디 붙은 모양새로 자란다. 초겨울에 나기 시작하는데 어릴 때는 누런 갈빛이다가 쇠면 어두운 갈빛이 된다. 파도 치는 갯바위 안쪽이나 방파제에 붙어 자라기를 좋아한다. 4월까지 한 철만 나는 바다 나물로 긁거나 훑어 뜯은 다음 김 말리듯 하는데 김보다 두껍고 거칠며 누덕누덕하다. 말려서 들기름을 살짝 발라 구워 먹는데 이를 '고리매자반'이라고 한다. 김, 파래와 섞어 말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막나물'이라고 한다. 동해 바닷가에서는 '고르메, 고르매, 누덕나물'이라고 하며 동해안 시골장에 가면 김타래처럼 묶어 드물게 볼 수 있다.
 
쉬운 말이 민주 세상 평등 세상을 만든다

글자를 읽는다고 뜻을 온전히 아는 게 아니다. 이제 한글을 막 깨우친 아이라고 생각해보라. 한글로 적어놓은 글이나 간판, 기사 제목을 줄줄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읽고도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고 뜻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테면, 코로나19로 학교에서고 가정에서고 일상으로 쓰는 말이지만 "발열체크, 원격수업, 등교수업, 대면수업, 방역, 밀집도, 유증상, 기저질환, 동선, 자가격리" 같은 말에서 아이들은 아득해지곤 한다.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쉬운 말을 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상상해 보라. 아이와 어른,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초등학생과 과학자가 말과 글로 막힘없이 생각을 주고받는 세상을. 그런 세상이야말로 민주 세상이고 평등 세상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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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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