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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른 체형 아니었나?
▲ 정말인가? 원래 마른 체형 아니었나?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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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는 나를 아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아우라다. 아이가 넷이라는 정보가 사람들의 뇌리에 입력되는 순간 그 아우라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경외심 1, 경각심 2, 측은지심 7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지쳐 보이고, 말라 보이고, 안 돼 보이는 그런 아우라. 그게 내게 있다.

힘든 건 사실입니다만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살이 빠진 것은 아니다. 원래 마른 체형이다. 그런데 아이가 셋이 되고부터 말랐다는 얘기를 부쩍 많이 듣게 됐다. 배경효과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기승전애넷이다.

셋째가 생겼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짐승'이라 부르며 인류에서 제외시켰고, 넷째 소식엔 '머신'이라며 나를 생물에서마저 탈락시켰더랬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겐 면목없지만 나름 근거 있었고 인정하는 바였다. 이미 벌어진 일. 나는 그만큼 강력하고 초월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북돋았다.

그런데 막상 '넷'이 현실화되고 나니, 그들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물 자격도 주지 않던 냉철했던 사람들이 어디서 인류애를 배웠는지 얼굴을 구겨가며 앞다투어 걱정들이다.

애들 먹여 살리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걱정. 몸이 남아나질 않겠다는 걱정. 애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걱정. 나도 걱정돼서 걱정인데 같이 걱정해주니 걱정이 더 커져 버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돼 버려 걱정이다. 뜻하지 않은 걱정 1+1+1+1+.....

그러다 보니 어디서 피곤하다는 말을 하면 모두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잠을 설쳐서 피곤하든, 늦게까지 영화를 봐서 피곤하든 언제나 결론은 정해져 있다. 심지어 어제 늦게까지 술을 같이 마셨음에도 첫 번째 짐작은 육아로 낙점이다. 누구 때문에 늦게까지 마셔줬는데 아이들에게 덤터기를 씌운다.

사람들의 말대로 아이들을 먹이려고 등골이 휘고는 있다. 하지만 아이들 먹이느라 부모가 잘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맛난 것은 남아나질 않는다. 대신에 건강한 음식은 제법 남아서 내 배로 들어온다. 못 먹어서 살이 빠졌다는 말이 결코 맞지 않는 이유다. 큰 손을 가진 아내 덕에 요즘 너무 잘 먹고 있어 나까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휘고 있는 등골에 면목이 없다, 정말.

아이가 둘이 되고부턴 육아의 강도가 그리 커지지 않았음에도 '넷'이라는 비현실적인 수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당하고 만다. 그리고 갖가지 상상으로 나의 힘듦을 창조해낸다.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하며 입을 살짝 벌리고 자연스레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려운 육아
▲ 쉽지 않은 일. 어려운 육아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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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그들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빠듯한 것이 사실이다. 건강하게 많이 벌어야겠다는 말은 정답이다. 바른 답이 아닌, 꼭 그래야만 하는 정해진 답. 엥겔 지수가 극빈층으로 향해가고 있는 요즘, 산 입에 거미줄은 안치는데 바짝바짝 마르기는 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웃음)

육아가 쉽지는 않다. 계좌는 언제나 0으로 수렴하고 손목, 무릎, 어깨는 시리고 목과 허리는 뻣뻣하기 일쑤다. 그래도 몸과 계좌가 쪼그라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쪼그라듦. 그게 가장 문제다. 한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기 어려워 다투는데 네 아이의 마음을 보듬는 것은 가히 '득도'의 길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더군요

몸도 몸이지만 정말로 홀쭉해진 것은 마음이었다. 옛말 틀린 것이 없다고 자식 수만큼이나 걱정도 늘면서 마음을 졸이는 날이 많았다. 하루걸러 하루 돌아가며 열나는 아이들, 열성경련으로 응급차를 경험한 막내, 이마가 찢어져 한밤중 응급실에서 이마를 꿰맸던 셋째, 원인 모를 질병으로 2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졌던 둘째, 친구의 무심한 행동에 눈물을 흘렸던 첫째. 돌이켜 보면 지금도 아찔하고 걱정됐던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났는지 아득해진다.

사람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는 순간순간. 나는 많이도 힘들었다. 나의 고달픔이 아이의 아픔을 낫게 해주지 못해 답답했고 내 부족함이 아이의 부족함이 되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도 마음이 유독 힘이 들었더랬다. 어디 부딪힐까 항상 신경이 곤두섰고 위험하거나 해로운 것을 만지지나 않을까 항상 "안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수많은 "안돼"의 향연 속에서 되지 않은 것은 없었고 아이들은 어떻게든 자라났다. 모든 것이 내 능력 밖이었다. 
 
아빠의 반복되는 바람에 바람
▲ 바람 아빠의 반복되는 바람에 바람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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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지가 흔들린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붙잡아 둘 수도 없고 어떡하든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도 없다. 그래서 별수 없이 마음을 붙들었다. 괜찮아질 거라고, 이것도 다 지나갈 거라고, 커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갈대처럼 나부끼는 나를 붙잡았다. 가지가 제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건, 세찬 바람 앞에서도 우뚝 선 뿌리 깊은 나무 덕분이 아니겠나.

바람 잘 날 없는 가지들이 서로 부대끼며 싱그러운 소리를 들려준다. 무성한 잎으로 일상이라는 뙤약볕 속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게 사는 거구나 싶다. 걱정과 기쁨이 한데 어우러지는 판타스틱 환장 교향곡. 슬픔과 애환이 서린 폭소 만발 격정 '애'로맨스. 한숨과 웃음이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이 일상이 삶이 아니면 무얼까.

그 속에서 살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 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나의 든든한 백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아이가 있어서 못하는 게 많겠다"거나 "아이가 넷이라 어디 다니기도 쉽지 않겠다"는 걱정을 많이들 한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덕분에 하는 것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운동, 독서와 같은 것들은 어찌 보면 네 아이들 덕분에 꾸준히 하게 된 것들이다. 아이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체력에 운동기구를 들었고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졌음 하는 마음에 책을 들었다. 덕분에 빈약하지만 근육이 붙고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다.

그리고 '한계 힘듦 효용의 법칙'이 예외 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 무등을 태우는 횟수는 변하지 않았다. 한 명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은 기만이나 요령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수학적인 결과다. 하루 24시간과 하나뿐인 몸이라는 입력에 의한 결과. 그래서 항상 당당하다. 난 마지노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육아. 쉽지 않다. 그로 인해 얼굴이 초췌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렴 전혀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너무 신나게 놀아도 몰골이 망가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꼭 그리 안쓰럽게 보지 않아도 된다. 저... 너무 즐겁게 잘 놀아서 그럴 때도 있으니까.(웃음)

그나저나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이렇게라도 신경 써 주니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감사한다. 고마운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잘 키우려 즐겁게 노력해야겠다. 금방 자라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때, 아쉬움이 조금은 줄도록... 
 
작은 그늘이라도 만들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아빠의 작은 바람 작은 그늘이라도 만들 수 있어 행복합니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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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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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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