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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른 서울시청 구 청사, 현 서울도서관입니다. 비록 건물의 앞부분만 남고, 건물 뒤로 파도 같이 생긴 신 청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마음 속 시청의 모습은 서울도서관 건물이네요.

원래 조선시대 한성부 청사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쪽의 세 번째 자리에 있었는데요, 19세기 후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 앞쪽으로 옮겼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옮겼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바꿨고, 현재 중구 신세계백화점에 있었던 청사를 지금의 위치에 새롭게 지은 현 서울도서관 건물로 이전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을 가렸듯 경성부 청사가 덕수궁 바로 앞에서 망국의 백성들에게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한 것이죠.

일본은 이로써 조선총독부-경성부청-서울역-용산으로 이어지는 도심축을 완성했고, 식민지 조선의 중심지 한성을 한층 효율적으로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백성들의 삶은 그만큼 각박해졌을 겁니다.

혹자들은 이 건물이 위에서 보면 본(本)자 모양으로 대(大)자의 북악산, 일(日)자의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일제가 한성의 중앙에 대일본(大日本)을 박았다고 주장합니다. 명산에 말뚝을 박았다는 소문처럼 풍수지리적으로 조선의 기운을 분쇄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진으로 보건데 이는 과한 추측인 듯싶습니다. 대(大)자도 잘 그려지지 않거니와 서울시청 구 청사를 아무리 봐도 본(本)자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만큼 일본의 수탈이 심하다 보니 식민지 백성들 사이에서 퍼진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서울시청 구 청사의 역사를 보려면 서울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3층과 5층을 가면 됩니다. 3층에는 과거의 시장실이 있고, 5층에는 철거하고 남겨진 건물의 잔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3층 시장실은 볼 수 없네요.

5층에서 구 청사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문민정부 때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조선총독부 건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 그때는 이렇게 보전할 생각을 못했는지. 위치가 문제였다면 이전하면 됐을 것을 왜 그리 급하게 없앴어야 하는지. 아마도 그것은 식민지 시대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의 한계 때문이었을 겁니다.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서울시청 구 청사.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과거를 되새기며 역사의 교훈을 얻길 바랍니다. 


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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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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