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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SNS를 통해 도축장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새벽이'를 알게 됐다. 새벽이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한 살을 넘긴, 보기 드문 돼지다. 대부분 돼지는 6개월이면 도살되어 그 이상 자란 돼지에 대한 정보와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새벽이의 한 살은 특별하다. 새벽이의 삶은 돼지들의 잊힌 삶을 보여준다.

새벽이는 바나나와 수박, 감자와 고구마를 좋아하며 진흙 목욕과 푹신한 흙 위를 맘껏 뛰노는 걸 좋아한다. 새벽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도록 할 수 있었으면, 새벽이가 고기 아닌 돼지로 제 나이에 숨을 거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6개월 된 어린아이를 삼키며 이어지는 폭력의 체제 앞에 나는 수많은 새벽이들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동물로 태어남

내가 아주 우연하게 인간으로 태어났듯 그들도 우연히 동물로 태어났다. 우연히 동물이 된 그들은 고기로, 실험체로, 볼거리로 태어나 그 목적을 다 하고 이 세상에서 짧은 생을 끝낸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이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매정하지 않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이며, 공감의 대상은 같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축장에서 피 흘리는 돼지를 상상하며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벌의 모피를 위해 수많은 동물이 잔인하게 희생되는 진실을 알게 된다면 단지 멋을 위해 생명체의 죽음을 몸에 두르기 힘들어진다.

이처럼 약자에 대한 가해의 목격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곧 수긍하게 만든다. 연민에서 비롯한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 게다가 우리는 편리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약자의 희생이 필요하다 믿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 희생과 고통에 무뎌져야 우리가 괴롭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끔찍한 일은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p.133

이 끔찍한 체제를 인간의 감수성 하나만으로 견뎌내라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책 <동물주의 선언>은 동물에 대한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을 넘어 정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과거와 현대를 촘촘히 들여다보며 동물의 고통이 어떻게 인간의 고통으로 되돌아오는지 설명한다. 동물을 향한 폭력과 인간을 향한 폭력의 근본적 속성이 같은 것임을 이야기한다. 동물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임을 인식할 때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동물주의 선언> (저자 코린 펠뤼숑, 출판 책공장더불어)
▲ ▲ <동물주의 선언> (저자 코린 펠뤼숑, 출판 책공장더불어)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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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

속도와 이윤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약한 존재에 대한 착취는 묵인된다. 저자는 데리다의 말을 빌려 우리가 '연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는 성장을 위해,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마음의 안식을 위해 연민과 고통을 통제한다. 사회의 고통이 가중될수록 고통 앞에 눈 감기를 택한다. 그렇게 동물들도 우리처럼 세상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잊고 이들의 '당연한' 죽음에 익숙해진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다. 동물학대는 대개의 경우 사람을 향한 폭력의 징후, 특히 가장 약한 사람, 즉 옛날에 노예라 불리던 사람들, 어린이, 여성, 장애인, 수감자를 향한 폭력의 징후이다. 우리가 오늘날 동물에게 자행하는 일을 이해하려면 단지 악을 고발하거나 악의 징후를 관리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근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근원은 동물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다른 사람, 다른 국가와 맺고 있는 관계 또한 포괄한다." p.19

그런 우리는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들을 향한 착취와 폭력에, 차별과 배제에 둔감해지고 적응해간다. 파괴되는 환경과 기후위기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치부하며 당장의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타자의 지옥을 외면하며 얻은 평화다. 

저자가 여러 페이지를 통해 전달하듯, 모든 존재의 고통은 연결되어 있고 그 고통 위에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평화와 행복은 없다. 우리가 침묵한 무분별한 동물착취, 식용으로 발생한 신종바이러스들은 인간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으며 점점 더 빨리, 더 큰 규모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환경파괴에 눈 감은 결과 숨조차 편히 쉬기 어려운 공기와 유례없는 장마를 경험하고 있다. 아프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무겁다는 이유로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용기를 오랜 시간 가지고 있을 인내가 필요하다.

동물과 정치

그 용기를 실질적 문제해결로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동물을 위한 정치다. 동물착취 구조는 자연스러움 속에 숨겨져 있다. 동물을 착취하는 건 너무나 그럴듯하고 당연하지만, 그 착취를 끊고 동물을 그 자체로 존중하자는 시각은 저자의 말처럼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노예제도', '아동노동'도 당연하게 행해지던 때가 있지 않던가. 어느 시대에는 당연했던, 인간을 향한 폭력적인 제도가 사라지는 이유는 윤리와 철학의 영역에 끊임없이 정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차별과 폭력의 철폐가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믿음이 오늘날의 정치 의제가 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착취의 종말이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공동의 믿음이 있다면, 착취가 아닌 동물을 그 자체로 존중하자는 말이 허무맹랑하지 않게 될 거다. 이를 위해선 동물착취 구조의 모순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전달할 것이며, 그 정의로운 사회가 보여줄 또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고 제시하는 '동물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전망이 동물착취의 종말이라면, 단기적인 전망은 "빠른 시간 내에 동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결정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p.89). 이를 위해 저자는 '동물권리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제안'을 한다. 당장 합의 가능한 실제적이고 절박한 요구들부터, 인간의 욕구·편의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사육장과 도살장, 음식과 패션 등 산업 일반에서의 변화와 혁신을 제안한다.

정치가 동물착취의 종말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함께하며 힘을 싣겠다고 다짐한다. 내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고통이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겠다. 나로 인해 고통받고 파괴되는 수많은 동물과 환경을 똑바로 인식하고, 그 파괴와 고통에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겠다.

우리는 늘 그러했듯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내디딜 것이다. 고기로 태어나 고기로 죽는 이들을 위해, 인간을 대신해 수많은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이들을 위해, 10년 20년 100년 후 세상이 지금보다 아프지 않기 위해 불편과 고통을 마주하길 피하지 않겠다. 가장 연약한 존재들까지 존엄할 수 있는 사회가 모두가 존엄할 수 있는 사회임을 믿는다. 우리에게는 도달해야 할 미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벼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동물주의 선언

코린 펠뤼숑 (지은이), 배지선 (옮긴이), 책공장더불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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