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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유럽연합)은 2019년말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국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어 2020년에는 농업 분야의 기후와 환경을 다루는'생물다양성 전략(EU Biodiversity Strategy for 2030)','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Farm to Fork Strategy)'도 연달아 발표했다. 이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가 2021~2027년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e Policy)에서 기후와 환경성을 강화하기로 한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정석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참사관은 EU의 핵심 전략인 유럽 그린딜이 정치·경제·사회 구조는 물론 농업분야에서도 많은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 평가한다. 기후와 환경의 위협이 강조되면서 농업 분야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 국민과 인류의 건강과 환경에 기여하리라는 예측이다.

이 참사관은 2021~2027년 공동농업정책이 기후·환경 목표 달성을 위한 새로운 정책모형(green architecture)을 제시한다고 전한다. CAP(공동농업정책)는 유럽의 안정적 식량 생산을 핵심목표로 1962년에 탄생, 2014~2020년 공동농업정책에서 농업의 공익성과 환경성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 가능한 자연자원 관리에 대한 지원'을 5개 목표 중 하나로 추진했다.

기후변화 대응, 환경보호, 경관보존의 '진짜 농민' 감별
 
독일 바이에른주의 ‘문화경관직불금’을 설명하는 켐텐시 농업국장.
▲ 바이에른 직불금  독일 바이에른주의 ‘문화경관직불금’을 설명하는 켐텐시 농업국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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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럽의회와 환경단체들은 그러한 공동농업정책이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가령 농업인들이 환경과 기후 보전에 기여하는 농업 실천의무를 준수하면 기초 직접지불금에 추가되는 녹색직불금(green direct payment)이 온실가스 감축과는 직접적 관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이에 EU 집행위는 2018년 6월 차기 공동농업정책 개혁안을 발표,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여건 변화 등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개혁안의 목표 9개 중 3개 항목을 기후변화 대응, 환경보호, 경관보존 등 기후 및 환경 관련 조항으로 명시, 차기 공동농업정책 예산의 40%를 이들 3개 목표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기후·환경 목표 달성을 위해 새로운 정책모형의 핵심은 우선, 농업생산을 환경보호 조치와 연계하는 조건성(conditionality)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농민들은 EU 직불금제도 규정에서 정한 건강, 동식물 위생, 동물복지와 관련된 우수농업환경조건(GAECs; Good Agricultural and Environmental Conditions) 등의 각종 기준은 물론 환경과 기후 요건들을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농업·농법을 실천하는 농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려는 친환경제도(ecoschemes)를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정밀농업, 유기농업, 생태농업, 탄소농업, 혼림농업, 동물복지 축산 등의 새로운 농법을 EU 회원국들은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2021년 공동농업정책(CAP) 개혁안'은 한국 농정에도 다양한 시사점과 혁신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농정의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직불금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한층 강화한 점이 특히 주목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이 적고 의무사항 이행여부 점검에 행정비용이 과다하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온 기존 녹색직불금을 폐지, '생태직불금'을 새롭게 신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환경보전 활동에 참여하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즉, 농민 소득보장 성격이 강한 기존의 직불제에서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대한 농민의 참여도에 따라 차별적 차등 보상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개혁안에서는 '진짜 농민(genuine farmers)'의 개념도 새로 제시했다. 실제 농업 생산에 기여하는 농민들을 선별해 직불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조치다. 이는 무자격 직불금 수혜자를 방지하려 2013년에 도입한 '적극적인 농민(active farmers)'개념이 세부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앞으로 EU 회원국들은 농민의 소득, 농업노동 투입 조건 등을 따져 '진짜 농민' 여부를 가려야 한다.

친환경, 생물다양성 회복 푸드플랜을 '농장에서 식탁까지'
 
태양광발전소가 결합된 친환경축사에서 동물보호적 사육방식으로 방목해 키우는 독일 슈베비쉬할 농민생산자협동조합의 회원농가.
▲ 슈베비쉬할 돼지  태양광발전소가 결합된 친환경축사에서 동물보호적 사육방식으로 방목해 키우는 독일 슈베비쉬할 농민생산자협동조합의 회원농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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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EU 집행위가 발표한 이른바 '농장에서 식탁 전략'은 식품 공급체계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종합계획이다. 식품의 지속 가능한 생산·가공·유통, 소비와 손실 예방,식품 안전성 확보 등이 주요 목표이다.

먼저, 2030년까지 농약 사용과 위험도 50%, 비료 사용량 최소 20%, 토양의 영양 손실률 최소 50%를 감축한다. 축산물과 양식수산물 관련 항생제 판매량도 50% 감축한다. 특히 농약 사용 감축을 위해 병해충종합관리(IPM) 조항을 강화하고 비료 과다사용으로 인한 토양·수질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영양종합관리(INM) 실행계획도 마련한다. 유기농업의 농경지는 25%까지 확대한다.

함께 발표된 '생물다양성 전략'은 2030년까지 유럽의 생물다양성을 본격 회복시킨다는 목표다. 자연, 농지, 토양, 산림, 재생에너지, 해양과 담수 생태계, 도시, 침투 외래종 등 분야에서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제시했다. 가령 세부적인 실천지침으로, 농경지 중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 비중을 10% 이상 확대하고 3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 그린딜의 핵심 전략·정책으로서 '공동농업정책' 개혁안,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 '생물다양성' 전략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고 연동되는 한묶음의 포스트 코로나 융복합농정 혁신전략이라 볼 수있다. 식량 생산과정에서 농약과 비료의 사용을 줄이면 자연과 생물다양성이 보전되면서 지속 가능한 식품 공급체계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EU가 농업 분야에서의 환경성을 강화하는 목적은 분명해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기후변화 목표 달성, 생물다양성 협약 이행에서 국제사회를 선도하고 농식품 관련 세계무역질서를 주도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다. 따라서, 그린뉴딜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농정당국은 물론 현장의 농부들조차 최근 EU 농정의 변화와 전망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그린뉴딜은 '농촌재생 및 지역활성화'에서부터
 
스위스 미그로소비자협동조합의 목표와 가치는 ‘지역으로부터, 지역을 위해’
▲ 미그로  스위스 미그로소비자협동조합의 목표와 가치는 ‘지역으로부터, 지역을 위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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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농정의 활로를 농촌재생, 도농상생을 통한 지역활성화에서 우선 찾고 있다. 인구 과소화, 주민 고령화, 농가 양극화에 시달리는 농촌의 문제, 인구 과밀, 불안한 가계경제, 극심한 부동산경기, 교통 혼잡 등의 복합적인 구조적 난제를 안고 있는 대도시의 문제를 동시에 풀려면 농촌부터 재생해 지역을 활성화해야하는 게 최상의 출구라는 절박한 인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주인 박사는, 농촌재생은 현재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과 농업인뿐 아니라, 도시민을 포함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쌍방향을 동시에 지향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정확한 진단이다. 인적자원을 유치, 활용하기 위한 생활 및 생업의 기반 구축, 다양한 유형의 도시민 주거공간 및 경제사회 환경 조성 등을 주요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와 환경 변화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위험관리 방안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의 농민들은 잦은 기상이변으로 만성적인 재해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19는 물론 가축질병도 스스로 예측하거나 대응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적인 위험요소다. 농업재해보험, 소득지원 정책, 고용보험 도입, 농업경영위험 관리 등 농정당국은 물론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위험관리시스템이 절실하다.

근본적으로는 그린뉴딜, 저탄소농업으로 농업생산구조와 방식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정책이 시행되면 농업부문도 온실가스 감축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를 위해 선택형 공익직불제와 연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실제적인 '진짜 사회적 농민'들의 실제적인 진정성있는 농업활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직불금으로 보상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저탄소영농기술, 녹색금융(펀드, 보험) 등의 제도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미래농정에서는 청년 농업인들이 주도하기에 적절한 디지털농업도 중요하다. 기존 정밀농업이나 스마트농업보다 생산, 유통, 소비 등 농업활동 전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적극 활용, 빅 데이터의 AI 분석으로 농업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농정당국에서는 농가에서 생산된 데이터와 유통, 소비단계에서 발생한 실증데이터 및 공공데이터를 수집·분석·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먹거리 정책은 삶의 질 유지, 안정적 식량공급, 식량안보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지역먹거리 선순환 체계 구축, 지역단위 푸드플랜 등을 기반으로'국가식량계획'의 진정성과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유럽은 지금, 보건・의료 뿐 아니라 생태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숙제이자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른바 '그린딜'로 경제구조의 생태적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시스템을 강화, 화석연료를 최소화하면서 EU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그린 뉴딜' 시스템을 본격 구축,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유럽은 코로나로 상징되는 기후와 환경 위협 시대에 '연대의 공동체'를 강화하고 있다. 기후, 환경, 생태 다양성이라는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약속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 중심에, 그 선두에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유럽의 농업'이 있다. 농업의 주인공이자 농촌의 주인인 '진짜 사회적 농민'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도시와 농촌, 중앙과 지역, 농민과 도시민이 모두 함께하는'협동과 연대의 대안국민농정'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농정의 살 길이다.

 
독일 카를스루헤시 클라인가르텐협회에 걸려있는 다산의 하농-중농-상농 철학
▲ 카를스루에 클라인가르텐 독일 카를스루헤시 클라인가르텐협회에 걸려있는 다산의 하농-중농-상농 철학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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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입니다. <농부의 나라>, <행복사회 유럽>, <농민에게 기본소득을>을 썼습니다.


태그:#EU, #농정, #사회적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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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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