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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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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23일)부터 방한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71). 그가 누구인지 프로필을 확인하다 흠칫 놀랐다. 외교장관으로 처음 임명된 해가 지난 2004년. 무려 17년 전이었다. 무소불위의 '21세기 차르'로 불리우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등극'한게 지난 2000년. 그의 길고 긴 임기 대부분을 외교수장으로 함께 해온 것이다.

4년 먼저 대통령이 된 푸틴이 3선 제한에 걸려 후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에게 4년간 자리를 내준 적이 있으니, 두 사람은 거의 동일한 기간의 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셈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아르메니아 출신 아버지와 조지아 출신 어머니를 둔 그는 지난 195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물리학을 좋아했으나 당시 소련의 국제무역부 공무원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고교 졸업 후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에 입학해 72년 졸업한다. 이 때 배운 신할라어(스리랑카공용어), 디베히어(몰디브공용어), 영어, 프랑스어 등이 이후 그가 외교관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된 밑바탕이 된 듯하다.

MGIMO를 나오면 일정 기간 외무부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졸업 직후 스리랑카대사관에서 현지 사정을 분석하는 자문관 겸 통역관으로 일했다. 4년 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뒤 80년대 들어 UN 소련대표부에서 선임 자문관으로 일하며 외교관으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키워나갔다.

능력 인정받은 정통외교관... "푸틴과 개인적 인연은 미지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의 외교관이 된 라브로프는 마침내 2004년 푸틴 대통령에 의해 외무장관에 임명된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푸틴이 '실세총리'가 돼 잠시 물러나고 후임인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에게 자리를 내준 기간에도 외무장관 자리를 유지했다. 푸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오랜 외무장관 경력으로 많이 알려진 얼굴이지만,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공무원이자 직업 외교관이다. 외무부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다른 곳에 눈길을 준 적이 없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러시아 정치)는 "러시아는 글로벌 파워로서 워낙 관리해야 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전임 이바노프 장관(1998~2004)을 비롯해 외교장관을 오래하는 전통이 있다"며 "그러나 라브노프 장관이 푸틴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요즘같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대치하는 국면에서 주권보호 차원에서 강경하게 나서고 있는 측면은 있지만, 과거 유엔대사 시절부터 매우 합리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외교관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라고도 평했다.

직업 외교관으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라브로프 장관은 이따금 정곡을 찌르는 발언으로 상황을 정리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위기가 격화되자, 라브로프 장관은 "유치원 아이들의 싸움"에 빗대며 "우리는 중국과 이성적인 접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야유를 날렸다.

그는 또 "미국은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100% 정보가 있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타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북핵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 거친 언사를 내뱉기도 해 협상 상대에게 푸틴을 떠올리게 한다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그를 '완전한 쓰레기'로 묘사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중국 구이린(桂林)에서는 엉뚱하게 'FCKNG QRNTN'이라고 쓰여진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기념촬영을 해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빌어먹을 격리'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모음을 뺀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왼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5일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 행사를 갖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왼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5일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 행사를 갖고 있다.
ⓒ 외교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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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포위망 좁히는 미국... 중국은 러시아·북한 등과 반미전선

최근 미국·일본·인도·호주 등이 참가하는 '쿼드' 정상회의가 열리고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나란히 동북아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 등을 방문하는 등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가는 듯한 모습을 취하자, 러시아는 중국과 급격히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EU를 향해 관계 단절을 경고하기도 했다.

라브로프 장관과 왕이 부장은 구이린에서 "미국이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평화·발전에 초래한 손해를 반성해야 한다"며 "일방적인 괴롭힘과 타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러 양국 정상의 회담 가능성까지 엿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하며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중국의 위압적인 행동'을 강조하며 절대 공조를 다짐했던 미일 2+2회담과는 달리 한미 2+2회담에서는 '중국'과 관련된 부분을 넣지 않았다.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사활이 걸린 한국측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4일 저녁 한러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에 참석한 라브로프 장관은 25일 오전 외교부청사를 방문해 정의용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오후에 모스크바로 떠날 예정이다.

바이든 신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형성된 강대국들간 '신냉전' 구도속에서 라브로프 장관이 한국에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22일 중국 구이린에서 만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22일 중국 구이린에서 만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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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라브로프, #러시아, #왕이, #미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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