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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있는 일터에 사고,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기 위해 출근하는 곳에서 죽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일터 괴롭힘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며 바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알려내기도 한다.

코로나 19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부터 병원의 청소노동자, 10년 넘게 노조파괴와 동료의 죽음을 안고 견뎌 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심리적 상흔을 입은 노동자들의 심리치유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까지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편집자말]
2019년 1월 5일, 서울의료원에서 노동하던 고 서지윤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시민대책위를 꾸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를 긴급하게 요구했다.

2019년 3월 12일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아래 진대위)가 위촉되었으며, 진대위 활동과 별개로 노조와 시민대책위는 지속적으로 제대로 된 조사 및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집회와 1인 시위 등을 이어갔다. 같은 해 9월, 조직적·환경적·관리자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고인이 사망하였다는 결과와 함께 9개 분야 34개의 권고안이 발표되었다.

2020년 5월에는 고인에 대한 산재신청이 접수되었고, 같은 해 11월 19일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으로 산재가 인정되었으며, 올해 4월에는 서울의료원에 추모비가 건립될 예정이다.

일터에 산재한 문제를 노동조합과 시민대책위에서 알리며 조직문화와 인력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의료원은 진대위의 권고안을 이행하고 있지 않으며, 유족에게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다. 지금도 간호사들의 이직률은 높다. 따라서 제대로 된 처벌과 괴롭힘에 대한 재발방지, 간호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 도입 등은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일터를 바꾸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고, 남은 과제에 대한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을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 고인의 산재인정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었고, 어떻게 의미를 남기고 있을까. 여전히 고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질문이 많다. 지난 2월 16일, 서울대병원노조사무실에서 서울의료원분회 김경희 분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들어볼 수 있었다.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
ⓒ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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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역할

서울의료원 시민대책위에 많은 노동·인권·보건의료 단체나 전문가들이 결합했다. 이후 진대위 활동과 더불어 시청·서울의료원에서 압박 등을 해왔기에 고인에 대한 산재인정을 비롯하여 기억하고 추모하는 움직임이 지속될 수 있었다.

이 과정들은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를 만들어내고 투쟁해왔기에 가능했다. 투쟁을 만들어간 맥락을 질문했을 때, 그동안의 서울의료원 인사가 원칙이 없었고 이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¹⁾ 사망하게 되었다고 짚어주었다. 잠재된 문제점들을 찾기 위해 계속 소통하고, 병원 내·외부에서 조합원들과의 접촉과 기관 압박 등을 계속 이어가기도 했다.

"그동안 인사가 원칙 없이 움직인 거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요, 결과가 2명의 사람이 사망한 거였고. 이후에도 인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계속되겠다, 어떻게 잠재된 것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관리자가 있는 한은 해결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요. 사람들이랑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계속 소통하고 찾아다녔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그 내용들이 조금씩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넷이 되잖아요. 진대위할 때 선생님(시민사회단체 등)들이 열심히 해주신 것도 있고. 그분들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거기에 맞춰서 조합원이나 사람들에게 밀접 접촉해서 인터뷰하고 외부에서는 시장 공격하고 집 앞에서 피케팅하고."
 
2019년 4월 15일 서울의료원 앞에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100일 추모제'가 개최됐다.
 2019년 4월 15일 서울의료원 앞에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100일 추모제"가 개최됐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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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장 내 괴롭힘

고인은 2018년 12월 행정부서로 인사이동이 된 후 컴퓨터·책상 등의 업무용품을 지급받지 못했고, 관리자와의 면담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사이동 되기 이전에도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괴롭힘은 조직적·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괴롭힘 관련 행위들은 우연적이거나 우발적이지 않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특성을 지닌다.

진대위가 2019년 서울의료원 노동자 2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간호사 5명 중 1명(18.8%)이 "직장에서 괴롭힘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의료연대본부가 병원노동자 13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495명(38%)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참거나 모른척했다고 답했다는²⁾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신상필벌이나 인력증원 등 구조적·환경적 원인을 계속 발굴하고 찾아야 숨 쉴 여유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어찌 보면 내부고발이잖아요, 해결하려는 것보다 덮고 가려는 경우는 신상필벌이 안 되어서고. 직장 내 괴롬힘이 결국은 구조적·환경적인 원인에 의해, 결과론적으로 직원들 간의 싸움인 거거든요. 구조적 환경적 괴롭힘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할 거 같고요. 구조적 환경적 괴롭힘을 만든 건 어쨌거나 인력인 거 같아요. 바쁜데 지시하는 사람이 있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것이 뭔지를 찾아서 개선방법이 뭐냐 물어야죠. 위에서 좀 더 벌려버리면 숨 쉴 공간이 생기는데, 사람들끼리 싸우다보면. 결과만 가지고 얘기하면 해결이 안 돼서. 이런 것들이 확장되어야 해요."

산재인정을 받기까지

이렇게 서울의료원에 산적해있던 문제로 인해 간호사로 근무했던 고인을 어렵게 만들고,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시 서울의료원은 계속 쉬쉬하는 분위기를 유도했지만 노동조합과 시민대책위는 이에 맞서 투쟁했기에 산재인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서지윤 간호사 사망이 그때 행정직 사망이랑 똑같은 모양인 거예요.(참고: 2015년 행정직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음.) 소문 돌리고 쉬쉬하면서 알리지 않고. 계속 로테이션 시켰거든요. 서지윤 간호사도 부서 이동 이후에 일어났고. 조직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잖아요. 희생되는 사람도 없어야겠다는 거고. 또 하나는 병원장의 제왕적 인력운영이었죠. 노동조합에는 공공의 적 같은 사람들이 팀장으로 세팅되었거든요. 노동조합의 역할은 직원 희생이 없도록 하는 게 역할이 아니겠냐 생각했어요. 노동조건도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어나는 거를 감시하는 건데 그런 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병원장이 마음대로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산재 인정이 되면서 '회사의 탄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게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김경희 분회장은 산재 인정 이후 병원 내부에서 간호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과 노동조합의 즉각적 대응이 더 용이해졌다는 것을 의미로 꼽았다. 그러나 과제도 남았다. 노동자의 의식 변화에 비해 병원 차원에서 신상필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변화가 미비하다는 것이 한계로 남아있다.

"이후 건강한 노동조합이나 조직이 있으면 즉각적 대응이 있었어요. 의료연대 소속의 병원에선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진상조사 후 책임을 바로 물리고요. 외부에서 간호사 입장에서 보면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서울의료원 내에서는, 관계자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신상필벌이 되어야 하는데 안 되었죠. 병원 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기관 경영평가를 할 때 이런 거 드러나면 등급 깎이고 돈 받는 게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병원이 직원들에게 소문을) 돌렸어요. 산재 되었고 기사화되었으니 '진짜 산재가 맞아?' 그랬던 거고.

그런 거 볼 때마다 달라진 게 뭐지 하면서도 간호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더라고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문제제기 하기도 하는데. 근데 제 3의 기관에서 담당하지 않고 우리 병원 노무사가 담당했어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간호사들이 의식변화가 있긴 하지만 병원 자체가 변화가 없어요."


주인공이 빠진, 혁신 없는 혁신위원회

2019년 9월, 진대위는 서울시 사과와 책임·서울의료원의 인적 쇄신·고인에 대한 예우와 동료 심리치유·서울의료원 조직개편·간호인력 노동환경 개선·괴롭힘 고충처리 개선·서울시 제도개선·서울의료원 의혹 감사 등 규명·권고안 이행점검 등 9개 분야에서 34개의 권고안을 냈다. 서울의료원은 "서울의료원 혁신대책위원회"(아래 혁신위)를 만들어 이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의는 단 3차례 열렸으며, 진상대책위원이나 평직원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배제되었다. 여전히 많은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절차를 알지 못하며, 권고안과 상관없는 직무급제 등의 내용들이 혁신위 내용으로 들어가 있다.

"얘네가 만든 혁신위 안에 13개 추진과제, 끼워 맞추기 한 거거든요. '추진완료'라고 했던 것도 권고안과 상관없는, 노무관리 강화라는 거 추진 권고안에 없었는데 추진완료라고 뜨고요. 합리적인 인사운영시스템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거를 '직무급제도 도입을 위한 컨설팅' 이렇게 바꿨죠.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 관련해서는 교대시간 단축이 아니라 교육전담간호사가 늘고요. 그런 것들이 추진 중으로 된 거고요. 직원 복지를 위한 돌봄 프로그램을 하라고 하니 기숙사 추가하고 아파트 짓고. 이게 서울시랑 같이 하는 거잖아요, 서울시도 서울의료원도 이행에 대한 의지는 없다고 할 수 있어요."

권고 과정을 짚어봤을 때 논의과정에 평직원의 참여가 핵심적이란 걸 알 수 있다. 경영자가 중심이 되어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회 차원에서는 권고안이 나왔고 때문에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과제를 설정했지만 감시를 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어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단절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지속하고 있다.

"감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김민기 병원장이 나가고 송관영 병원장으로 바뀌었다는건... 송관영씨는 김민기 병원장 임기 중 8년 중에 6년을 같이 했어요, 덮고 가겠다는 의도거든요. 행정이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료 요청하면 오고, 그걸 보면서 피드백이 되어야 하는데 피드백이 안 되고요. (분회차원에서는) 권고안 제대로 이행해라 이 정도고요. 시의회 통해서 자료 받아봤을 때 이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만 감시는 제대로 못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문제제기를 병원 내에서도 하고 시의회에서도 하고 있고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우리 병원에서도 단절될 수 있도록 하려고요."

희망을 찾는 법

새서울의료원분회는 소수노조였기에 활동이 어려웠던 점이 많았다. "병원이 문제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기에 끈을 잡고 알리고 싶었다"는 김경희 분회장에게 원동력을 질문하였을 때, 다 같이 연대했던 경험과 힘을 얘기했다.
 
"소수 노동조합이지만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찾았던 거 같고요. 처음 노동조합 만들 때는 간호사 임금이 너무 적어서 계속 사직을 하니까, 간호사 중심의 조합이었어요, 그냥 소박했어요. 사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해결하고 임금이 올라간 후 간호사들이 탈퇴하더라고요. '임금이 다 올라갔으니 이제 할 게 뭐 있겠어.' 간호사 탈퇴를 보면서 분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요.

이후 내가 현장에 가있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뭘까 하고 보니 최저임금이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최저임금 때문에 투쟁을 만들고. 하다보니까 계약직하고 공무직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차별이 또 있는 거예요. 미화노동자 직고용 해결하다보니 그렇게 성과들이 쌓이면서, 그 성과를 보고 사람들이 오게 되었고요. 미화노동자는 저희가 더 많거든요. 관리자 눈치를 안 봐요. 문제제기를 팍팍 해버리니까. 미화노동자들을 보니까 바뀌네 하면서 가입하고. 어찌 보면 내 거만 보는 게 아니라, 간호사입장 뿐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공무직 다 같이 활동하다보니 이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소수지만 어쨌든 신뢰가 쌓이니까. 신뢰가 쌓이면 그렇게 많이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새서울의료원분회는 현장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공공기관으로서의 감시, 권고안 과제 이행 촉구와 여전히 산재한 문제들의 발굴 등을 계속 해왔다. 이제는 서울시와 서울의료원이 응답할 차례로 보여진다. 책임자 처벌과 피해 노동자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산재한 수많은 요인들을 바꾸는 책임을 묻는 과정에 과연 누가 책임있게 나서야 할지 김경희 분회장의 인터뷰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 각주
1) 서지윤 간호사와 미화노동자. 미화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서울의료원은 죽음의 원인이 기저질환이라며 왜곡해왔으나, 12일 연속 근무로 육체적인 피로가 높은 조건에서 폐기물 감염에 노출되어 사망하였다. 서울의료원분회는 해당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분회와 의료연대본부 등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으며, 2021년 2월 19일 해당 노동자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되었다.
2)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699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를 작성한 조건희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며, 보건의료학생단체 매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태그:#간호사, #병원노동자, #직장내괴롭힘, #산업재해,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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