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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금태섭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응원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금태섭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응원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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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전 의원(전 서울시장 무소속 예비후보)이 붉은 점퍼를 입었다. 가슴팍에 '국민의힘'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패배한 금 전 의원은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며 승복했고, 안 후보 역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배한 후 "힘껏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2016년 3월~2020년 2월 정치부와 법조팀에서 일하며 금 전 의원의 활동을 자주 봐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취재하며 그의 발언을 여럿 보도하기도 했다.

금 전 의원의 자산은 '소신'이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선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사안에 자신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금 전 의원이 검사 출신임을 강조하며 '배신'을 이야기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정부·여당의 안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었기에 그의 의견 중 귀담을 점도 있었다.

이후 총선을 앞두고 금 전 의원은 지역구 경선에서 패배했다. 금 전 의원이 당에 밉보여 공천을 받지 못했는지, 애초에 지역구 관리가 소홀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어쨌든 그의 공천 탈락에 당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금태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7월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고,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금태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7월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고,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 금태섭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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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전 의원의 소신은 우리 사회의 약자를 거론하는 모습에서 빛났다. 그가 2017년 3월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동료의원 298명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했을 때 큰 울림을 줬다. 지금도 일부로부터 '꼴페미'라고 지탄받는 그 책 말이다. 당시 그는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다"며 "'82년생 김지영'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선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금 전 의원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선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 페이스북에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기원하면서 즐겁게 하루 놉시다"라고 쓴 것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나온 '거부할 권리'라는 반인권적 발언(안철수 전 후보) 앞에서도 그는 "소수자 옆에 서는 것이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랬던 금 전 의원이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다음날인 24일 '오세훈의 품'에 안겼다. 입당설은 부인했지만 오 후보가 입혀준 점퍼엔 국민의힘 네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앞서 오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나온 퀴어퍼레이드 관련 질문에 "소수자 인권 보호"를 이야기했다. 이전 자신의 행보와는 꽤 다른 답변이었다. 다만 "서울시에는 서울시광장사용심의위원회라는 결정기구도 있고 규정도 있다. 시장 개인이 '해도 된다, 하면 안 된다'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열린 결말(?)의 답을 내놨다.

오 후보의 "소수자 인권 보호"란 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직전 총선에서 그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후보자 토론에서 "저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고민정 후보는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오 후보의 생각과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서울광장 신고제'를 그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어떻게 막아왔는지 곱씹어본다. "시장 개인이 '해도 된다, 하면 안 된다'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오 후보의 열린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문제를 오 후보로 국한하지 않고 국민의힘으로 확장하면 그 심각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물론 금 전 의원이 몸담았던, 그리고 박차고 나온 더불어민주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잊을만하면 여성·성소수자 폄훼 발언이 터져 나오고 차별금지법 추진 역시 소극적인 게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있더라도 오늘 금 전 의원의 모습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다. 앞서 언급한 그의 소신과 '그 분야 최악 정당'의 결합이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십보 백보'란 말이 있지만, 백보가 오십보의 2배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앞서 금 전 의원 정치 인생엔 두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안철수를 떠난 것이고, 둘은 더불어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그때마다 금 전 의원을 폄하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한 번도 그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담았던 진영을 떠나는 일은 정치권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자산이기도 한 소신이 큰 명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 붉은 점퍼를 입은 금 전 의원의 모습엔 배신이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진영에 대한 배신이 아닌 소신에 대한 배신.

태그:#금태섭,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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