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행동으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있다. 당연한 틀을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편집자말]
 스스로를 '면접왕'이라고 자부했던 여성이 있었다. 

그는 "한 때 제가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면접왕이란) 환상이 깨진 건 첫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직 시장에 진입하려던 때였다"고 했다. 나이라는 장벽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남자친구가 있느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느냐", "결혼 후 계속 업무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 등 취직 시장에서 만난 질문들 또한 그에게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민낯"이었다.

최근 동아제약과 '전쟁'을 벌였던 사람의 이야기다. 성차별 면접 피해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브런치'에 올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또한 유튜브 <네고왕2> 댓글을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고발한 이후 과정을 살펴보면서 자꾸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세계적인 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쓴 <이름들의 전쟁>이었다. 

직접 말하는 사람이 되다
 
이야기들은 공기처럼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마시고, 이야기를 내쉽니다. 우리가 사적인 삶에서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는 비결은 그런 이야기를 볼 줄 알며 직접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말입니다. (리베카 솔닛)

지난 5일 그는 직접 말하는 사람이 됐다. "(여성인 나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갔으니까 남자보다 월급 덜 받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와 같은 면접관의 질문을 고발한 그의 댓글은, 여성들을 위해 생리대를 '네고(가격 협상)'하는 좋은 회사라는 그때까지의 동아제약 이야기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자 동아제약은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해당 방송 댓글 형태로 게재했다. "해당 면접관을 징계 처분하고 내부 교육을 강화하고 인사·채용 제도와 절차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해당 지원자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이번 건으로 고객에게 심려를 끼친 점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도 했다. '여성 구직자 차별 논란', '동아제약 면접 논란', '차별 논란' 등 제목의 보도가 뒤를 이었다. 

논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툰다는 뜻이다. 보통의 다툼이었다면 그쯤에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8일부터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그 날, 앞서 보도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이름'이 기사 제목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성차별 면접 피해자'였다.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가 18일 자신의 브런치에 글을 게시하면서 함께 올린 이미지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가 18일 자신의 브런치에 글을 게시하면서 함께 올린 이미지
ⓒ @dongainterview

관련사진보기


이름을 바꾸는 일을 하다
 
이야기를 바꾸는 일,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리베카 솔닛)

피해자의 브런치에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온 것이 그 날이었다. 앞서 보도에서 그에게 붙은 호칭은 주로 '한 여성 지원자'였다. 여기에 '논란'이란 단어를 더하면, 그 이야기는 한 여성지원자가 논란을 일으킨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에 비하면 '동아제약이 성차별 면접을 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는 그 이름은 이 사건의 본질적인 사실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 날 피해자가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이야기도 그것이었다. 그는 글을 통해 폭로 경위와 당시 면접 상황을 자세히 전하면서 동아제약 측 사과문을 두고 "사과문 같지 않은 사과문"이라고 했다. "당시 면접관이 인사팀장으로 면접 매뉴얼을 만드는 책임자"라는 점을 짚었고, "개인적으로 받은 문자에서 '성차별'이란 단어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본질적인 사실관계에 충실한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다. 

10일 피해자가 JTBC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그랬다. 그는 "조직적인 성차별이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고, 피해 사실을 축소하려던 사과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해당 사건의 진짜 책임자들이 이제까지 숱하게 써먹었던 이야기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를 피해자는 용납하지 않았다. 파문도 더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동아제약 사옥 앞에서 열린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기자회견 모습.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5일 동아제약 사옥 앞에서 열린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기자회견 모습.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장혜영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행동이 일으키는 파문은 종종 직접적인 목표를 넘어서는 지점까지 퍼져나간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고, 설령 결과가 즉각적이거나 명백해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희망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리베카 솔닛)

지난 12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성 구직자에 대한 차별적 정보를 요구하는 부분과 관련된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절감한다"고 했다. 16일에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최근 기업 채용 과정에서 야기된 성차별적 면접 논란을 계기로,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성차별 요인을 해소해 성평등 채용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과 조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끝나는 것일까. 피해자는 18일 올린 글에서 잇따라 내놓은 정부 대책을 두고 50점이라고 평가하면서 대통령에게 물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저런 전시 행정이 아닌, 구속력과 강제력 있는 강력한 '법', 그중에서도 '차별금지법'입니다. 그동안 인사 담당자 교육, 성평등 채용 안내서가 없어서 이번 일이 일어났습니까. 없었던 것은 인사 담당자 교육, 성평등 채용 안내서가 아닌 '법'입니다. 정부는 시행명령, 시정권고 따위가 아닌 법, 실효성 있고 강제력 있는 법을, 그 중에서도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오십시오."

22일 동아제약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이 게재됐다. 피해자는 "동아제약의 사과를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비록 동아제약 간의 일은 이것으로 마무리되지만, 국가로부터 '면접 과정상의 성차별 질문 또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란 것을 인정받고자 한다"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속 나아가겠다, 조만간 또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제까지 행동만으로도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는 어떻게 단단한 세상에 틈을 내고, 그 균열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독립편집부 = 이주연·이정환 기자 facebook.com/ohmyeum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