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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대한 법률'에 근거한 방문 취업(H-2)과 재외동포(F4 )체류자격으로 거주하고 있는 국내거주 고려인 동포는 약 8만 3천여 명이다. 2020년 12월 출입국 통계자료에 의하면 국내 거주 동포 중 여성 비율은 약 52%다. 취업 가능한 체류 고려인 동포 대부분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성인 여성 노동자 역시 저부가가치인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파견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파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고려인 여성노동자들은 특히 코로나로 어려움에 있는 영세사업장에서 퇴직금 미지급, 임금 체불,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상용근로형태가 아니라 구조상 필요 할 때만 쓰는 시한부 일회용 노동의 특성상 법정수당 미지급 문제와 부당해고 또한 당연시 되고 있다. 4대 보험 등 사회 안전망도 부재한 상태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인해 사업장의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일시적 휴직 또는 시간 단축과 일자리를 잃는 일이 빈번했으며, 임금 체불 또한 급증하였다.

특히 경제적 취약층으로 한 부모 가정 비율이 높은 고려인 여성 가장 노동자들의 경우 그 피해가 심각했다. 하루 하루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일자리 상황에서 지역건강 보험료와 주거비, 생활비가 가중되면서 전체 가족의 생계가 어렵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지역 건강 보험 가입자인 경우 세대별 부과로 건강 보험료만 한 가구당 최소 12만원에서 최대 36만원까지 납부한다). 또한 학교 또는 민간단체의 방과 후 활동이 없어지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어린 자녀의 식사를 비롯한 돌봄 문제가 큰 어려움이 되었다.

재난 지원금, 비대면 학습 지원금을 비롯 취약 계층에 제공되었던 지원조차도 체류 자격에 따라 지원을 달리하여, 국민도 아니고 다문화 가정도 아닌 고려인 동포들은 재난 상황 속에서 외면당했다. 한국어로 알려주는 재난 메시지를 파악하지 못해 불안해했고, 어린 자녀들에게 문밖을 나가지 말라는 당부가 코로나19 예방의 최선이었다. 컴퓨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은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대체하면서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심각한 학습 격차가 발생하였다.

출입국 비자 정책으로 인한 가족 이산과 체류 불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려인 여성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출입국에서만 비자를 재발급해 주는 폐쇄적인 출입국 관리 체계로 인해 체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면서 삶 자체를 흔들었다.

여성 노동자 오씨는 부부가 함께 체류 기한이 만료되었으나 코로나19 임시 조치로 출입국에서 체류 연장을 임시로 해 주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에 태어난 딸은 '미등록 체류'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항공편도 없어 출국도 어려웠고, 임시로 비자가 연장된 상태에선 자녀의 외국인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딸의 건강보험조차 등록할 수 없고, 비자만료로 일도 하지 못하며 체류만 가능한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시 체류 자격으로는 건강보험 등록이 되지 않아 아이를 비롯 가족이 병원에 가게 될까봐 불안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고려인 동포 여성 파견 노동자 김씨는 11년을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팬데믹 재난상황을 겪으면서 사회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한국 정부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6개국을 '방역강화 국가'로 정해 입국을 금지하면서 방문취업(H2) 비자를 재발급 받으려 출국했던 남편과 아들이 몇 개월째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자신도 언제든 국가 재난 상황 속 출입국 정책에 따라 강제 출국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일자리도 기댈 곳도 없이 지내야 하는 가족에게 매달 벌이의 절반 이상을 송금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외국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 속에서 이러한 사정을 꺼내놓기도 어려웠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김씨와 같은 상황에서 가족과 떨어져 10개월 이상 만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비자를 재발급 받기위해 출국한 동포들이 돌아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이에 지원 단체 고려인 너머는 출국 후 입국하지 못한 고려인 동포의 재학생 가족이라도 입국하여 학습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게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요청하여 일시 입국은 되었지만, 여전히 재학생이 아닌 자녀들과는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다문화가정도, 국민도 아닌 고려인 동포 여성 노동자와 아동, 노년층은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서 배제된 단적인 사례이다(국내 체류하는 다양한 이민자의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을 각 정부부처별로 시행하고 있으나 고용허가제하의 외국인 근로자로도, 결혼이민자를 지원하는 여성가족부에서도 포함되지 않은 고려인 동포 가족들은 단적으로 법무부의 출입국 관리 대상일뿐이라는 주장이 많다).

어디에서도 보호 받지 못하는 고려인 동포 가족들, 그중에서도 일자리에 불안함과 체류불안에서 오는 어려움은 재난상황에서 심화 되었을 뿐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어려움이다.

'나는 온 세상 노동자들의 자유를 위해 죽습니다.'

1918년 9월 러시아 아무르강 절벽에서 총살당한 한인 최초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독립 운동가, 노동인권 운동가, 여성 운동가이기도 했던 고려인 김알렉산드라의 마지막 유언이다. 생소한 이름 김알렉산드라 만큼 모국으로 귀환해 러시아 사람 또는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동포는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의 상당수는 국내에서 가족 단위로 장기간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상당기간 지속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인 동포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현재와 같이 일시거주 후 거주국으로 귀환할 외국인 또는 외국 인력으로서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거주민으로서 인식을 전환하여 적절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도 필요하지만 지역 주민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동포 가정과 사회적약자 중 약자인 고려인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관심 깊게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족을 넘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서도 싸웠던 운동가 김알렉산드라의 마지막 외침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사회 공동체 실현을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과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울림이 크게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려인 너머 / 안산시 고려인 문화센터 김영숙 센터장입니다.

* 113주년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안산여성노동자회는 매주 코로나19 이후 현장에서 발생하고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슈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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