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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이란 무엇일까? 연재 '비정상가족은 없다'를 통해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와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 출생등록제를 통해 본 위기가족, 비혼 출산 등 가족 정책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다.[편집자말]
인류가 시작된 이래 가족은 존재했다. 하지만 결혼한 부부와 그들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만을 도덕적으로 가장 우월한 가족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사회진화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칠 때였다. 당시 루이스 헨리 모건은 그의 유명한 책 <고대사회>에서 문명을 야만, 미개, 문명까지 세 개의 단계로 나누고 서구의 핵가족 모델을 문명의 최상의 단계에 등극시켰다.
 
4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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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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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상의 모든 비서구 사회는 야만과 미개 상태에 있다고 상정하고 이들이 진화를 거듭하여 결국 '그들'과 같은 문명의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또는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사회진화론이 가족을 보는 핵심적 관점이다. 제국주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한 이 사회진화론은 20세기로 접어들면 구조기능주의로 대체된다. 그리고 "기능"이란 개념을 가져와 남성의 경제적 역할, 여성의 정서적 역할이 잘 조화된 핵가족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하다는 정상가족 모델을 만든다.

그 외 모든 가족, 즉 이혼을 하거나, 부부 중 한쪽이 어떤 이유에서 없거나, 아이가 없거나, 남편의 경제적 역할과 아내의 가사 및 육아 역할이 수행되지 못할 때 이를 "결핍가족"으로 보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다. 근대에 많은 새로운 학문들이 등장했는데 정상가족 모델과 가족치료학의 등장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서구의 정상가족 모델을 정당화하는 지식은 한국 전쟁 이후 서구 학문의 유입과 함께 우리 사회에 들어와 학제 안에 정착되고 이후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우선 한국 정부는 1962년 "대가족제도는 개인의 자유 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사회발전을 저해하므로 부부중심의 소가족 제도로 전환하기 위해" 민법을 개정하고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이로써 핵가족화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고, 언론, 교육, 종교, 대중문화에서 혼전 순결을 지키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직장 가는 아빠와 살림하는 엄마의 성역할이 원만히 수행되는 핵가족이 "정상" 또는 "행복"과 동일시되었다. 1971년 이화여대 인간발달연구소가 출간한 중고생을 위한 성교육 교재에서는 "성 행동에 들어가기 전 두 사람은 결혼해야 하며, (…) 특히 결혼을 빙자하고 성 행동을 하는 것은 두 사람의 양심에 의해 억제되어야 할 일"로 교육되었다.

1980년대 붐을 일으킨 신부교실에서 여성들은 "조강지처, 가정부, 가정교사, 비서의 역할을 다 해 주는 여자를 남자들은 좋아해요. (…) 자신 있게 만들 줄 아는 요리 몇 가지는 있어야 사랑받아요."(동아일보 1985.4.5.)라는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너도나도 행복의 종착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핵가족"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서구의 경우 1980년대를 전후로, 한국의 경우 2000년대를 전후로 가족 지형에 변화가 목격된다. 높은 이혼율이 그것이다. 즉, 행복의 종착점에 도달한 그들이 "정상가족"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혼인연령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을 유보하며 "정상"을 거부하거나, 또 다른 다양한 방식의 결합을 통해 "정상"에 도전하는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하지만 서구와 한국은 "정상"의 변주로 나타나는 "다양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과거 반세기 동안 서구와 한국의 비혼 출산율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에 열광한 이유 

OECD 통계에 따르면 1970년 OECD 회원국의 비혼 출산율은 전체 출산율의 10% 이하였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평균 25%의 증가를 보였는데, 1995년에는 24%, 2018년에는 41%까지 증가했다. 2018년 현재 프랑스(60%), 스웨덴(55%), 영국/미국/뉴질랜드(48%) 등 OECD 평균인 48%를 넘는다. 즉 아이 두 명 중 한 명은 결혼하지 않은 관계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합계 출산율은 2018년 현재 OECD 국가 평균 1.6명을 상회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비혼 출산에 관한 통계가 확보되는 1980년부터 현재까지 1~2%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2020년 합계 출산율은 0.8명으로 역대 최저이자 OECD 국가 중 최저이다. 여기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비혼 출산을 허하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출산율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출산은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밖 임신과 출산에 대한 수용 여부와 출산율의 유의미한 관계성만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비혼 출산율이 높아짐에 따라 서구 사회는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수정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에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스코트랜드와 아일랜드는 각각 2006년과 2010년 법을 수정하여 동거커플에게 제한적인 권리를 인정했다. 프랑스의 시민연대 계약 팍스(PACS), 영연방 국가들의 시빌 유니온(CIVIL UNION), 캐나다의 커몬 로우(COMMON LAW)의 시행까지 가족 정의를 새롭게 하고 법을 만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개인들과 제도 밖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포용했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당당한 시민으로 세금 혜택과 의료, 교육, 주거 혜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최근 사유리의 비혼 출산에 열광했다. 10여 년 전 허수경이 비혼 출산을 했을 때와 그 반응이 사뭇 다르다. 일본 국적의 여성이어서? 유명 방송인이어서?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양한 삶을 선택하고 싶은 개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현재의 완고한 결혼과 출산 문화로 인해 그들의 억눌려 있던 욕망이 사유리 현상을 통해 일제히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변화할 준비가 되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국가이고 아직 "정상가족" 신화에 진한 향수를 갖고 있는 권력 집단들이다. 여전히 "혼인과 출산을 권장"하고 그것을 통해 이룬 가족을 "건강한 가족"으로 규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대한 저항이 이를 말해 준다.
 
국가통계포털의 인구총조사 '가구 부문'
 국가통계포털의 인구총조사 "가구 부문"
ⓒ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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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가구형태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보면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건강 가족" 실현을 위한 노력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 모른다는 통찰이 생길 것이다. 2000년 전까지 50%를 약간 상회했던 "정상가족"은 2019년 현재 30% 이하로 떨어졌다. 오히려 1인 가구가 30%를 상회하고 나머지는 한부모, 조손 가구, 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가구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다양성에 계속 눈감고 계속 건강하라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다양성을 수용할 것인가? 출산장려금을 늘이고 신혼부부 주택 공급을 늘이며 결혼을 장려하기보다, 결혼 제도 밖에서 일어나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결혼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살고 있는 개인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훨씬 더 한국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너무 늦은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다양한 개인들의 선택이 법적 보호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근거 법의 수정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962년 한국의 가족이 민법 개정을 통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재정의되었듯, 이제 21세기 새로 등장하는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60여 년 전에 그랬듯, 가족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미래 가족의 존재 여부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21 업무보고'를 통해 여성가족부는 "동거·비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 지원하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부디 약속한대로 평등하고 포용적인 여성·가족 정책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희정 시민기자는 책 ‘미혼모의 탄생’의 저자이며 인류학 박사입니다.


태그:#건강가정기본법,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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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전공했으며 미혼모/입양 관련 책을 내고 지역민 대상 구술채록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들의 역사>를 썼으며 <아기 퍼가기 시대: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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