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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주문이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택배 주문이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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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셋째 아이 출산까지 겹쳐 외출이 어려워진 탓에 택배 주문이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기본적인 식자재와 휴지, 칫솔, 기저귀 같은 생필품부터 머리끈, 면봉, 볼펜 따위의 소소한 물건들까지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했다. 가격을 비교해 좀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에서 사다 보니 택배 상자는 작아졌지만, 가짓수는 더 많아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집 앞으로 택배가 두세 개 왔다.

밥도, 잠도, 세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집중 육아기를 지나는 때에, 내 자유의지로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집 앞에 물건이 온다는 게 위안일 때도 있었다. 뭔가, 세상에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택배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누렸다.

택배를 끊자고 결심한 이유 

그랬던 내가 택배 주문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즈음, 가볍게 터치 몇 번만으로 주문을 완료한 후 무심결에 눈을 두고 있던 뉴스에 과로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편히 주문한 물건을 배달하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니,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일주일은 그럭저럭 잘 버텼다. 하지만, 배송 올 물건이 없는 둘째 주에는 바로 실패했다. 생각은 생각이고, 실천은 실천인 걸까. 갑자기 품절이던 예쁜 텀블러가 재입고되었단 알림이 오고, 단골이던 고구마 생산자가 할인 행사를 한다며 문자를 보냈다.

아기 기저귀가 떨어져 가고,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서는 모두 대출 중이었다. 아이들이 볼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려고 해도 어린 셋째까지 데리고 나서기 쉽지 않았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얼마나 크게 바뀌겠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결국 주문을 하고 말았다.

그 사이 또 한 명의 택배기사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택배를 받고 포장을 뜯는데 괜찮지 않았다.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쓰레기를 더 만들고, 배송하는 사람까지 과로로 사망한다는 데, 나는 왜 멈출 수 없는 걸까. 손과 머리가 따로 노는 상황이 답답해 단호하지 못한 나를 탓하게 됐다.

쓰레기는 내 눈 앞에서 치우고 어디로 가는지 눈 감아 버리면 그만이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으며 일하는 택배 노동자는 나와 무관한 사람으로 여기면 괜찮아지는 건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좀 다르게 보고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모임에 참여하는 나의 이중성에 짜증이 일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20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갑질 로젠택배 규탄 및 불공정 계약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20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갑질 로젠택배 규탄 및 불공정 계약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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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실패한 나의 도전 

사실 택배 주문 안 하기를 의식할수록 내가 얼마나 '택배 의존적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택배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의 선택폭이 넓어졌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들이던 에너지와 시간은 줄었다.

오프라인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많으니 가정 경제에도 보탬이 되었다. 아기 기저귀만 해도 오프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은 아기 체형과 맞지 않아 자꾸 소변이 샜다. 여러 제품을 써 보고 더 이상 새지 않는 기저귀를 찾아 매일 하던 이불 빨래에서 벗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어 화장실 모래만도 한 달에 45Kg을 쓴다. 대형 마트에 가더라도 같은 제품의 고양이 모래를 찾을 수 없고, 다른 모래를 산다고 해도 45Kg을 집까지 옮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매달 고양이 모래를 인터넷으로 사고 택배로 받는다.

지난 가을에 사 입힌 큰 아이 옷들이 전부 작아져 새로 사야 했다. 택배를 줄여보려고 8Kg이 넘는 아기를 안고 백화점에 갔다가 2시간 만에 방전이 되어 돌아왔다. 집에서 택배로 받는 게 얼마나 편리한지 다시 확인했다. 나에게 택배는 멀리 있는 친정엄마의 마음도 배달해 준다.

쌀이 떨어졌다 하면 택배로 보내시고, 어떤 날엔 가마솥에 푹 고아 꽝꽝 얼린 사골과 반찬들을 보내주신다. 코로나로 친정에 자주 드나들기도 어려운 때에 택배가 있어서 우리 집 쌀과 반찬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내 삶에 보탬이 되지만, 노동자에게는 피해가 되는 택배 주문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번번이 실패한다. 미미한 나의 시도가 무엇을 변화시킬지 회의적일 때 특히 그랬다.

사소한 노력이 가진 힘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는데 저자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 환경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저자가 우리는 앞으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거냐고 묻자, 달라이 라마는 우리의 자녀와 손자녀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니 우리 세대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는 어딜 가도 목욕을 하지 않고 샤워만 합니다. 방에서 나갈 때는 늘 불을 끕니다. 그렇게 제 나름으로 사소하게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118쪽)"라고 말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달라이 라마도 그렇다는데 하물며 중생인 내가 어떤 큰 변화부터 바라봤다니. 그제야 '택배를 줄이려는 사소한 노력도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겠다' 싶어 다시 용기가 났다.

택배 안 시키기를 시작한 지 5개월 째, 또 실패할 걸 알면서 다시 다짐한다. 택배 노동자의 과중한 업무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내 탓이라 생각하고 나를 몰아세우면서 택배를 안 시키니 오히려 금단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다.

택배 노동자 입장에서도 생계를 위한 노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번 달에 인터넷 쇼핑으로 꼭 구입해야 하는 것을 적어 보았다. 기저귀, 고양이 모래, 과탄산소다, 내가 읽을 책, 샴푸 이렇게 다섯 번 정도면 될 것 같다. 이번 달에는 다섯 개만 주문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인터넷 쇼핑 창을 보다가 '왠지 안 사면 손해'같거나 '어머, 이건 사야해' 싶으면 바로 사던 내가,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고민을 해보게 됐다. 필요한 것은 적어 두었다가 산책 겸 가까운 곳에 사러 다녀올 정도로 변했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진 않지만, 내가 나름대로 사소하게 기여하는 만큼은 변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나의 다짐을 가까이서 보고 있는 남편의 동참 같은 변화 말이다. 나의 택배 주문 안 하기 도전이 실패지만 실패가 아닌 이유다. 

태그:#택배 노동자, #함께 살기, #시간과 물에 대하여, #택배 줄이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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