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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가 퀴어문화춛제에서 꽃잎을 뿌리며 성 소수자를 축복하고 있다.
 이동환 목사가 퀴어문화춛제에서 꽃잎을 뿌리며 성 소수자를 축복하고 있다.
ⓒ 주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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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했던 한 후보는 '퀴어 축제 장소는 도심 밖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겠다'며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인의 발언은 표와 직결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성 소수자 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이유다.

정치인들이 인권 의식을 한쪽에 밀어 넣고 선거 때마다 정체성 확인에 나서는 것처럼, 기독교계 내에서도 성 소수자 문제는 정치적 색깔을 띤다. 핵심이어야 할 인권은 뒷전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동환 목사를 지난 12일 서울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축복 기도는 교회뿐 아니라 퀴어축제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그는 교단의 재판정에 서야 했다. 축복이 죄가 될 수 있을까?
      
"교회에서 '당신은 죄지은 사람이니까 빠지세요'하고 축복하지 않잖아요. 축복은 누구한테나 할 수 있어야 해요. 또 동성애에 동조하고 지지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동성애는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누군가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축복식을 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실명을 안 쓰고 활동명을 만들었다면 재판에 안 불려갈 수도 있었겠죠(웃음)."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꽃잎을 뿌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성 소수자들을 향해 축복 기도를 했다. 그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곧바로 이동환 목사를 교단 재판에 회부했고 정직 2년을 선고했다. 정직으로서는 최고 형량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로마서 말씀에 성 소수자는 없었다.

이동환 목사는 지난해 10월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지난달 22일 열릴 예정이던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소식에 보이콧한 결과 새로운 재판부가 배당됐다. 두 차례에 걸쳐 재판이 연기됐고 오는 26일 항소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그가 사역하던 수원영광제일교회는 지난해 6월부터 약 9개월 동안 목사 없이 방치되고 있다. 교단은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을 위한 어떤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냐 하는 것보다도 재판이 계기가 되어 변화가 일어났으면 합니다. 한국교회와 감리교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성 소수자들을 같은 사람으로 보고 혐오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재판보다 더 큰 고민이에요."
 
마약법을 위반하거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정직, 면직 또는 출교에 처한다. (감리회 교리와 장전 1403단 제3조)
 
이동환 목사를 옥죈 것은 '감리회 교리와 장전'이다. 이 교회법에 따르면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것이 죄가 되고, 이동환 목사는 후에 열릴 재판에서 최대 출교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목회의 사명을 가지고 고민한 대가, 정직 2년
 
이동환 목사
 이동환 목사
ⓒ 이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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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축복식을 하는 것이 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법 자체에 큰 문제가 있어요."

국가보안법을 연상시키는 교회법 자체도 문제지만 동성애가 마약이나 도박 같은 범죄 행위와 같은 선상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게 매우 우려스럽다. 감리교 내 동성애 처벌법을 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쉽진 않을 거예요. 총회 발의자가 대부분 큰 교회 목사님들이니까요.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돼요. 여성 목회자들이 여성에게 불리한 법에 항의하고 입법 운동을 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 바뀔 겁니다."

1심 판결 이후 50~60대 목회자를 중심으로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이동환 목사 징계 판결에 대해 '온몸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발표했다. 기성세대가 움직였다는 점은 매우 유의미하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했다고 하면 재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잘못을 덮어주겠다는 제안에 굴하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일구어 나가야 할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믿음 때문이다.

"기독교가 어느새 사회변화와 인권신장에 제일 큰 걸림돌이 되었어요. 이곳을 바꾸지 않으면 뒤의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겪게 될 거예요.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죠."

감리교 전통은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에게 관심이 많았던 존 웨슬리가 보수적인 영국 국교회에서 독립해 만든 감리교는 한국의 암울했던 시절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든 교파 중 하나다. 목회의 사명을 가지고 감리교 전통을 따라 사는 게 뭘까 고민한 대가는 정직 2년이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은 소외받고 죄인 취급 당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면서 그분들의 편에 서는 것이에요. 앞장서서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를 퀴어문화축제로 이끈 것은 부채감이다. 영상으로 본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의 현장에서 막무가내로 혐오의 말을 내뱉고 무참히 폭력을 휘두르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에 가슴 시리도록 책임감을 느꼈다.

"건강한 집단은 자기의 모습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는지 성찰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한국 교회가 하락세를 겪기 시작한 것은 교회 내부의 도덕적 문제 때문이에요. 횡령과 성범죄 등 권력형 비리들이 터져 나왔죠. 교회는 반성은커녕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권력 집단은 적을 상정해서 위기를 돌파하려 해요. 교회는 동성애라는 적을 상정했어요."

그도 무서웠다... 하지만 
 
2020년 6월 24일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가 교단 재판에 기소되자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열렸다.
 2020년 6월 24일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가 교단 재판에 기소되자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열렸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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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식이 열린 당일 아침 홍보용 웹자보가 배포되면서 문제의 목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긴장한 탓에 얼굴은 어두워졌고 그 상태로 축복식을 진행했다.

"무서워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축복식을 했어요.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저 혼자 표정이 뚱해요. 다시 돌아간다면 활짝 웃으면서 하겠습니다(웃음)."

이동환 목사는 재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언론 인터뷰를 거절했다. 성 소수자 성도들이 위축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재판하는 교회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성 소수자 전체를 왜곡하고 차별하는 것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 어디든 가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눌 겁니다.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에 맞서고 차별은 잘못됐다고 말할 거에요.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교회를 만들고 싶어요."
   
근래에 성 소수자 세 명을 떠나보냈다.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면서 사회로부터 지워짐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향해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얘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낙심하지 말자, 우리 포기하지 말자, 세상은 분명히 바뀔 테니까 그때까지 우리 살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즐겁게..."

말을 하는 이동환 목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일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하기는 쉽다. 희망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동환 목사가 용기 있는 사람인 이유는 재판에 섰기 때문이 아니라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혐오로 물들였다. 쏟아지는 혐오를 막을 순 없었지만 그가 뿌린 축복의 꽃잎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위로했다. 꽃잎이 내려 앉은 자리마다 희망의 새순이 피어날 것이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축복은 죄가 될 수 없다.

태그:#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인권, #이동환 목사, #축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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