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라진 시간>은 외지인 부부인 초등학교 교사 남편 수혁(배수민)과 전업주부 아내 이영(차수연)은 시골집에 이사와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영이 밤마다 귀신이 들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결정으로 이웃 사람(정해균)이 밤마다 이들 부부의 방에 철문을 잠근다.

수혁은 이영의 귀신이 든 모습까지도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이웃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막을 수는 없다. 마음 사람들은 이영이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영에게 귀신 붙은 여자라는 낙인을 찍고 철저히 격리하고 배제한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를 격리하는 잔인한 결정을 내리지만 집단적 담합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사라진 시간>은 한적한 소도시의 시골 마을에서 외지인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사건 수사를 담당하게 된 형구(조진웅)는 마을 사람들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단서를 추적하던 중에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다. 가족과 직업, 살던 집 조차 갑자기 사라진다.

<사라진 시간>을 보면 최근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인 변희수 하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성소수자 운동가 김기홍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이웃들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평범한 바람은 소수의 혐오 집단에 의해 거부되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 중에 한 사람이 누구에게 차별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리고 차별받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의 침묵과 무관심은 차별과 혐오의 심각성을 은폐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한다면 나중에는 나도 비슷한 차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 장면

영화 <사라진 시간> 장면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나의 존재는 누구에 의해 규정되는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조사하던 형구는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은 사라지고 수혁의 인생을 대신 살게 되는 상황에 빠진다. 형구는 예전의 자신의 진짜 삶을 되찾기 위한 발버둥 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제 형구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아 있다. 수혁으로 살아가는 가짜 인생과 수혁의 인생이 아닌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형구는 그제야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된다.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았던 형구의 인생이지만 수혁의 인생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라진 시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보여준다. 사회적 평가에 의해 개인의 삶이 규정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차갑게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낼수록 사회적 비난과 차별을 더 받게 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어야 한다. 자신보다 우월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넘쳐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와 배제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누군가를 우열로 가르는 기준이 되고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라지게 한다.  

결국 형구는 과거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수혁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가짜 삶이 된다.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인종,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차별을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차별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점점 소수자들이 편견 속에 묻힌다. 그리고 차별받는 사람들은 주위의 차가운 냉대를 받으며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 존중받는 일은 누구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차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된다. 
 
 영화 <사라진 시간> 장면

영화 <사라진 시간> 장면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나를 잃어버리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형구는 결국 과거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체념한다. 형구가 과거의 삶을 되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현재의 삶이 뒤엉켜버린다. 형구는 우연히 만난 초희(이선빈)가 개인적인 아픔을 숨기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초희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며 위로한다.

"나 그거 알아요. 그거 아프죠. 그거 많이 아파요. 울지 마요. 혼자만 그런 거 아니니까." -영화 <사라진 시간> 중에서.

이 땅에서 오늘도 가까운 이웃들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고 있다. <사라진 시간>은 사회에 의해 존재가 부정당하고 외면 당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드러낸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려는 순간 나의 존재감도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존재도 타인에게 존중 받을 수 있다. <사라진 시간>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차별과 혐오를 물려줄 것인지, 공존과 수용의 가치를 전수할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무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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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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