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 tvN


"AI 도입으로 금일 90% 인원을 감축합니다."

이런 문자가 온다면 어떨까? 회사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노조가 파업해서도 아니다. 그냥 AI가 내 일을 대신한다.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다. tvN 드라마 공모전 <오펜(O`PEN)>에 당선된 10개 중에 하나인, '박성실씨의 사차 산업혁명'의 첫 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공모전의 주제처럼 '우리에게 곧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현재와 바로 연결되는 근미래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났을 때 일종의 공포 체험을 한 것 같았다. 새로 도입된 AI상담원으로부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콜센터 상담원 박성실.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드라마는 호러물로 바뀌게 된다.
 
송영준 작가는 "프로 바둑기사가 알파고에게 패배하는 모습 등 지치지도 않고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며 월급도 받지 않는 AI에게 인간은 언젠가 패배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며 "근미래에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일자리 사망 시대를 겪기 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예방접종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내 일이다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 tvN

 
드라마 초반, 티비 속엔 AI 앵커를 소개하는 인간 앵커가 나온다. 인간 앵커는 "20년을 노력해 이 자리에 왔는데, AI는 2주 만에 올라왔다"며 "섬뜩하다"고 말하는데, 박성실은 개의치 않고 TV를 끈다. 이후 출근하는 그녀의 모습 뒤로 서빙 로봇, 커피 내리는 로봇이 나오며 이미 많은 인력이 AI로 대체된 모습이 나온다. 여전히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기분 좋게 출근한다.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 tvN


퇴근까지 1시간, AI는 그에게 다가온다. "직원 여러분, 안타깝게도 AI 상담원 도입으로 금일 90% 인원을 감축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한순간에 해고당할 위기다. 이 장면은 AI 도입으로 몇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뉴스에서 떠들지만 실상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상황을 꼬집는다. 당장 눈앞에 '내' 일이 되어야 깨닫는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히 박성실은 첫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지만, AI가 자른 건 남편이었다. 화물 운전을 하는 남편은 자율 주행 차량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녀는 "왜 당신만? 다른 택배 트럭들은 잘만 다니던데"라며 부정한다. 남편은 "그건 사람 많은 골목 다니는 차고 우리는 고속도로 다니는 화물차니까"라고 대답한다. 마치 다른 사람들 다 일하니깐 나도 계속 일할 거란 생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던 AI의 존재를 간과한 우리네 현실이다.
 
의미 없는 을끼리의 경쟁
 
첫 해고자 명단에선 살아남았지만, 위기는 계속 문을 두드린다. 3개월간의 평가 기간 이후 VIP 전담 소수만 남기고 모두 해고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 이후 박성실 씨를 비롯해 그녀와 가장 가까운 동료 두 명은 서로 경쟁자가 되어 고군분투한다. AI상담원은 할 수 없는 '감성 상담'을 내세우며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만든다.

박성실은 웃음을 주는 '개그우먼', 동료 중 왕언니인 이혜영은 인생을 상담해주는 '카운슬러'로, 막내는 신청곡을 불러주는 '사랑의 콜센터' 응대로 손님을 상대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세 명 모두 이달의 최우수 상담원으로 선정되며 AI와의 싸움에서 이겨 일자리를 지켰다는 기쁨으로 발표 날을 기다린다.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 tvN

 
장면이 바뀌고 그들의 희망과 달리 책상은 정리된다. 회사는 그저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이용했던 것이고 어차피 다 해고할 계획이었다. AI 도입 책임을 맡은 최 이사와 회장은 오붓한 티타임을 가진다. 회장은 만족스럽게 "이제 정말 월급 안 줘도 되는 거지?"라며 기뻐하고 최 이사도 따라 웃는다. 웃음도 잠시 최 이사는 금세 뒤통수를 당한다. "근데 말이야, 자네 월급이 너무 많지 않나? "라는 말에 그는 손에 든 찻잔을 부들거린다.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살아남으려고 우리끼리 경쟁하고 고군분투 하지만 의미 없는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박성실을 비롯한 동료 2명은 AI를 이기는 동시에 서로 경계하지만, 의미가 없다. 어차피 AI가 이긴다. 이 싸움을 주도한 최 이사는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회장 앞에선 역시 '을'이었고 월급을 안 줘도 되는 다음 타겟이 돼버린다. 이제 최 이사도 AI와 싸워야 한다.
 
박성실, 아니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이유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 tvN

  
박성실이 다니는 회사 '퓨처 앤 라이프'는 "우리가 미래입니다"란 슬로건를 내세우면서 그 미래를 우리가 아닌 인공지능에게 맡긴다. 그것도 사람과 통화해야 하는 일을 사람 아닌 것에 맡긴다. 전화를 건 고객도 사람보다 인공지능을 더 좋아한다.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이 전화 상담원을 대체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일어날 일이다. 이유는 하나이다. 이미 현재 전화 상담원들이 회사가 준 업무 매뉴얼대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미 많은 노동자가 매뉴얼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매뉴얼은 수 많은 노동자의 노하우와 에러를 모아 만들어졌고 수정해간다.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지금도 관리직이라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 직원들의 경험과 정보들을 모아서 업무 개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통해 업무 효율이 늘어나면 일자리도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노동자는 컴퓨터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다른 말로 '업무지시'이다. 드라마 속 박성실은 매뉴얼대로 하지 않아 이내 당황하는 표정을 짓으며 매뉴얼을 쳐다 보는 장면이 나온다. 고객에게 '저'라는 단어 확인 할 때 저울과 저고리란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저팔계라고 말해버린 것. 우리 노동 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매뉴얼이다. 이미 기계화되어 버린 노동. 여기서 실수와 감정은 용인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관리자를 대체하고 딥러닝을 통해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고 노동자를 대신해 일을 한다. 사람의 일을 기계처럼 만들고 그 일을 이제 기계가 하게 된다.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tvN <드라마 스테이션 2021- 박성실씨의사차산업혁명> 한 장면. ⓒ tvN

 
'콜센터' 업무에만 해당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매뉴얼이 없는 업무를 찾기가 더 힘들다. 뉴스도 newsml이란 표준 뉴스 포맷이 있다. 미리 정의해 둔 문서 구조에 따라 효과적으로 뉴스 콘텐트를 표현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이 newsml을 통해 스포츠 경기 뉴스, 스트레이트 뉴스를 알아서 작성한다. 그 여파로 지난해 MS는 뉴스 편집을 AI에 맡기면서 인력을 감축했다. 미국은 50여 명, 영국은 27명이 해고됐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2019년, 주요 은행사들은 AI 상담원을 개발해 업무에 투입했다. 신한은행의 '오로라', 하나은행의 '하이', 농협은행의 '아르미'는 시범 초기에 전체 업무 중 30~40%가 넘는 일을 거뜬히 해냈다. AI가 처리하는 업무 비중이 늘면서 국내 6개 시중은행 직원 수는 3년간 6000여 명이 줄었다. 무서운 사실은 AI의 학습능력은 더 좋아진다. 일본에선 'AI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과 살아남지 못할 직업'이란 특집기사에서 현재의 은행 창구 직원의 99.4%가 AI 직원들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한은행 인공지능 오로라

신한은행 인공지능 오로라 ⓒ 신한은행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기술의 발전을 온전히 누릴 거란 기대와 달리 인공지능은 우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에는 박성실 집의 가훈이 나온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일자리를 잃으면 먹지도 못한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死차 산업혁명이 된다. 전문가들은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준까지 똑똑해지려면 기술적으로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인간이 똑똑한 게 무슨 소용인가 노동 시스템의 수동화와 매뉴얼화로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고 있는데. 로봇 같이 움직이는 인간과 로봇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는 뻔하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AI를 이길 수 없고 패배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당장 내일 '너'에게 닥칠 수 있다. 본인한테는 "오지 않을 거야"라고 위로해봤자 의미 없다. 다 박성실 아니면 최 이사이다. 송 작가는 이번 단막극을 통해 조언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일자리 사망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드라마리뷰 TVN 단막극 박성실씨의 사차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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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전달하는 김영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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