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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요 생활 무대 세 곳을 꼽으라면 집과 학교 그리고 서점이다. 학교는 직장, 집은 기본값. 그럼 남은 공간이 서점인데, 서점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무나 속박도 없이 순수하게 자연인 상태로 마음이 끌려서 가는 공간. 나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사람을 만난다. 나의 즐거운 놀이터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서점과 관련된 책에도 관심이 간다. 서점 관련 콘텐츠는 일단 시행착오 면에서 매우 안전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아무튼 나랑 취향이 어느 정도는 겹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다 취향이 겹치는 정도가 절반을 넘어선, 이른바 취향 저격을 당해버렸다. 
 
<환상의 동네서점> 표지
 <환상의 동네서점> 표지
ⓒ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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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동네서점>은 군산의 한길문고 이야기다. 군산, 서해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내가 살고 있는 동해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십여 년쯤인가 유명하다는 짬뽕을 먹으러 전주 여행길에 잠깐 들른 적은 있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고기가 수북이 쌓인 짬뽕이었기에 군산에 이렇게 근사한 서점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책을 쓴 배지영 작가는 한길문고에서 상주작가로 일한다. 상주작가라는 말이 낯설 수 있는데, 나도 처음에는 단골손님쯤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일자리(?)다. 한국 작가회의 주최로 진행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길문고가 거점 서점으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배지영 작가는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월급이 나오고 4대 보험도 포함)이고. 

몹시 재미있는 발상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유명 초밥집에는 도제를 거느린 마스터가 주방을 지키고, 태권도장에는 고단수의 관장이 문하생을 지도한다. 서점이라고 작가가 상주하지 않을 까닭이 어디 있으랴. 물론 서점이 책이라는 상품의 최종 판매처로서만 기능한다면 작가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길문고의 용처는 책 판매소라는 한 가지 항목에 묶어둘 수 없다. 

한 시간 동안 일어나지 않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작가 강연을 하고, 에세이 쓰기 수업을 한다. 200자 백일장 행사도 열고, 시를 낭송하며, 마술 공연도 펼쳐진다. 흠... 문화 살롱 같기도 하고, 컨벤션 센터 같기도 하고. 그러나 한길 문고는 삼십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1987년 오픈) 어엿한 종합서점이다.  

이 서점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듯하다. 2012년 여름, 군산 시민들은 10만 권의 책과 함께 완전히 물에 잠겨버린 한길문고로 달려가 복구 작업을 도왔다. 그 폐허 속에서 한길문고는 다시 일어났다. 그것도 출판 산업이 비틀거리는 시대에. 서점 전설 같은 이야기다. 
 
"한길문고는 작가님들과 만나 불금을 보낸 축제의 현장이고, 에세이 쓰기와 북클럽을 하며 뜨거워졌던 열정의 공간, 아이들에게는 첫 시급을 받았던 행사장이자 문화센터예요." - 혼자서, 때로는 세 사이와 함께 서점에 다니는 박효영 씨의 말, 176쪽
 
 
한길문고에서 판매 중인 환상의 동네서점
 한길문고에서 판매 중인 환상의 동네서점
ⓒ 한길문고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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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덮고서, 아내와 함께 작성한 국내 여행 버킷리스트 순위를 조정했다. 갑자기 군산에 가고 싶어 졌다. 이 서점의 실체를 기필코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겠다... 기보다는 간 김에 이성당 단팥빵도 먹고(나는 책만큼 빵을 좋아한다), 은파 호수공원도 거닐고 싶고. 그냥 군산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신기하게도 서점 얘기를 하는데 다 읽고 나면 군산이 그리워진다(짬뽕 먹은 기억밖에 없으면서).

작가가 행간 속에 매력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숨겨 놓은 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럿 담겨 있어서 그런 것인가. 여하튼 군산은 우리 집 희망 여행지 4위로 급상승했다. 서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익숙한 동쪽 바다 바람과는 다를 것이며, 군산에 가야만 잘 읽히는 책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어떤 책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군산 한길문고에 가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너무 늦지 않은 시일에 실천으로 옮기려 한다. <환상의 동네서점>은 정말이지 파워풀한 책이다.

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지은이), 새움(2020)


태그:#환상의동네서점, #새움, #한길문고, #군산,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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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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