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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할 때 그 옆에서 통역하던 샤론 최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각종 언론에서 통역의 연금술사로 찬사를 받았던 그녀가 사실은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말해서 더욱 화제가 됐다.

흔히 '무대 공포증(stage fright)'으로 알려진 이 증세는 '수행 불안 또는 공연 전 불안 증후군(performance anxiety)'이라고도 부른다. 정신의학회에서는 사회불안 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분류하며,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거나 발표할 때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나 직장 등 타인의 평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현대인은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이 증세를 겪고 있다. 무대 경험이 많으면 증세가 호전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평소 무대 위를 휘젓고 다니던 연예인도 어느 날 갑자기 '무대 공포증'으로 인해 한동안 무대를 떠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무대 공포증이 있습니다
 
'무대 공포증'으로 알려진 '수행 불안 또는 공연 전 불안 증후군(performance anxiety)'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거나 발표할 때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무대 공포증"으로 알려진 "수행 불안 또는 공연 전 불안 증후군(performance anxiety)"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거나 발표할 때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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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무대 공포증, 발표 불안으로 고생하는 현대인 중 한 명이다. 불안 증후군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생리학적으로 각성이 과도해진다.

풀어 말하면,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호흡이 짧아지고, 말은 빨라지며, 입이 말라 침을 꼴깍꼴깍 삼키게 된다. 심장 박동은 빠르게 뛰고, 목소리가 양 울음소리처럼 떨린다. 게다가 온몸이 추워져 손도 다리도 바들바들 떨리는데, 심할 경우 눈물까지 고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일만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지만 그것마저도 종종 실패한다. 나는 어느새 청중 앞에서 사연 많은 여자가 되어 울먹이고 있다.

진짜 문제는 매번 그런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그렇다는 데 있었다. 어떨 때는 무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한동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계속 무대를 찾아다녔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끊임없이 나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어느덧 익숙해지고 그래서 능숙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아져도 증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왜 그럴까? 대중 앞에서 말하기의 두려움과 불안감의 실체는 스피치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평가하게 될 청중의 반응을 두려워할 때 무대 공포가 발생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정 욕구가 좌절될까봐 미리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러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한다.

또한, 무대 공포증, 발표 불안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완벽주의자라는 데 있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완벽주의와 무대 공포증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평소 자신의 수행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이 있다면,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완벽함을 추구할수록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완벽주의자는 무대에서 떨리는 신체 증상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불안해지고, 떨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떨린다는 자율신경계의 역설적인 모습에 더 큰 불안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 심리학과 M.S Osbome 교수 동료들은 526명의 음악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음악 교육을 오래 받고 많이 연습한 학생일수록 실력이 향상됐는데, 무대 공포증 역시 실력 향상과 비례하여 증가했다. 음악 교육을 오래 받고 연습을 많이 할수록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알게 된 것들
 
클럽하우스는 2020년 3월 출시된 음성 소셜미디어로, 영상이나 글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음성으로만 대화한다. 아직은 애플의 ios 이용자만 가능하다.
 클럽하우스는 2020년 3월 출시된 음성 소셜미디어로, 영상이나 글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음성으로만 대화한다. 아직은 애플의 ios 이용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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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용기를 내어 무대 위에 나를 세우기로 했다. 오직 목소리로만 소통한다는 클럽하우스 앱을 다운로드한 것이다. 하지만 가입하고 며칠 동안은 모더레이터(진행자)가 스피커(말하는 사람)로 올라오라고 손짓하면 나는 놀라서 그 방을 나와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다가 용기 내어 스피커를 잡았다.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몇 번 나누었는데, 역시나 호흡이 가빠지고 발음이 꼬이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감정과 신체 변화에 집중하자 무대 공포증 증세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떨리는 긴장감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대는 심장과 함께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지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평소와 다르게 바보가 된다. 입 마름 증상으로 침을 꼴깍꼴깍 삼키거나 물을 자꾸 마시게 된다. 목소리는 물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실수 연발이다.

지금까지 공포라고만 느꼈던 불안과 신체 변화가, '설렘'의 떨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웃음이 났다. 어쩌면 오늘날까지 무대 공포증으로 떨던 나의 실패 경험은 설렘의 또 다른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 무대 공포증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이렇게 최면을 걸며 주변 공기를 바꾼다.

'나는 지금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 공포로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가 주인공이 될 상황에서 설레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완벽할 수 없다. 나다운 것이 가장 완벽하다.'

흔히 완벽을 완전무결(完全無缺)하다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完(완전할 완) 璧(구슬 벽)으로 원래는 고귀한 구슬을 탐하는 자들로부터 구슬을 무사히 지켜낸 지혜로운 인상여(藺相如)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나는 완전무결한 의미에서의 완벽한 사람은 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완벽한 나를 원한다면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대 위에서도 나다움을 지키며 실망도 인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도 완벽함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이후로 또다시 무대 위에서 스피커를 잡고 횡설수설하는 나를 마주한다면 나는 분명 설레고 있는 것이리라.(웃음)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태그:#CLUBHOUSE, #클럽하우스, #무대공포증, #공연전불안증후군, #수행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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