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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동부면 바닷가
 거제도 동부면 바닷가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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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다. 진짜 항구 이름이 '쪽박'이다. 어선 서너 척이 정박해있는 거제 동부면에 위치한 아주 작은 항구 이름이다. 3월 중순 따스한 오후, 쪽박항에서는 어선 한 척이 크레인에 들려 몸에 붙은 조개류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 우뚝 서 있는 안내판에 적힌 항구 이름을 보고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재밌군. 누가 이름을 지은 걸까. 분명 보기와는 다른 숨은 뜻이 있으리라.

물대포를 쏘아대는 아저씨는 몇 시간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물을 멈추고 "후" 하고 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지쳤다기보다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타며 그 옆을 지나가니 뿌옇게 흩날리는 물기가 얼굴에 닿았다. 나는 조금 멀찍이 서서 잠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해안길 옆 공터에 갈대가 있어 봄도 아직 완연하지 않았지만 가을이 온 것만 같았다.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될 날씨라서 더욱 그랬는가 보다. 밤 동안 비가 내렸지만, 땅이 생각보다 축축하지 않았다. 자리를 폈다. 미리 싸온 인절미를 꺼내 먹었다. 시골에서는 참을 먹을 때 고시래를 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는 산에 사는 짐승과 귀신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떡을 입안에 몇 점 넣어 오물거리다가 그 생각이 나서 등 뒤로 떡을 던졌다. 입에 떡을 넣고 다시 또 한 점. 그렇게 총 세 점을 던졌다. 까치, 까마귀, 고라니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누가 이 인절미를 먹을까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동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쪽박항에서 어선 한 척이 선체에 붙은 조개류를 떼고 있다.
 쪽박항에서 어선 한 척이 선체에 붙은 조개류를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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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방항 끝에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공터에 앉았다.
 쪽방항 끝에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공터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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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박항 해안길은 여기서 끊어진다.
 쪽박항 해안길은 여기서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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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시인의 마음 입구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되어 보였다.
 시인의 마음 입구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되어 보였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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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내비게이션에 '시인의 마음'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리아스식 해안을 비틀거리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폐업한 지 오래되어 보였다. 시인의 마음이라.

어느 누가 이곳에 와 시인의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차곡차곡 마음에 시를 담아냈을까. 인적이 드문 조용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그는 무엇을 꿈꿨을까. '차와 식사'라는 안내문이 보이자 얼굴도 모르는 주인장이 느긋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상이 그려졌다. 사뭇 과거로 돌아간 것 마냥 흑백의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생기를 잃은 기계들은 가게 앞에서 주인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한때 정성껏 닦고 유용하게 쓰던 물건이었을 터인데, 이렇게 덩그러니 버려진 모양새가 슬펐다. 그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대식물과 풀들은 무심하게 자라고 있었다. 주인이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잘라버렸을 잡초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자, 그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나는 허락 없이 불청객처럼 가게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등나무가 테이블과 조명에 엉켜 붙어 있었다. "너희만은 가지 말라"며 꼭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애잔했다. 그 밑으로 보이는 시인의 모습을 형상한 여인 동상이 낡은 몸으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그립다'라는 말들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동백꽃처럼 빨갛게 언덕 아래 바다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이블에 등나무가 엉켜 붙어 있다.
 테이블에 등나무가 엉켜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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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전동차 등이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휠체어. 전동차 등이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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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해수욕장
 
 가배량진성에서 바라본 덕원해수욕장. 옛날에는 이곳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살폈을 것이다.
 가배량진성에서 바라본 덕원해수욕장. 옛날에는 이곳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살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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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면 해안길, 아스팔트 함박금길이 나뭇잎들에 덮여 있어 산길처럼 느껴졌다. 꼬부랑길을 가다 보니 덕원해수욕장이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그 옆에는 가배량진성이라는 유적지 글자도 보였다.

화살표 방향대로 움직이다 좁은 길옆 툭 튀어나온 땅에 차를 몰아넣었다. 경치가 아주 좋다.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대나무는 노송들 사이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 마냥 춤추는 것 같다. 옅은 연두색 잎들이 빽빽이 함께 뭉쳐 있어 능선처럼 보이는 것이 참 곱다. 

낮은 성터에 올라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본다. 소개글을 보니 이곳은 성을 중심으로 바다가 두 갈래로 나뉘어 아주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몇몇 가옥들이 눈에 띄고 해수욕장이라고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내리막길 끝에 금방 나올 것 같아서 차를 몰았다.

양옥집 하나를 끼고 코너를 돌았더니 파도소리가 밀려온다. 작은 모래사장이 해초류로 어지럽혀 있었다. 해초류를 뱉어낸 바다는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황량한 바다에는 바깥 생활이 오래인 듯한 아저씨가 홀로 낚싯줄을 바다에 던지고 고기가 잡히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딴짓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SUV 지붕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옆에서 허둥지둥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는 나를 보자 기분이 나빠졌는지 짖기 시작한다. "미안해" 하고 나는 손을 들었다. 아저씨는 그만 짖으라며 먹을 것을 주며 달래기 시작했다. 잠시 조용해졌다. 다시, 파도 소리만 상쾌하다. 
 
 바다가 보이는 터에 자리를 폈다.
 바다가 보이는 터에 자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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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무 그늘 아래 파도를 보며 몇십 분을 앉았더니 곧 짠 내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적에 바닷가에서 살았다. 해수욕장이 개장되기 전, 낮이 밤보다 길어지면 우리만의 여름 놀이는 도시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그 여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가방을 던지고,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간다. 새까만 얼굴을 한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 모여서 물놀이를 한다. 바다 가운데 보이는 돌섬까지 헤엄 쳐 다이빙을 즐기곤 했었다. 분명 이 짠 내와 끈적함은 그때 그 시절의 것과 닮았다. 그래서 싫지가 않았다.
 
 거제도 동부면은 거제도 서단에 위치해있다.
 거제도 동부면은 거제도 서단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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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동부면은 서쪽에 있다. 왜 서쪽을 동부면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갑자기 궁금했다. 시청 홈페이지나, 면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면사무소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었나 봅니다"하고 지역 유래까지 내 멋대로 정하고 적당한 동의도 얻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 거제 동부면을 갔다 왔다. '느린마을'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작정 나와 시작된 여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샤르륵 기분 좋게 시간을 훑고 있던 파도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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