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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디지털 세상이 더욱 빨라진 때문이다. 한 친구는 도심에 텃밭을 만들어 상추도 심고, 작약도 수선화도 심는다. 마작도 배운다. 지인 한분은 넷플릭스 영화 보는데 재미를 붙였다. 장편 드라마 삼국지를 몇 달에 걸쳐 섭렵한다. 1인 미디어 유튜브는 어떤가, 명강의, 명연주, 고전 읽어주기, 명시낭송 등등 감동을 심심독방까지 무료 배달한다. 골라 보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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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의 대세는 SNS다. '카페인(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중독'을 넘어서 악플에 목매는 사람도 생겨난다. 문자메시지로 만족치 못해 문자대신 목소리만 오가며 토론하는 음성 SNS도 나왔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홀로 시간' 지내는 방법이 이렇게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젠 홀로 있더라도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낄 시간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힘들어한다. '홀로 시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코로나 블루 같은 우울증으로 번진다. 사회심리학자는 '남의 노래, 남의 강의, 남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대리만족이나, 남의 댓글에 일희일비하는 인정욕구 충족만으로는 자존감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스스로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가지려면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 독립할 수 없는 '구경꾼'이란 해석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되는 글쓰기'를 권장한다. '양생과 구도, 그리고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칼럼, 에세이, 리뷰, 여행기에 대한 예문까지 들어가며 글쓰기수련을 강조한다. '글쓰기는 소유의 종말, 공유경제의 산물인 SNS 바다를 헤엄치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최고의 실천이자 전략'이라는 논지가 명쾌하다.

그러나 글쓰기가 어디 밥 먹듯 쉽게 되는 일인가. 평생 글쓰기로 밥벌이 해 온 글쟁이에게도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 잡기부터 막막하다. 세상만물 세상만사가 다 주제다. 마치 '무슨 인생을 살래?' 선택하라는 주문 같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써야 하나?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닌, 나만 감동하고 나의 자존감만 높이면 되는 글쓰기라면 '하루 한 장' 일기 쓰기만 하면 된다. '양생(養生)과 구도(求道)' 단계다.

글쓰기를 '밥벌이 단계'까지 끌어 올리려면 남이 읽고 감동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고 써내야 한다. 얼마 전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4000자 분량을 써달라는 부탁이다. 마감이 일주일, 촉박하다. 더군다나 A4용지 2장이나 될 만큼 나의 행복이야기가 있나? 남의 이야기라도 빌려야 했다. 다행히 책읽기 모임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쓴 행복론, <행복의 정복>을 읽고 있던 때였다.

도서관에서 '원재호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나는 오직 글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빌렸다. 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헤르만 헤세)를 찾아내 좋은 대목을 골라 읽고 메모했다. '글을 쓰기위해 읽어라'는 고미숙 잠언을 치열하게 실천한 일주일이었다. 마감에 몰려 몰두한 일주일이 내내 행복했다. 글을 끝내고 보낸 후에도 넘치는 행복감은 오래 계속되었다.

무기수로 20년20일을 감방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을 생각해 본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여준 그의 편지들은 '글씨하나 틀린 게 없이 서화작품처럼 똑바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왜, 여학생들의 연애편지처럼 예쁜지?' 묻는다(<남자의 물건> '신영복의 벼루' 편).

신영복 선생은 '한 달 내내 생각을 정리해 거의 암기한 수준에서 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편지 한 장 쓰는 것 이외에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홀로 시간'에 편지 한 장 써 본 적 있는가,

태그:#디지털 세상, #글쓰기, #행복론, #자기 이야기, #홀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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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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