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전 기사 고갯길 오르다 멈춘 증기기관차, 의외의 승객들 반응에서 이어집니다.

길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난다. 길에는 계절이 흐르고 역사 문화 설화가 함께 흐른다. 길이 모여 그물망을 이루고, 그 그물망은 세상을 담는다. 고갯길은 산줄기를 넘어 세상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롭다.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선로이므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 서도역 철길1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롭다.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선로이므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전북 동부의 임실 분지와 오수 분지를 삽재가 연결한다. 이 삽재에 17번 국도와 전라선 철도가 지난다. 전라선 철도는 2004년 직선화 복선화 공사로 선로를 개량하였고 삽재 구간은 임실 터널(터널 길이 4,665m)로 통과한다. 오수 분지의 옛 전라선 철길 흔적을 따라가며 현재의 풍경을 만나본다.
 
서도역과 오수역의 옛날과 오늘날
▲ 서도역과 오수역 서도역과 오수역의 옛날과 오늘날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옛 서도역은 2004년에 폐역이 되었고, 새 역사(驛舍)와 선로는 북동쪽으로 180m 이전하였다. 옛 서도역 구내에 목조 건물 역사(驛舍), 선로, 플랫폼, 전철기(轉轍機)와 신호기 등 철도 시설물이 남아 있다. 옛 서도역 주변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무대다. 남서쪽으로 1.5km 거리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고리배미 거멍굴 등 소설 속의 지명이 이 지역의 실제 지명이다.

'혼불' 작품에서 주인공 강모가 옛 서도역에서 열차를 타고 전주로 통학했다.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 마을로 시집오며 이 역에서 내렸다.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옛 서도역이다. 이 터전을 오래된 벚나무들이 지키면서 봄에는 벚꽃이 화사하다. 평행선으로 이어진 레일을 따라 침목 위를 걸으며 추억을 남기는 사진 촬영 명소이다.
 
70년 동안 수많은 열차가 오고 갔던 철길, 평행선 레일이 풍경의 주인공이 되었다.
▲ 서도역 철길2 70년 동안 수많은 열차가 오고 갔던 철길, 평행선 레일이 풍경의 주인공이 되었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다. 이 해에 오수역에서 영화 <광복절 특사>가 촬영되었다. 그 오수역은 2004년에 폐역이 되었다. 새 역사(驛舍)와 선로는 서쪽으로 800m 이전하였다. 영화가 촬영되었던 옛 오수역은 철도 시설은 모두 철거되고 역사 건물만 남아 있다.

오수(獒樹)는 '큰 개 오'와 '나무 수'가 결합하여 지명이 되었다. 불길 속에 잠든 주인을 구한 의로운 개의 스토리, 천 년을 이어온 이 지역의 설화다. 오수개는 티베트의 설산 지대에 사는 털이 긴 사자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라 시대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증거다.

조선 시대에 오수역(獒樹驛)은 규모가 제법 큰 역참(驛站)이었다. 역참은 말(馬)을 기본 자산으로 한 국립 운송 통신 기관이었다.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도 역참에서 관리들이 공무상 목적으로 말을 대여하는 토큰이었다. 오수 지역 중심에 오수 역참지(驛站址) 표지석이 그 시대를 증언한다. 역참 제도로서 동물인 말(馬)이 주역이던 옛날의 오수역(獒樹驛)과 철마(鐵馬)가 달리는 현대의 오수역(獒樹驛)이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되어 있다.
 
오류역의 옛날과 봉천역, 삽재 옛 철길 옹벽의 쇠고비와 고갯마루
▲ 오류역과 삽재 오류역의 옛날과 봉천역, 삽재 옛 철길 옹벽의 쇠고비와 고갯마루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옛 오류역은 2004년에 폐역이 되었다. 삽재 고개의 들머리에 있었다. 옛 전라선 오류역과 봉천역(간이역)이 통합되어 현재의 봉천역이 되었다. 옛 오류역 야적장에는 인근 산악 지대에서 운반된 통나무와 온돌방의 재료인 구들돌이 야적되어 전국 각지로 실려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전라선 철도가 단선(單線)이었던 시절,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입영 열차가 열차 교행을 위해 한참씩 머물다가 삽재를 넘어가던 추억의 역이었다.

오류리는 1970년대에 새마을 운동의 선진 마을이었다. 좌식 부엌을 처음으로 입식으로 바꾸는 등 농촌의 주거환경을 앞장서서 개선하였다. 옛 오류역과 봉천역 사이에 평당원(坪堂院)이 있었다. 원(院)은 조선 시대에 역로(驛路)의 큰 고개나 나루터 등에 설치해서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숙박 시설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의 행적이 여러 번 기록된다.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시대에 실제 인물 홍길동이 등장한다. 그 홍길동이 한때 관군에 쫓기다가 이곳 임실 평당원에 출현하였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신분제와 토지 조세 제도의 모순을 표출한 홍길동의 행적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임실역은 전라선 철도가 개통된 1931년 이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수 분지에서 삽재를 넘으면 바로 임실역과 치즈테마파크가 보인다. 치즈테마파크와 치즈마을이 임실역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이 역에서 내린다.

임실 분지, 치즈로 만든 임실의 무지개

치즈는 임실에서 희망과 협동의 무지개다. 치즈는 김치와 같은 젖산 발효 식품이다. 갓난아이가 모유를 먹고 얼마 후 토했을 때 몽글몽글한 상태로 보인다, 이것은 우유의 카제인(casein) 단백질이 위산의 작용으로 응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우유는 자연 상태에서도 젖산 발효하여 치즈의 바탕인 커드를 형성한다. 치즈는 모성의 사랑과 자연의 섭리가 작용한 식품이다.

임실은 치즈의 고장이 되었다. 임실에 치즈라는 무지개를 띄운 개척자는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번스) 신부다. 그는 1964년에 천주교 임실성당 주임 신부로 부임한다. 임실은 가난한 지역이었고 산야에 풀은 많았다. 그는 산양을 두 마리에서 시작하여 주민들과 협력하여 산양 사육을 늘려가며 산양유를 생산하였다.
 
산양 두 마리와 젖소, 임실 치즈의 주인공들이다.
▲ 치즈농협 산양 젖소 산양 두 마리와 젖소, 임실 치즈의 주인공들이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얼마 뒤에 산양유 판로가 어렵게 되자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를 생산하였다. 치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젖소를 키우기 시작하여 치즈 생산 규모를 확대하였다. 카망베르치즈, 체더치즈를 거쳐 피자가 일반화되면서 모차렐라치즈를 생산하여 임실 치즈의 시대를 열었다.

임실에서 치즈를 처음 만들려고 할 때 치즈는 낯설었다. "우유로 두부를 만들자"라며 주민들에게 지정환 신부는 치즈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두부만큼 친숙하면서도 치즈만큼 신선한 도전이었다. 전통의 현대화라고 할까? 임실은 원래 콩이 우수했다. 전주비빔밥의 주원료인 콩나물은 임실 콩을 써야만 제맛이 난다고 했다. 우유로 만든 두부인 치즈는 임실에서 이렇게 향토 식품이 되었다.

지정환 신부는 주민들의 의식 고양에도 노력하였다.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그는 1970년대 임실 지역 농민회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임실에서 지정환 신부의 큰 발걸음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그에게 임실과 치즈는 성직자의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는 평범하고 겸허한 실천이었다.

임실 치즈의 시대가 튼실해지자 그는 임실을 떠나, 전주와 완주에서 장애인 재활 활동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2019년 4월에 선종하여 전주 치명자산 천주교 성지에 영면하였다.

임실 치즈 60년 발전 장소 탐방하기
 
A, B, C, D, E의 치즈 발전 장소를 차례로 찾아본다.
▲ 임실 치즈 관광지 개요도  A, B, C, D, E의 치즈 발전 장소를 차례로 찾아본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치즈의 고장 임실에서 임실 치즈의 발전 장소를 찾아가며 임실 치즈의 60년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임실 치즈 관광지 개요도를 살펴보면서 탐방을 시작한다.

천주교 임실성당(이도리) : 1964년에 산양 2마리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에게 산양을 분양했다. 성당 사제관에서 치즈 개발을 시도했다.

치즈 시원지(始原地)(성가리) : 1966년에 임실읍 성가리에 토굴을 파서 치즈 숙성실을 만들었다. 산양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소규모 공장 형태로 치즈를 생산했다.
 
희망을 가지고 협동하는 모습, 임실 치즈의 시작과 지금이다.
▲ 치즈 시원지 마을의 벽화 희망을 가지고 협동하는 모습, 임실 치즈의 시작과 지금이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임실치즈농협, 치즈 공장(갈마리) : 1972년부터 한국 치즈의 원조라는 자긍심으로 좋은 품질의 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설립한 치즈 생산 전문 업체로 치즈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치즈마을(금성리) : 2001년부터. 국내 최초로 모차렐라치즈 체험을 시작하였다. 농촌 관광형 치즈 체험 마을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마을 표어가 인상적이다.

치즈테마파크(도인리) : 2011년부터. 만화 캐릭터가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끈다. 스위스 양식의 건물이 동화 나라 분위기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방문하는 가족 단위 관광지로 인기 있다. 가을이면 국화꽃 만발한다. 치즈테마파크에 무지개다리가 있어서, 치즈로 만든 무지개의 고장 임실을 상징한다.
 
임실치즈테마파크는 동심이 가득한 동화 나라다.
▲ 치즈테마파크 동화의 나라 임실치즈테마파크는 동심이 가득한 동화 나라다.
ⓒ 이완우

관련사진보기

 
임실 치즈의 역사적 장소들을 찾아보고 '임실N치즈'와 '임실N치즈피자'를 맛보면 임실 여행의 즐거움은 더 커질 것이다. 임실치즈는 '임실N치즈' 브랜드로 우리나라 치즈의 대표가 되었다.

임실 치즈는 주민 공동체가 협동으로 이루어낸 결실이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열매이다. 임실 치즈는 한 성직자의 사랑과 헌신의 상징이며 주민들이 함께 피워낸 희망과 협동의 무지개여서 가치가 더 크다.

춘분(春分) 절기의 햇살을 받으며 고갯길 옆 산기슭에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새롭게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 희망과 포부가 피어난다. 숲은 항상 새롭듯이 오래된 고갯길도 항상 새롭다.

고갯길을 걸으면, 세상에 처음 꽃을 피워서 꽃받침도 꽃잎과 같은 목련꽃처럼 처음 시작하는 설레는 마음이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춘분을 지나면 곧 청명이로구나. 어화, 좋다! 어화, 좋아! 어느 고개를 찾아가자!

태그:#임실 삽재, #서도역, #오수역, #임실 치즈, #고갯길 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