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부용정, 광주 향약의 발상지다.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한 부용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이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부용정, 광주 향약의 발상지다.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한 부용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이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53년 전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68년 무진년 3월 중순 어느 봄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봄비 그치고 나니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딱 요즘 같이 화창한 봄날을 맞아 전라도 광주목 칠석면 하칠석리 옻돌마을의 한 정자에 광주목에서 내로라하는 선비들과 마을 근처에 사는 광산 김씨 일문들을 비롯한 문사(文士)들이 모였다.

아름다운 이 모임, 어찌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니런가

그중에는 오늘의 주빈 격인 송천 양응정과 제봉 고경명이 있다. 송천 양응정(松川 梁應鼎 1519∼1581)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화를 당한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사람인 양팽손의 아들로 현직 광주 목사(牧使)다. 지금으로 보면 광주광역시장인 셈이다. 조선 8 문장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시문에 능하였다.
 
연꽃을 닮은 정자에서는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계회(契會)와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다
 연꽃을 닮은 정자에서는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계회(契會)와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다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 1533~1592) 또한 이에 못지않다. 10년 전 치러진 식년 문과 과거 시험에서 고봉 기대승과 함께 갑과에 장원으로 합격한 호남의 천재다. 홍문관 교리로 지내던 중에 정쟁에 연루되어 울산군수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독서와 시문에 몰두하고 있었다.

제봉 고경명의 할아버지 역시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고운(高雲)이다. 명문가문의 출신이다. 훗날 두 가문은 사돈 관계로 이어진다. 송천 양응정 목사는 관직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에 몰두하고 있는 고향 후배를 격려하고 위로도 할 겸 옻돌(漆石) 마을 정자에서 열리는 봄날의 시회(詩會)에 주빈으로 초대한 것이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가움과 함께 유쾌한 환담이 한동안 이어졌다. 탁 트인 대청마루에 둘러앉은 선비들 사이로 살랑이는 봄바람 따라 몇 순배의 술잔이 돌았다. 이윽고 목사 양응정이 운을 떼며 한 수 읊는다.
 
1568년 무진년 봄 현직 광주 목사였던 송천 양응정이 지은 시. 부용정 들보 아래에 걸려 있다
 1568년 무진년 봄 현직 광주 목사였던 송천 양응정이 지은 시. 부용정 들보 아래에 걸려 있다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朝來雨意欲絲絲 아침에 실낱같은 가는 비 내리더니
向挽靑光蕩綠池 저녁 되니 맑은 빛이 푸른 못에 넘실거리네
佳會豈非天所借 아름다운 이 모임 어찌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니런가
使君行色自應遲 사군의 행색 저절로 응당 더디리
(무진년 봄, 송천 양응정)


이어 제봉 고경명이 대선배 양응정 목사의 시에 차운하여 한 수를 더한다.
 
1568년 무진년 봄, 제봉 고경명이 양응정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
 1568년 무진년 봄, 제봉 고경명이 양응정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官裡文書綴亂絲 관청의 쌓인 문서 실처럼 얽혔는데
行春又到習家池 관내를 행춘 하다 습가지 들렸도다
非關泥酒停騶御 도중에 술 마시러 주차함 아니오라
問柳尋花故作遲 꽃향기 즐기다가 이처럼 더뎠도다
(무진년 봄, 제봉 고경명)


목사의 소임을 다하느라 처결해야 할 관청의 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바쁜 와중에도 모임에 참석한 양응정 목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모임에 더딘 것은 술 때문이 아니라 지천에 피어있는 꽃향기 때문이라고 살짝 둘러댄다.

광주 향약의 발상지, 연꽃을 닮은 '부용정(芙蓉亭)'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칠석(옻돌) 마을에는 시와 문장으로 일생을 풍미한 호남 선비들이 아름다운 봄날에 즐겼던 시모임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자가 있다.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로 지정된 '부용정(芙蓉亭)'이 그곳이다. 부용정은 광주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향약'이 시행된 유서 깊은 곳이다.
 
연꽃을 닮은 정자에서는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계회(契會)와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다
 연꽃을 닮은 정자에서는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계회(契會)와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다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향약(鄕約)'이란 향촌의 규약으로 고향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약속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이 깃들어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다.

부용정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돌산 만호와 순천 부사를 거쳐 전라감사·황해도 관찰사·형조참판을 지낸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다.

정자의 이름 부용(芙蓉)은 연(蓮)을 꽃 중의 군자(君子)라 칭송했던 북송(北宋)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設)에서 차용해 왔다. 이름처럼 정자 주변에 연방죽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부용정의 내력을 기록한 석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자 주변에 연방죽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부용정의 내력을 기록한 석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자 주변에 연방죽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부용정의 내력을 기록한 석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고향으로 돌아온 김문발은 중국 송나라 때 여씨(呂氏)의 '남전향약(南田鄕約)'과 주자(朱子)의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을 모방하여 칠석동 향약을 만들어 고을 사람들의 풍속 교화에 힘썼다. 이것이 '광주 향약좌목(鄕約座目)'의 유래가 되었다.

부용정이 있는 광주 칠석동은 넓은 평야지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수였다. 이를 위해 서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정신이 절실했고 위반 시에 적절한 벌이 주어지는 '향촌의 규약'이 필요했을 것이다.

연꽃을 닮은 정자에서는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계회(契會)와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다. 정자는 곧 씨족들과 마을의 단합을 위한 종회(宗會)와 동회(洞會) 등 각종 계 모임을 갖는 회합의 장소였으며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교육의 장소였다.
 
부용정을 지은 김문발이 기가 센 소를 매어두기 위해 심었다는 칠석동 은행나무. 수령이 약 600여 년으로 높이 약 26m, 둘레만도 13m에 이르는 거목이다.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0호
 부용정을 지은 김문발이 기가 센 소를 매어두기 위해 심었다는 칠석동 은행나무. 수령이 약 600여 년으로 높이 약 26m, 둘레만도 13m에 이르는 거목이다.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0호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죽령산 아래 넓은 들녘에 자리를 잡은 광주 칠석동은 풍수지리상 소가 누워 있는 '와우상(臥牛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가 센 이 소의 고삐를 매어두기 위하여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부용정을 지은 김문발이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이 약 6백여 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할머니 당산으로 부용정 앞 들판에 있다. 뒷산의 할아버지 당산과 함께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밤이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여 마을이 평안하기를 비는 세시풍속인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는 칠석동 고싸움 놀이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는 칠석동 고싸움 놀이
ⓒ 광주광역시 남구청

관련사진보기

 
부용정 옆에 있는 칠석동 고싸움 놀이 전수관
 부용정 옆에 있는 칠석동 고싸움 놀이 전수관
ⓒ 임영열

관련사진보기

   
당산제가 끝나면 마을의 거센 터를 누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상·하촌으로 나누어 고싸움놀이를 시작하는데, 이때 '고'가 먼저 은행나무 둘레를 돌고 나와야 한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10호로 지정된 칠석동 은행나무는 높이 약 26m, 둘레만도 13m에 이르는 거목이다.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고 주민들의 협동과 단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전해 내려오는 '칠석동 고싸움 놀이'는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다.

태그:#광주 부용정, #칠석동 고싸움놀이, #광주 향약, #부용정, #부용 김문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