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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전라북도에서 펴낸 <전라북도 방언사전>에 방언으로 알고 실린 일본말과 한자말, 표준어가 수두룩해서 말들이 많았다. 올림말이 1만 1086개인데, 벤또, 구르마, 고무다라, 빵꾸 같은 일본말을 지역말로 실었으니 어찌 비난을 피할 수 있겠나. 행정사무감사에서 질의에 나선 의원은 지역말로 둔갑한 말이 3200개나 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벤또'·'구루마'가 사투리?.. '전북 방언사전' 논란)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말을 쓰는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가 쓰던 입말이니 말뿌리야 어떻든 지역말로 알 수도 있다. 구루마 같은 말만 해도 우리 말에 구른다는 말이 있으니 '구르는 마차'쯤으로 잘못 알 수도 있겠다. 사실 우리 말인지 들온말인지 아리까리한 말이 좀 많나. 일테면 동해안 바닷가에서 쓰는 '머구리'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다.      

머구리는 개구리를 가리키는 말?    
 

지역신문에 난 기사 한 대목을 보자. 
영화의 배경은 대한민국 북한 고성이다. 탈북자 출신 머구리 김명호(55)씨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두 아들 '철준·철훈'의 든든한 아버지이고 아내 '순희'씨의 다정한 남편인 '명호'씨는 가족을 위해 60kg의 잠수복을 입고 오직 한 가닥 숨줄에 의지한 채 수심 30m의 고성 바닷속을 누빈다. (<탈북자 출신 머구리 명호씨가 누비던 파란 바다>, <강원일보>, 20. 4. 24. 28면)     

여기에 '머구리'라는 말이 나온다. '머구리'는 잠수부다. 바다 밑에서 두어 시간씩 일한다. 산소를 넣어주는 줄이 달린 청동 헬멧을 쓰고 들어가서 전복, 조개, 섭, 골뱅이, 해삼 따위를 딴다. 머구리는 말밑이 무엇일까? 듣자니 머구리를 엉머구리나 악머구리에서 온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마따나 엉머구리는 개구리다. <고려대한국어사전>에는 "[동물] 개구리의 한 종류. 몸이 크고 누런빛을 띠며 등에 검누런 점이 있다"고 풀어놨다. 우리말샘에서는 "참개구리의 방언(경남)"으로 적었다.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도 개구리를 뜻하는 한자 '와'(蛙)를 '머구리'라고 훈을 달아놓았다.  
 
훈몽자회에 나온 머구리와 머구리밥
 훈몽자회에 나온 머구리와 머구리밥
ⓒ 훈몽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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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머구리, 본딧말은 왕머구리

권정생이 쓴 시에 <엉머구리>가 있다.     
 
엉머구리가 얼룩무늬 비단옷을 입었다 
아직 추석도 멀었는데
엉머구리 엄마는
꼭 기태네 엄마처럼 바지런한 엄마인 게지
그러나 엄마 엉머구리는 가난뱅이
돈이 모자라서 비단을 조금밖에 못 떠 왔다.     
엉머구리는 그래서 
등때기만 비단으로 덮고 
배때기는 허연 무명베로 기웠다. (뒤 줄임)
_≪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악머구리'는 '왕머구리'에서 온 말이다. 왕은 '크다'는 뜻이고 머구리는 '개구리'의 옛말이다. 왕개구리가 한데 모여서 시끄럽게 우는 듯하다는 말인데, 왕머구리가 악머구리로 소리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더러  '악마구리'라고도 하는데, '악머구리'를 잘못 듣고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엉머구리 끓듯 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대단히 시끄럽게 구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마구 시끄럽게 떠들어대거나 소리 지르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문태준이 쓴 <수평>이란 시다.     
 
단 하나의 잠자리가 내 눈 앞에 내려앉았다 /염주 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투명한 두 날개를 수평으로 펼쳤다. /모시 같은 날개를 연잎처럼 수평으로 펼쳤다 /좌우가 미동조차 없다 /물 뒤에 뜬 머구리밥 같다  
   
여기서 머구리밥은 논이나 연못 같은 데에 떠다니는 여러해살이 물풀인 '개구리밥'이다. 우리말샘에는 '머구리밥풀'로 "「북한어」 <식물> '개구리밥'의 북한어."라고 적어놨다. 개구리를 가리키는 옛말이 '머구리'고, 개구리밥을 '머구리밥'이라고 한다면, 그 말이 '잠수부'라는 뜻으로 지역말에 남은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만하다.      

머구리는 일본말 모구리에서 온 말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머구리는 잠수를 말하는 일본말 모구리(もぐり, 潜り)에서 온 말이다. 일본은 이미 1870년대부터 어업에 잠수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배 밑바닥을 고치거나 침몰선을 끌어올릴 때 쓰던 잠수 기술을 들여와 해산물을 채취하는 데 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엔 함경남도에 '조선제1구잠수기어업주식회사'가  잠수부양성소를 열었다. 이 곳에서 머구리를 키워 해산물을 채취하는 곳뿐만 아니라 항구를 짓고 다리를 놓는 곳으로 보낸다. 어릴 적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에도 머구리가 나온다. 라오 박사가 잠수 장비를 하고 물속에 들어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머구리 모습이다.  
 
머구리가 없을 때, 우리는 맨몸으로 일했다. 해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라. 잠수 장비랄 게 물안경과 허리띠처럼 차는 추 말고는 없다. 그런데 머구리들은 잠수 장비를 갖추고 들어가서 해산물을 채취한다. 물론 바다 밑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일하는 까닭에 해녀들처럼 잠수병으로 앓는다. 해녀가 단독으로 바닷일을 하지만 머구리는 혼자서는 일하지 못한다. 추와 청동으로 만든 헬멧이 무거운 까닭에 혼자 힘으로 떠오를 수는 없기도 하거니와 공기 호스로 산소를 내내 넣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구리를 싣고 다니며 바닷일을 하는 배를 '머구릿배'라고 했다.  머구리의 말밑을 찾다보니 2017년 12월 12일에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다나>에서 한 답변이 있다. 그대로 옮겨본다. 
        
'잠수부'를 뜻하는 '머구리'는 표준 국어 대사전에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부 방언의 경우 사전에 제시되어 있지 않기도 합니다.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 강원도 방언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어원 자료 등에 '머구리'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게도 일본어에서 들어와 정착한 말인지 정확히 안내해 드리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국립국어원에 낸 답변 치고는 지나치게 비겁하고 옹색하다. 말처럼 말밑(어원)을 뚜렷하지 않을 수 있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다고 찾아서 알려주는 게 국립국어원이 맡은 일이 아니겠나. 지금 와서 이 말을 버릴 수는 없다. 이 말도 '냄비, 가방, 고무, 빵'처럼 우리 말로 끌어안아야 한다. 애초 우리 말에 없던 말이다. '잠수부'라는 말이 있지만 머구리하고 의미가 꼭 겹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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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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