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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앞에서 참여자들이 촛불을 켜고 있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참여자들이 촛불을 켜고 있다.
ⓒ 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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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도 잘 믿겨지지 않는다. 내일이라도 당당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 앞에 설 것만 같다. 끝까지 군인이고 싶어 했고, 부당한 강제전역 결정에 맞서 싸우겠다고 한 그였기에 그의 죽음은 너무 황망하고 갑작스럽기만 하다. 지금도 어떤 단어로 추모를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12일 국방부 앞에서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촛불행동이 개최되었다. '변희수의 내일, 우리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약 2시간 정도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어떤 특별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사회자가 있고 누군가의 규탄발언을 듣고 문화공연을 보고 회견문을 읽는 것으로 끝이 나는 익숙한 집회가 아니라, 국방부 건물 근처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행동이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비아냥거리는 모욕적인 글들을 자주 보는 상황에서 그를 추모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추모행동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또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던 촛불들을 보며, 모두 안도했을 것이다. 온라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추모의 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테니까.

"먹먹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변희수의 내일, 우리의 오늘'이 적힌 촛불을 밝히고 있다.
 "변희수의 내일, 우리의 오늘"이 적힌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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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켜고, 포스트잇에 추모와 다짐의 글을 작성했다. 처음엔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잘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하고 싶었던 말이 가슴 속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인지, 한숨과 함께 다 사라진 것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곳에선 편히 쉬라고,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너무 뻔한 글을 남긴 것 같지만, 글을 쓰는 동시에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끝까지 살아내어 당신이 이루지 못한 내일을 만들어가겠다는 다짐.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참석자들이 빼곡하게 남겨준 글들을 보며 내 마음과 같음을 확인하고, 소중하게 적힌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담으려 했다.

"먹먹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남겨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울었을 긴 밤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미어져요. 기억하고 말하기 위해 살게요."
"모두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더 일찍 지지를 표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국방부는 사과하고 시대착오적인 규정 폐지하라."
"오늘도 존재할 권리를 위해 나섰다. 변희수 하사에게만 허용되지 못한 그 권리를 위해."


슬픔과 자책이, 분노와 다짐이, 요구와 연대의 마음이 뒤섞여 있는 메시지가 붙여져 있던 판넬은 '변희수의 내일, 우리들의 오늘'이라고 적힌 제목과 변희수 하사가 살아있을 당시 그의 전역 처분 취소에 항의하기 위해 1500여 명이 참여한 탄원서 응원의 글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 위에 추모의 글을 붙이는 현실이라니, 안타까움이 더욱 느껴진다. 판넬 옆엔 참석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가져온 꽃들이 화사하게 놓여 있었다.

촛불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제법 쌀쌀해진 저녁 공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라는 경찰, 구청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혼자 걷는 사람, 친구와 걷는 사람, 잠깐 멈춰 국방부를 응시하는 사람, 걷다가 서로 마주칠 땐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먼발치에서 홀로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7시가 넘어서자 제법 사람들이 모였다. 변희수 하사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에서 준비한 초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하니. 적어도 200명이 넘는 인원이 한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전쟁기념관 앞에서 촛불을 켜고, 국방부를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소리를 높일 수 없으니, 눈빛이라도 항의와 분노의 마음을 전하려고 하는 듯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촛불들 사이에서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구호도 없고, 행진도 없었지만, 참석자 모두는 무엇이 변희수 하사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생각해보고, 분노의 마음을 촛불에 담아 국방부에 표현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싸우고 있었다.
 
참여자들이 판넬에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참여자들이 판넬에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 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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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위와 변희수 하사.

2017년 5월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 피해자 A대위 석방 촉구를 위해 국방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였다. 당시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적관계를 처벌하고 있는 군형법 제92조의6 조항을 위반했다며 A대위가 구속수사를 받게 되었고,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려는 군 당국의 움직임으로 많은 동성애자 남성들이 원치 않게 자기 정체성이 군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는 촛불을 켜고 '나도 잡아가라'는 구호를 참석자들과 함께 외쳤다.

4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동성 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 당시 사건 피해자들은 군을 떠나거나, 남은 사람들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다시 촛불을 들고 국방부 앞에 섰다. 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있고, 색출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정체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이름과 성별정체성을 용기있게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삶을 거부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0년 12월 24일 육군참모총장에게 변희수 하사의 행복추구권과 직업수행의 자유 등을 침해한 전역처분을 취소하고 원상회복할 것을 권고했고, 국방부장관에게는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장병을 복무에서 배제하는 피해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국방부가 묵묵부답하는 사이 변희수 하사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사과는커녕 인권위 권고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너무나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촛불을 들며 다짐한다. 변희수 하사의 내일은 우리들의 오늘이 만든다고. 내일이 찬란할 수 있게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오늘 우리의 행동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변희사 하사의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태그:#변희수 하사, #촛불 , #추모행동, #변희수의 내일 우리들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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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무지개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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