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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북, 때북, 째복이라고 하는 민들조개
 짜북, 때북, 째복이라고 하는 민들조개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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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를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물고 물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시인 백석(1912∼1996)이 1938년 6월 7일자 동아일보에 낸 <동해 東海>의 한 대목이다. 여기에 꽃조개, 명주조개, 강에지조개 같은 조개가 나온다. '명주조개'는 지금 이름도 '명주조개'다. 지역에 따라 명지조개(경상도), 노랑조개(전라도), 밀조개(충청도)라고도 하고 달리 '개량조개'라고도 한다. '명주'라는 이름처럼 빛깔도 맛도 참 곱고 보드랍다. 명주는 무늬 없이 명주실로 짠 천이다. '강에지조개'는 조금 낯설다. 강에지는 강아지, 강에지조개는 '개조개'다. 꽃조개는 꽃같이 고운 조개라는 뜻으로 쓴 말일 텐데,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는 '민들조개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어놨다.

민들조개는 동해안 바닷가에서 흔하다. 모래밭을 걷다 보면 고만고만한 크기에 빛깔도 무늬도 다 다른 조가비를 볼 수 있는데, 민들조개 조가비다. 강원도 바닷가 사람들은 이 조개를 짜복, 째복, 때북, 자복(이하 '짜북')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짜북'을 찾으면 "'조개'의 방언(강원)"라고 풀어놨다. 더 알고 싶으면 '조개'를 찾으라는 소리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짜북=조개'라는 말로 엉터리 풀이다. 명주조개, 개조개, 모시조개(가무락조개), 코끼리조개(말조개), 큰가리비(참가리비·밥조개), 섭(홍합), 키조개, 민들조개 따위를 싸잡아 단순히 '짜북'이라고 한다는 풀이인 셈이다. 짜북은 여러 조개 가운데 민들조개 한 종만 가리키는 홀이름씨다.

짜잘하고 보잘것없다고 짜북?

떠도는 말로는 짜잘하고 보잘것없다고 해서 '짜북, 째복'이라고 했다는데 사실 말밑은 뚜렷하지 않다. 혼자 생각이지만 눌리거나 부딪혀 납작해졌을 때 지역말로 '짜부 났다', '짜부라졌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말과 연관이 있을 듯도 하다. 째복은 짜북보다 작다는 느낌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짜북은 무늬나 빛깔이 비단이나 꽃처럼 곱다고 '비단조개, 꽃조개'라고도 하고 '민들조개'가 사전 올림말이다. '민들조개'라는 이름은 껍데기가 맨들맨들하다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맨들맨들하다'란 지역말이 있다. 걸리는 게 없이 반드럽다는 뜻. 민들조개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자.
민들조개 백합과의 조개. 백합조개류 껍데기는 길이 4.5cm, 높이 3.5cm, 폭 2cm 정도이고 삼각형에 가깝다. 껍데기는 희거나 옅은 갈색이며 여러 개의 굵은 방사상의 얼룩무늬가 있다. 강원도의 동해 연안에 분포한다._<표준국어대사전>
설명을 읽다 보면 고개를 삐끗 꼬게 되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먼저 높이가 3.5센티미터쯤 된다는데 짜북 대부분은 납닥납닥하다. 또 짜북을 동해 앞바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동해 연안에 분포한다'고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해나 서해 얕은 모래 바닥에서도 짜북이 있다. 그러니 이 설명은 "동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로 고쳐 적어야 한다.
 
짜북(민들조개)와 다른 조개들
 짜북(민들조개)와 다른 조개들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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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조개는 짜북(민들조개)이 아니다

'짜북'을 더러 '비단조개'이라고도 하는데 짜북(민들조개)과 비단조개는 전혀 다른 조개 종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비단조개를 찾을 수 없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풀어놨다.
비단조개 이치목 접시조개과에 속한 연체동물. 껍데기 길이는 약 120밀리미터 정도이며 견고하고 납작한 긴 달걀 모양이다. 껍데기 표면은 흰색이며 안쪽은 밝은 오렌지색을 띤다. (뒤 줄임)
'이치목' 할 때 '이치'는 '이'(치·齒)가 두 개 있다는 말인가. '접시조갯과'는 대체 어떤 조개 무리를 말하는지 어리둥절하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사전을 펼치는데 오히려 아득하고 컴컴해진다. 비단조개는 크기가 120mm라고 하는데, 곧 12cm다. 이 정도로 큰 짜복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우리말샘 뜻매김을 보면 이렇다.
비단조개 접시조갯과의 하나. 껍데기 표면은 흰색 바탕에 방사륵(放射肋)이 뚜렷하며 안쪽 면은 밝은 오렌지색을 띤다. (뒤 줄임)
여기선 '방사륵'이라는 말에서 털커덕 걸린다. '방사륵이 뚜렷하다'는 말 말고 부챗살마루가 뚜렷하다고 써줬더라면 어땠을까. 한결 알기 쉬울 듯하다. 다만 짜북도 조개 꼭짓점부터 조가비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부챗살마루가 있긴 해도 뚜렷하진 않다. 오히려 '나이금'(성장륵·시인 백석이 <동해>에서 쓴 표현)이 더 선명하다. 또 조가비 안쪽 빛깔이 밝은 오렌지빛을 띠지는 않는다. 결국 '비단조개'는 '짜북(민들조개)'이 아니다.

내 이름은 짜북이라고!

'짜북'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아니라 바닷가 사람들이 쓰던 말이라서 사전에서 버림받았다. 그러나 바닷가 사람들이라고 아무 고민 없이 조개에 이름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짜북을 캐다 먹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거쳐 함께 만들고 물려받은 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지역말을 찾아 우리 말 사전에 올려야 한다. 우리말샘에서는 "'조개'의 방언"이 아니라 '민들조개를 가리키는 강원도 말'로 적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쓰는 말이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순간에 이르면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민들조개를 올렸듯 짜북도 째복도 올리자. 종이사전이 아니라 전자사전을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언제든 설명을 보태거나 고칠 수 있지 않나. 나라면 이렇게 뜻매김하겠다. 
짜북 「명사」 「동물」 백합과 '민들조개'를 달리 일컫는 말.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주로 쓴다. 말밑은 또렷하지 않으나 크기가 작고 보잘것없다는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 꽃조개, 째복, 때북, 때복 따위가 있다. =민들조개
이렇게 사전에 올린다고 해서 문제랄 게 있을까. 멍게와 우렁쉥이, 옥수수와 강냉이, 봉숭아와 봉선화, 복숭아뼈와 복사뼈처럼 짜북도 때북도 꽃조개도 민들조개를 가리키는 다른 말로 인정해주자.

태그:#짜북, #째복, #민들조개, #강원도말, #동해삼척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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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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