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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충남 희망노조
 세종충남 희망노조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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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난국' 작은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혹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정책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과제라고 말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자체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예방적 조치들을 시행하기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의 관리감독과 지원은 263만 2955개의 작은 사업장에 쉽사리 닿지 않는다. 예방조치는커녕 산재발생에 대한 사후적 조치로서 산재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립·시행 역시 시스템 밖의 노동자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은 시쳇말로 '노답'인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앞서 나열한 작은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한계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작은 사업장들이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일'도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다수가 대기업에 다단계 하청관계로 종속되어 생산을 유지하는 이상의 수입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 때문에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제도적 정비는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사후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예방을 위한 비용의 부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전보건관리를 포함한 재생산비용 전체를 사회에 떠넘기는 플랫폼노동 사용자들의 문제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둘째,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리과정에서도 반복된 '영세하니까 열외'라는 궤변을 멈추고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영세함을 이유로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영세사업장의 한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 체계가 이를 수행하기 불가능하다면 대대적인 개편과 변화가 필요하며, 현재 진행중인 산업안전보건청 논의에 있어서도 작은 사업장의 문제는 그 중심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적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의 확보라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전략에서도 소외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노동조합이든 다른 형태든 노동자들의 집단적 결사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는 산업구조의 문제, 정부정책의 문제, 노동운동의 체질개선의 문제 등 다분히 전국적 의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성과 조응하며 현장과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

아직 지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연대활동은 주로 중대재해,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공동대응이 중심이며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을 통해 외연이 확장된 측면이 있을 뿐, 명확하게 작은 사업장의 문제에 주목한 활동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사고의 77.2%가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이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에서는 산별노조나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지는 반면 미조직 노동자들의 재해에는 지역에서의 연대활동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간의 연대활동을 작은 사업장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후적 대응을 넘어 예방적 요구로

2020년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의 식당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 중의 하나로 소독제와 청소용제 등의 화학물질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는 작업방식이 지목됐다. 고용노동부와의 첫 면담에서 지역의 활동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및 청소노동자들의 소독제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사고조사와는 별개로 혼합사용의 위험을 관련 사업장에 전파하고 경보체계를 가동할 것을 요구했다. 천안지청 역시 취지에 공감하고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충남노동권익센터와 지역 이주노동자지원센터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주노동자실태조사 과정에서 언어적 장벽과 사업주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동권익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충남도와의 협의를 통해 방역정보에 대한 다국어번역과 배포, 외국어 방역경보 문자발송 등의 대책이 발 빠르게 실행되었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예방조치들을 지역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과제이지만, 최소한 드러난 사례들을 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비슷한 문제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연대체가 스스로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감시망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자각과 장기적으로는 공적인 시스템이 이러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전망이 공유되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급성중독직업병관리체계도 비록 협소한 범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에서의 의제화

세월호참사를 지나 김용균투쟁을 기점으로 생명과 안전, 노동재해의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자리잡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같은 성과들이 만들어졌지만, 문제의 핵심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위험은 지역사회 핵심의제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나 의회만을 탓할 일도 아닌 것은, 우리의 지역연대활동 역시 중대재해 대응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라는 요구 외에, 이 문제에 대해 노동지청과 지방정부에 우리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않다.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 안에서부터 이 문제를 핵심적 의제로 삼고 구체적 실천과제와 요구들을 토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례로,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아래 지역명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남지역에서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의 주도로 지역명감 양성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매년 20~30명이 위촉장을 받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이들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출입이 보장되지 않는 한 법이 정하고 있는 지역명감들의 권한과 역할을 행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과거 몇몇 사고대응 과정에서 지역명감들의 참여를 보장받고 사고조사에 참여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사고조사에 있어 노동자 참여를 해당사업장으로만 제한하며 지역명감의 참여권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조차 출입이 되지 않는 지역명감들이 지역 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활동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각 현장에서도 지역명감의 지역적 역할과 책임에 주목하기 보다 자기 현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숫자를 늘리는 협소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역명감들이 사업장 담을 넘어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시간과 권한의 보장을 확대하는 투쟁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조직화와 발 맞추기

지역차원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작은 사업장의 문제들에 있어 (아주 제한적인)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역시 제한적인) 사후적 개입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결합되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일상적인 권리로 천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지역노조, 공단노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작은 사업장 조직화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 충남에서도 세종충남희망노조가 작은사업장 조직화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서는 투쟁은 이러한 조직화사업과 더욱 긴밀하게 조응해야 한다. 임금과 복지 등 단위사업장의 요구를 기반으로 조직되는 전통적인 노동조합들과는 달리 업종이나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전략, 교섭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 조직화에 있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조직화의 주요한 의제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해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현실에서 풀리지 않는 사회문제가 있다면, 그 이유는 해법이 '요구'로서 구체화되지 않았거나, 요구를 발화할 '주인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이라는 문제에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리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처지이기에, 전국적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안전보건활동을 더욱 촘촘히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이신 최진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3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작은사업장, #하청, #중대재해처벌법, #작은사업장노동자, #새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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