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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다, 일하고 싶다' 노래를 불렀더니 정말 일을 하게 됐다. 경력단절 10년 만에 다시 방송 바닥으로 돌아왔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으나 정규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게 된 건 딱 10년 만의 일이었다. 나도 이제 제대로 돈을 벌게 됐구나. 근로 의욕 충전 가득이었다. 
 
매일 아이템과 전쟁을 하고, 섭외로 전쟁을 하고, 편집과 전쟁을 치르다 보니 하루하루가 피폐해졌다.
 매일 아이템과 전쟁을 하고, 섭외로 전쟁을 하고, 편집과 전쟁을 치르다 보니 하루하루가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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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살이 2Kg 빠졌다. 하아, 역시 다이어트는 맘고생이 제격이다. '이 놈에 방송판 변한 게 없구먼', '왜 이렇게 섭외가 안 되지?', '왜 이렇게 안써지는 거야?' 매일 아이템과 전쟁을 하고, 섭외로 전쟁을 하고, 편집과 전쟁을 치르다 보니 하루하루가 피폐해졌다.

문제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일을 시작한 엄마 때문에 아이들은 거의 방치 수준이었다. 인스턴트로 끼니를 연명하고, 티브이와 게임이 보모가 됐다. 이건 아닌데 싶어 울적해졌다. 하지만 근로 기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알아주든 말든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게 남편이 다정히 말했다.

"자긴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하는 타입이구나..."

한마디로 집안이 개판이란 얘기다. 노동자는 매일 고뇌했다.

'이렇게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남편과 아이들은 그만 하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나는 기어코 끝을 보겠다고 떼를 썼다. 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이 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극한 스트레스의 보상은 월급으로 돌아왔다.

'아, 정말 돈 버는 거 쉽지 않구나...'  

10년 만에 받은 월급과 동생의 주식 

내가 죽기 살기로 일하는 동안, 계절은 바뀌어 가고 있었다. 맵살스러운 바람은 여전했지만 볕은 따뜻했다. 그 순간 왜 남동생이 떠올랐을까? 갑자기 가족애가 싹튼 건 오랜만에 내리쬐는 햇볕이 내 마음까지 닿은 탓이리라.

남동생은 일 년 전 귀농을 했다. 월급 노동자에서 프리 농부가 되었다. 프리 농부는 겨울이 되면 일이 없다. 일이 없다는 건 돈 들어올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자도 아니고 애도 둘이나 있는 가장인데... 생활은 되려나. 

"우에 지내노? 생활비는 충당되나?"
"걱정도 팔자다~ 내 한 건 했다 아이가."
"왜? 뭔데?"
"내 주식 대박 났다 아이가. 내가 옛날부터 누나한테 사라고 한 종목 있제. 그거 사놓으라니까."
"아.... 그거! 근데 그거 어떻게 사는 건지 알아야 사지..."


잠시 침묵. 

"근데 그걸로 생활이 되나?"
"엄마한테 용돈도 줬다. 걱정하지 마라. 그라고 또 봄이 왔다 아이가."


동생네 가족이 주식 이익금으로 이 겨울을 따습게 났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그런데, 안도감 다음으로 밀려드는 이 기분은 뭐지?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나는 거의 매일 10시간 이상을 일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며 스트레스를 종류별로 맛보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힘들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이 주식이 벌어다 주는 돈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근로 의욕이 사라졌다. 

요즘 아이들의 꿈은 건물주다. 노동하지 않아도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돈 많은 백수'거나. 그러니까 요즘 아이들은 무노동을 꿈꾼다는 얘기다. 무노동을 꿈꾸는 사회는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 것일까? 

친구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더니 몇 년 후 두 배 이상의 수익을 내고 되파는 것을 보았다. '이래서 재테크 재테크 하는 거구나'... 한편으론 '돈 벌기 참 어렵네' 보다 '돈 벌기 참 쉽네'라는 양가적인 맘이 들었다.

일 할 맛 나는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보람되게 돈을 벌고 싶다.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보람되게 돈을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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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부동산, 주식 같은 재테크다. 심지어 12살 아들이 "엄마도 주식해?"라고 물어보았다. 주식을 어떻게 아냐 물으니 티브이 예능에도 나온단다. 세상에 주식 안 하는 사람은 왠지 나뿐인 것만 같다. 노동으로 돈을 벌면 왠지 바보가 된 기분,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재테크로 돈을 벌면 왠지 승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이것은 내 느낌적인 느낌일 뿐일까? 

노동과 재테크의 균형이 망가진 것 같다. 기업의 가치,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세를 타는 동안 노동의 가치는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동이든 궁극적으로는 돈이 목적이겠지만 반드시 그게 전부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건 돈을 벌고 싶은 마음 외에도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해보려 했던 건 '해냈다' 하는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 하는 과정 속에서 동료들과의 협업, 노력, 성과도 내겐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아무리 빛난다 해도 결과치가 상대에 비해 너무나 초라할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일에도 맛이 있다. 일 할 맛 나는 세상은 어드메쯤 오고 있는가?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보람되게 돈을 벌고 싶다.

태그:#노동자,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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