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TV 사극 <가시리잇고>의 주인공인 음악가 박연은 과학자 장영실과 함께 세종대왕의 문화사업을 견인했다. 세종보다 19년 전인 1378년에 태어난 박연은 만 27세 때 과거에 급제해 태종 이방원의 신하가 되고 40세 때인 1418년부터 세종의 신하로 살았다.

똑같이 태종 때 발탁된 박연과 장영실은 세종시대에 큰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세종에게 큰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세종시대에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장영실은 세종을 보좌한 지 24년 뒤인 1442년, 임금의 수레를 잘못 만들어 부서지게 했다는 죄목으로 관직을 잃고 곤장형(장형)을 받았다. 장영실이 직접 제조한 것은 아니지만, 감독상의 부주의가 빌미가 됐다. 세종의 특명으로 곤장 100대가 80대로 감해지기는 했지만, 그 뒤 그는 과학 활동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후의 행적은 실록에 나오지 않는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릉.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릉. ⓒ 연합뉴스

 
세종은 '종합병동'이라 할 만큼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그의 인생에서는 '한글' 못지않게 '질병'도 핵심 이슈였다. 왕이 된 21세 때는 몸이 지나치게 비만이더니, 25세 때는 과도하게 수척해지고 약해졌다. 상왕인 아버지 밑에서 4년간 눈치를 보며 직무와 학문을 지나치게 열심히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28세 때는 두통과 이질(배설물에 고름 등이 섞여 나오는 증상)을, 29세 무렵부터는 '평생의 동반자'인 소갈증(당뇨병)을 앓았다. 31세 무렵부터는 왼쪽 다리 통증이 심해지고 등에 부종이 생겨 제대로 눕지 못했다. 34세 때는 안질(눈병)과 어깨 통증이 생기고 체중이 급감해 허리띠가 헐거워졌다.

38세 때는 등이 굳어지고 꼿꼿해졌다. 41세 때는 임질(임균에 의한 성병)이 심했고, 시력이 더 악화돼 사람을 식별하기 힘들었다. 42세 때는 소갈증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이상 들이켰다. 이 시기에는 몸이 차고 냉했으며 안질이 더욱 심해져 세자(문종)와 업무를 분담해야 했다. 그에 더해 관절 질환도 있었다. 44세 때는 두 눈이 아프고 흐려져, 어두운 데서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45세 때는 안질이 너무 심해 세자에 대한 양위를 시도하기도 했다.

45세 때인 이 해가 장영실이 처벌을 받은 1442년이다. 일벌레나 마찬가지였던 세종이 자리를 넘기고 싶어 한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시기의 세종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세종이 신체적·심리적으로 매우 민감할 때에 하필이면 장영실이 형벌을 받게 됐던 것이다. 임금의 신임을 잃게 된 장영실 입장에서도, 징계를 주는 세종 입장에서도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권도의 입에서 튀어나온 박연

박연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가시리잇고>의 박연(찬희 분)은 연인 민유정(박정연 분)을 구하려다가 위기에 직면하지만, 실제의 박연은 세종을 보좌하던 중에 위기와 맞닥뜨렸다. 왕궁의 입지에 관한 논란이 벌어진 1433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박연은 55세이고 세종은 36세이던 이 해에 왕궁 입지 논란을 촉발시킨 인물은 풍수 전문가 최양선이다. 음력으로 세종 15년 7월 3일자(양력 1433년 7월 19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최양선은 "경복궁 북쪽 산은 주산(主山)이 아닙니다. 목멱산(남산)에 올라 보면, 향교동(교동)에서 이어지는 줄기인 지금의 승문원 터가 진짜 주산입니다"라고 한 뒤 "만약 창덕궁을 승문원 터로 옮기면 만세의 이익이 될 겁니다"라고 건의했다.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었다.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250미터 정도 되는 곳이다. 오늘날 이 주변에는 헌법재판소와 현대건설 등이 있다. 이곳으로 창덕궁을 옮기면 왕조가 흥할 거라는 게 최양선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예조 좌참판인 권도가 옮길 필요가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음력으로 같은 달 15일자(양력 7월 31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권도는 '최양선의 주장을 상세히는 모르지만, 사람들한테 들은 내용이 있다'고 한 뒤, "만약 (승문원에서) 호걸이 생긴다면 사직(社稷, 국가)에 이롭지 않다"는 말로 최양선의 주장을 정리했다.

'승문원을 지금처럼 놔두면 거기서 호걸이 나올 경우에 사직에 이롭지 않다고 최양선이 말했다'는 게 권도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권도는 세종 역시 그런 생각에 기울어 있는 듯이 언급했다.

권도의 말을 들은 세종은 의아했다. 최양선이 호걸을 운운한 적이 없고, 세종 자신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권도를 불러 호걸 운운의 출처를 캐물었다. 그러자 권도의 입에서 박연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박연이 권도에게 최양선 이야기를 하면서 호걸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이었다.

음력으로 7월 21일자(양력 8월 6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권도는 박연이 자신에게 "지금 승문원 터를 살펴보는 것은 필시 호걸의 등장을 막고자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노라고 진술했다. 임금의 신임을 받는 박연이 이런 말을 했으니, 권도에게는 그것이 세종의 생각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세종이 호걸의 출현을 막고자 창덕궁을 승문원 터로 옮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만도 했던 것이다.

세종은 박연을 소환했다. 위 날짜 실록에 따르면, 박연은 "승문원 터를 살펴보는 것을 보고, 신은 망령되게도 호걸의 출현을 의심해서 살펴보는 줄로 생각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혼자서 그런 짐작을 한 뒤 발설했던 것이다.

박연은 신하이지만 세종보다 19세 많았다. 화가 난 세종은 그 점을 고려하지 않고 질책을 쏟아부었다. "그대 역시 서생인데, 어찌 일의 근본도 모르고 망령되게 간사한 생각을 했는가?"라고 꾸짖었다. 세종은 신하들 앞에서 "늙은 서생이 경중도 모르고 망발했다(老書生不知輕重而妄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박연을 비판했다. 박연이 임금의 생각을 임의로 추론해 발설한 데 대한 분노가 컸던 것이다.

세종은 주저 없이 징계를 내렸다. 박연을 정3품 직에서 파면했다. 일종의 유언비어 유포죄로 징계를 내린 셈이다. 그동안 별 탈 없었던 박연의 관직 인생에 이렇게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 세종은 현실 문제를 감안했다. 음악 사업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위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박연을 파면하는 동시에, 음악 사업은 계속 관장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 형식상으로는 중징계를 내리면서도 실제로는 관용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 뒤 박연은 정3품 관직에 재기용되고 장관급인 예문관 대제학에도 임명됐다.

관용
 
 SKY TV 사극 <가시리잇고> 한 장면.

SKY TV 사극 <가시리잇고> 한 장면. ⓒ SKY TV

 
장영실의 실수도 가볍지 않지만, 박연의 실수 역시 마찬가지다. 박연의 발언은 세종이 호걸의 출현을 염려해 궁궐을 옮기려 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군주의 권위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었던 것이다. 국가적으로 뭔가 불안한 조짐이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길 수도 있다.

박연의 잘못이 장영실의 잘못보다 작다고 보기 힘든데도, 세종은 박연에게 훨씬 더 큰 관용을 베풀었다. 박연이 받은 파면처분도 물론 가볍지 않지만, 그 처분은 결과적으로 유야무야됐다. 반면, 장영실이 받은 곤장형은 신체적으로뿐 아니라 위신상으로도 타격이 됐다. 임금의 신임을 받던 관료가 곤장을 맞았으니, 위신의 추락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또 형벌을 받은 이후의 장영실 행적은 기록되지 않은 반면, 징계를 받은 이후의 박연 업적은 기록돼 있다. 둘 다 세종의 노여움을 샀지만, 박연의 경우에는 그것이 공적 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박연이 장영실보다 후한 대우를 받은 것은 두 사람에 대한 신임의 차이에 기인했을 수도 있다. 또 박연은 장영실처럼 관노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금이 쉽게 다루기가 어려웠다는 점에도 기인했을 수 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박연이 상대적으로 후한 대우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대우로 인해 박연은 일할 기회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었다. 그가 왕산악 및 우륵과 더불어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받을 수 있게 된 데는 1433년의 위기를 잘 피해나간 것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가시리잇고 박연 세종 장영실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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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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