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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핀란드에 온지도 만 2년 8개월이 됐다.
 
통상 해외에 살면 한국에서 어떤 게 유행하는지 더 관심이 가는데,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핀란드에서 어떤 게 유행하는지 더 관심을 가진다. 
 
요 며칠간 친구들의 소셜 미디어에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 이야기가 많이 올라왔다. 두 작품을 다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파친코 책 사진을 내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스웨덴에 사시는 큰 고모가 스웨덴어로 읽으셨다고 댓글을 달았다. 한글로 번역된 <파친코>가 나오기 전이라 나는 영어 원서로 읽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 사는 한국사람 두 명이, 다른 언어로 같은 작품을 읽고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해졌다. 
  
파친코 Pachinko
 파친코 Pachinko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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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 속 한국인의 정서     
 
다시 파친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 책을 읽는 동안 훈이와 양진과 순자의 이야기가 내 얘기 같아 울면서 읽었다.
 
'집, 부모님의 내리사랑, 한국 사람이 가진 정서, 이민자의 삶'을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이겠다. 그런 이야기를 보는 동안 쓸쓸했고, 따뜻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훈이와 양진, 순자 혹은 아직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응원하게 됐다. 
 
집에서 보는 미나리
 집에서 보는 미나리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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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영화 <미나리>를 봤다. 영화 속에서 미국으로 오신 어머니가 고춧가루를 꺼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졌다.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를 보고 그게 왜 더 개인적으로 느껴졌을까. 단순히 집을 떠나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또 다른 접점이 있었을까?
 
나에게 집을 떠난다는 건 내 인생에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 속 순자와 모니카의 감정이 나에게 더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첫 번째 집을 떠나는 여정은 '가출'이었다. 이제 아기 엄마가 된 친구와 우리는 집을 나오는 걸로 우리 의견을 알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친구네 집 아파트 옥상에 은색 돗자리를 깔고 박스를 주워와 바람을 막을 거라며 나름대로 텐트를 지었다.
 
그 날 엄마 아빠와 친구 부모님께서 찾아오시면서, 결말은 모두의 어이없는 웃음으로 끝났고 첫 가출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2004년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
 2004년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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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을 떠나는 여정은 스웨덴이었다.
 
어릴적 학창시절 종종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야 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 고생을 시켜드려서 죄송하지만, 당시엔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질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맞벌이를 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걷잡을 수 없는 반항기를 가족들과 해결하려고 하셨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고모들과 이야기해서 나를 큰고모에게 보낸다고 했다.

'큰고모는 스웨덴에 사시는데... 그럼 스웨덴에 가는 건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부모님과 고모들 덕분에 그렇게 경남 창원에서 스웨덴 예테보리로 한 달간 인생에 중요한 여정을 다녀오게 된다.
 
세 번째로 집을 떠난 건 경남 진주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7000km를 떠나 온 거다.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많이 했었다.
 
'수연아, 니는 외국 사람이랑 결혼할 거 같다.'
 
나는 대답했다.
 
'외국인이든 한국 사람이든, 나는 내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랑 만날낀데.'

핀란드인과 결혼 뒤 타국에서의 삶... 나와 같은 모두가 힘내기를 
 
남편과 친정 가족들이 같이 떠난 통영 여행
 남편과 친정 가족들이 같이 떠난 통영 여행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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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내 인생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것도 핀란드 사람과. 남편과 혼인신고를 준비할 때 스웨덴에 사시는 큰고모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셨다. 덤덤히 어른인 것처럼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 날 큰고모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곱씹었다. 눈물이 났다. 거기에는, 나보다 먼저 40년 전에 먼저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은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걱정이 들어있었다.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최근에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큰 고모와 내 삶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스스로를 얼마나 부단히 증명해 보여야 했을까.'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서 더 강해져야 했겠지.'
 

타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렸을 적의 나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 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는 늘 힘이 있고 강렬하다. 나 또한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와 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쓴 글이 타지에서, 타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태그:#미나리, #파친코, #이민자, #핀란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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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 거주중인 하고잽이. 이방인 최씨. 궁금한 게 너무 많은 밀레니얼.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만의 인생 지도 제작을 즐기는 중. 그므시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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