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살얼음판을 딛듯 겨우 새해로 건너왔다. 코로나 비상시국이 어서 종료되길 바라며, 둘러앉지 못해 섭섭한 마음들은 짧은 영상통화로나마 달래본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뉴노멀'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인간에 의한 또 하나의 지구 대멸종 시기가 될 거라는 '인류세(Anthropocene)'가 저절로 떠오른다. 심란한 와중에 맞이한 설 연휴, 눈길이 닿은 영화가 있었다. 바로 넷플릭스에서 절찬리에 서비스 중인 영화 〈승리호〉(2021)다. 
 
'비시민 지구인'들이 사는 미래의 헬조선 

2092년,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지구가 오염되고 우주가 난개발되자 '우주 청소부'(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들이 난개발 과정에서 양산되는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며 살아간다. 영화는 마치 코로나블루를 날려버릴 듯, 추억의 전자오락을 입체적으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했다. "비켜라, 무능한 것들아!"를 외치며 종횡무진 우주를 횡단하는 '승리호'의 속도감이 안방 스크린까지 실감 나게 전달됐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인간이 망치는 건 지구뿐만이 아닐 거라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파국이 지구 멸망이 아니듯, 지구의 끝이 반드시 인간의 멸종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태양 빛이 가려지고 토양이 산성화되며 식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지금-여기' 현실속의 기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가상의 위성 궤도에 자리한 새로운 인류의 보금자리 (UTSUTOPIA ABOVE THE SKY), 하늘 위 유토피아와 거기에 소속된 '선택된 시민'들을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구분은 분명 제국과 식민이라는 지난한 역사를 참조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기는 게 무조건 좋은 거'라는 뜻을 가진 '승리호'에는 여전히 각자도생의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있다. 최첨단 통역기로 이미 국가 간 언어 장벽이 무너진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경계는 국적이 아니라, 지구와 지구 밖 우주를 가르는 '비시민 지구인'이라는 정체성이다.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진부한 부성애 스토리? 
 
 영화 〈승리호〉 스틸컷

영화 〈승리호〉 스틸컷 ⓒ 넷플릭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우주에서 떨어진 '도로시·강꽃님(박예린 분)'이 나타난다. '도로시'는 지구를 날려버릴 살상 무기가 장착됐다고 알려진 안드로이드➊지만, 사실은 인류를 구원할 나노봇➋을 체화한 인간 '꽃님이'였다. 승리호 선원들은 지구와 인류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 밝게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비인간 트랜스 휴머노이드➌ '업동이'와 UTS에 대항해 우주해적단을 이끌던 여성 '장 선장'(김태리 분)이다. 이들은 '언니'라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호명으로 불릴 때 "너, 아니구나"라고 했고, 피땀 눈물만큼 인간적 속성으로서 "똥을 싸는 로봇은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타자를 이해할 맥락을 짚어내는 이들이기에 권력자의 위선적인 선전과 무자비한 억압 속에도 진실을 알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주력 서사는 '꽃님이'의 진실을 가장 늦게 알아챈 조종사 '김태호'(송중기 분)에게 주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태호'가 그의 죽은 딸 '순이' 대신, 살아있는 '꽃님이'를 구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지난한 대목에서 가장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물론 역사적 순간, 클로즈업된 인물로서 어쩌다 영웅이 되는 소시민 남성이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에야 발휘되는 부성애는 어딘가 미심쩍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최근 〈부산행〉(2016),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등 아버지가 딸들을 구하는 서사는 장르를 넘나들며 생성되고 있다. '그'가 어떤 부정 혹은 악행을 저질러도,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아버지들의 몫이다. 
 
절대자에 대항하는 '승리호' 선장의 다짐으로

그럼에도 세상 끝에 선 아버지가 목숨 걸고 기어코 딸을 구해내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딸'은 곧 미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타포는 〈승리호〉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꽃님이'는 파괴에서 생명 그 자체로의 전환을 순식간에 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는 전무후무한 팬데믹 위기를 여성들이 어떻게든 땜질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도 한다. 당장 대면 서비스 위주의 비정규직 일터에서 쫓겨난 여성들이 향하는 곳은 또다시 무급의 돌봄노동 혹은 열악한 노동 현장이다. 이처럼 '여성-생명'의 비유는 때로 착취의 알리바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미래를 그대에게'라고 하지만, 딸들은 아직 오지 않는 미래의 주인공인 셈이다. 영화에서는 거의 생략된 선장 장현숙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결말에서 꽃님이가 지구에 나무를 만들러 갈 수 있었던 것은 UTS의 독재자이자 절대자 '설리반'을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장 선장'의 오랜 꿈이 실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같은 이들 때문에 어제의 내일로서 오늘이 있는 것은 아닐까? 
 
팬데믹 이후,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도래할까. 절대자에 대항하는 '승리호' 선장의 다짐으로, 그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청소부'들의 마음으로, 오늘 이 난세를 질주하자.
 
➊ 자칫 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로, 겉모습과 행동이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말함.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로봇들이 대표적인 예다.
➋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분자 또는 원자 크기에 가까운 극미소의 기계나 로봇 
➌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인간의 신체 구조를 반영한 로봇. 카이스트가 개발한 휴보Hubo가 대표적인 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류진희 님은 성균관대학교 강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참여사회 참여연대 승리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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