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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이 낸 시집 <묵호>에 보면 '오징어 내장국', '곰칫국', '가자미 식혜', '물망치' 같이 바닷가 마을 음식을 소재로 쓴 시가 여러 편 나온다. 그 가운데 이런 시가 있다. 
 
단단한 머리에
퉁방울처럼 부릅뜬 눈
몸에는 우툴두툴 가시 박힌 갑옷을 입었지만
말 마라 그의 모습은
힘든 세월을 살아오신 내 어머니의
갈라터진 손마디 보여 주네
(……)
그러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이름마저 삼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가슴에 슬픔 많은 물고기

가슴에 슬픔이 많은 물고기라, 바닷가 사람들이 '삼식이'라고 하는 고기는 과연 어떤 고기를 말하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삼식이'를 찾으면 우리말샘에 '삼식이 남편'이 나온다. 직장에서 밀려나 아내한테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차려달라고 하는 남편을 놀림조로 쓰는 말이다.

'삼식이'는 지역말이다. 삼식이를 탕으로 끓여내는 식당 같은 데 가보면 메뉴판에 '삼숙이 매운탕'으로 적어놔서 처음 보는 사람은 크크크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 시 제목이 '삼세기'인데 이 시에 나오는 '삼식이'는 '삼세기'를 가리키는 지역말이다. 표준어 사정 원칙인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아닌 까닭에 '삼세기'를 찾아야만 설명이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삼세깃과의 바닷물고기. 쑤기미와 비슷한데 몸은 우둘투둘하며, 짙은 녹색 또는 녹색이고 옆구리에 검은 갈색의 가로띠가 있다. 등지느러미의 가시가 연하다"로 풀어놨다. 이 글로만 읽고 이 물고기가 과연 얼마만한지 무엇을 즐겨 먹는지 어떤 버릇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름이 '삼세기'인데 어떤 까닭으로 '삼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삼식이(표준어로는 삼세기)
 삼식이(표준어로는 삼세기)
ⓒ 국립수산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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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삼형제는 아니지만 

삼식이는 깊은 바다 바닥에 웅크리고 살다가 찬바람 나는 11월에서 이듬해 2월 무렵까지 얕은 바다로 나와 바위나 돌에다 알을 너댓 덩어리씩 낳는다. 못난이로 손꼽히는 심퉁이, 곰치, 물망치처럼 겨울이 제철이다. 얕은 바다에 모여들면서 많이 잡히기도 하거니와 알까지 가득 배어 탕으로 가장 맛이 좋을 때다.

삼식이는 다 자라면 30~40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삼식이를 보면 머리통이 정말 크다. 몸의 절반쯤 될 듯하다. 머리 위에 뿔이 하나 툭 나와있고 턱과 머리, 뺨에 나뭇가지 같은 살이 흐늘흐늘 붙어있다. 등에도 작은 가시들이 우툴두툴 나있고 살갗이 거칠다. 쑤기미하고는 다르게 지느러미 가시가 굵고 억세지 않고 독이 없다.

쑤기미는 쏠치, 범치라는 지역말에서 보듯 쏘는 물고기, 범같이 사나운 물고기인데, 쑤기미한테 쏘이면 팔을 잘라내고 싶을 만큼 아프다고 한다. 삼식이는 몸빛이 옅은 갈색바탕에 진한 얼룩무늬가 있는데 예전 예비군 군복과 비슷하다 해서 '예비군'이라는 별명도 있다. 다른 물고기 새끼나 새우 따위를 먹는 육식 물고기인데 때로는 자기보다 큰 물고기를 잡아먹을 만큼 식탐이 크다.

갓 잡은 삼식이는 회로도 먹지만 껍질을 벗기고 뭉텅뭉텅 썰어 탕으로 먹는다. 고추장을 풀고 삼식이를 손질해 넣고 미나리, 마늘, 대파 따위 갖은 양념을 더해 끓여낸다. 삼숙이는 내장이 별로 없어서 명태 곤지를 넣는데 오래 끓이면 살이 너무 물러진다. 지역에 따라 맑은탕으로도 낸다.

표준어가 아닌 이름으로 쓸 권리

떠도는 말로는 못생긴 외모 탓에 '삼식이'나 '삼숙이'가 되었다고 한다. 또 잡아서 물통에 던져 놓으면 먹은 것을 토해내면서 복어처럼 배를 부풀리고 뒤집혀 둥둥 떠 있다가 슬그머니 물속으로 들어가는 습성이 있는데, 애초 말썽을 일으킬 깜냥도 안되면서 허풍을 친다고 '삼식이'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삼식이나 삼숙이에서 삼세기로 된 것인지 삼세기가 삼식이, 삼숙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빠르게 소리 내 보면 삼숙이도 되고 삼식이도 되고 삼세기도 될 듯하다. 두우쟁이, 눈검정이(개리), 심퉁이, 대농갱이, 황줄껌정이 같은 물고기 이름에서 보듯 뒷가지 '–이'가 붙는 일은 흔하다.

삼식이를 경기도에서는 꺽지, 충청도에서는 꺽쟁이, 전라도에서는 꺽주기, 경상도에서는 수베기라고 하고, 북쪽에서는 '쑹치'라고 한다. 물고기야 바닷물 따라 철 따라 강원도도 가고 경상도도 간다. 사람들이야 보이지 않는 선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책상물림들이야 표준어니 방언이라고 해서 말을 가르지만 삶이 맞닿는 곳에서는 서로 말을 배워 써왔다. 내 사는 곳에서는 '삼식이'라는 하는데 그쪽에선 '삼숙이'라고 하는가 보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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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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