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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비폭력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군부의 폭력 진압에 희생자가 늘고 있다. 10일 현재 최소 6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을 미얀마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마음 졸여가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얀나잉툰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장은 "내일이라도 당장 미얀마로 돌아가야 하나" 하루에도 열두 번 고민한다. 최근엔 밤잠을 못이루고, 설령 잠이 든다 해도 깨는 일이 잦아졌다.

미얀마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비폭력 시위를 바라보는 얀나잉툰 지부장은 절박함과 고뇌 그리고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8일 저녁 부평역 인근 미얀마 불교사원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통역엔 미얀마 출신 원라이씨가 나섰다.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임하는 미얀마 시민들"
 
왼쪽부터 인터뷰 중인 얀나잉툰 NLD한국지부장, 통역을 도운 원라이씨.
 왼쪽부터 인터뷰 중인 얀나잉툰 NLD한국지부장, 통역을 도운 원라이씨.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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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 지내나.

"페이스북과 인터넷, 외신 뉴스를 보며 미얀마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얀마에 있는 어머니와 친구들 걱정을 한다. (한국에서) 목재 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재단하는 일을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쿠데타가 터진 이후로 아무것도 재미있는 것이 없다. 새벽까지 잠도 못 잔다. 2015년 미얀마에 민주화가 시작되나 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 현재 미얀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미얀마 군부는 2008년에 자신들이 만든 헌법을 어기면서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이번에야말로 미얀마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시위에 나서고 있다."

- 왜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고 하는 건가?

"1962년에 우리 아버지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1988년에 나와 같은 세대들이 다시 한 번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군부의 오랜 통치 결과, 지금은 아무리 국민들이 열심히 일을 해도 잘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 군부가 미얀마의 모든 부를 다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에 NLD가 총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이후로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새로운 세대는 민주주의를 알게 됐다.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아웅산 수치가 쿠데타 대비하지 못한 이유는 군부가 만든 헌법 때문"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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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가 모든 부를 가져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한국도 군사독재를 경험하지 않았나. 한국의 독재정권은 국민들을 위한 일도 하면서 자기 잇속도 챙긴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오로지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 일한다. 국가에서 받는 세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단체 기부금, 하다못해 절에서 받는 시줏돈도 챙겨간다. 절의 시줏돈을 챙겨가면서 하는 말이 '국가의 재정이 어려우니 석가모니에게서 잠시 빌려가겠다'는 것이었다.

또 최근 아웅산 수치 고문의 노력으로 인도로부터 코로나 백신을 받았는데 그것도 군부가 모두 강탈했다. 그래서 1차 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2차 접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군부가 미얀마의 모든 부를 자신들만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 미얀마에서는 쿠데타가 여러 번 발생했다. 수치 고문은 왜 이를 대비하지 못했나?

"2008년에 군부가 만든 헌법 때문이다. 미얀마에서는 선거와 관계없이 국회의원의 25%를 군부가 가져간다. 대통령이 아닌 군부의 총사령관이 군통수권을 가지며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도 총사령관이 임명한다.

잘못된 헌법이기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도 했다. 60%가 찬성했지만 군부가 임명한 25%의 국회의원과 군 출신 국회의원들에 의해 좌절됐다. 수치 고문은 미얀마에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모든 일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얀나잉툰 지부장은 1991년 비자도 없이 태국을 거쳐 무작정 한국에 왔다. 1988년 19세의 나이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끈 것이 원인이 돼 군부에 쫓기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2005년 한국 정부로부터 정식 난민 인정을 받았다. 그는 2015년 NLD 집권 이후 미얀마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군부가 정부 요직을 두루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한 활동들을 파악하고 있는 군부가 그를 가만히 놔둘 것 같지 않았다고.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유엔군 파병 검토해야"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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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보며 무엇을 느끼나?

"민주화 운동을 한 선배로서 현재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럽다. 어린 친구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는데 (미얀마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도 한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이들이 하는 시위가 과거 우리 세대가 하는 것보다 훌륭하다는 것이다."

- 시위 방식이 더 뛰어나다는 말인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 항의하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과거 1988년에는 시위대가 시위할 때는 군부와 실제로 싸웠다. 군인들로부터 총을 빼앗을 수 있으면 그렇게 했다. 폭력 시위로 가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폭력 시위로 번지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막고 있다. 전체 분위기를 스스로 조율하며 군부가 총을 쏘면 일단 피했다가 잠시 후 다시 시위장소로 집결한다. 군부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평화시위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디어도 뛰어나다. 단순히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다가 갑자기 한가운데 멈춰 서서 그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엎드려 신발끈을 묶는다. 또 자동차들이 도로를 주행하다가 동시에 멈춘다. 그러곤 내려서 차가 고장났다고 한다. 자신의 혈액형을 몸에 새기고 죽게 되면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도 남긴다. 정말 우리 세대와는 다른 훌륭한 시위 방식이다."

-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은 과거에 독재를 경험한 적이 있는 나라다. 미얀마 시민들의 심정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을 세계에 알리고 관심을 가져달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께서 이와 관련해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2일 우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에겐 모두 힘이 된다."

- 일부에서는 미얀마에 유엔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시위대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군부는 총으로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다. 유엔군이 들어와서 군부에 '이러면 안된다'고 해주면 어떨까. 어떤 사람도 자신의 나라에 다른 나라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 미얀마의 미래가 될 젊은 친구들이 죽어가고 있다.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엔군 파병도 검토해 볼 수 있는 문제다. 다른 방법이 없다."

- 미얀마 상황을 목도하는 주변국이 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나?

"미얀마 연방의회의원 대표위원회(CRPH)를 기억하고 또 지지해 달라. CRPH는 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한 298명의 미얀마 의원들이 2월 초 긴급결의로 결성한 비상기구다. 미얀마 군부에 맞선 임시정부 같은 것이다. CRPH는 군정을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규정했다. CRPH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얀나잉툰 지부장의 죄책감, 그리고 부탁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3월 3~4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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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얀나잉툰 지부장과 <오마이뉴스>에 실린 미얀마 현지 상황 사진기사를 함께 봤다(관련 기사 : 피 흘리는 미얀마의 절규 "국민이 이길 것이다" http://omn.kr/1sc8f ). 군부의 총격에 숨진 시민의 장례식 사진을 보며 그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사진을 넘겨보던 얀나잉툰 지부장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라면서 휴대전화를 기자에게 돌려줬다. 마지막으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1988년 민주화 시위에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해 지금 미얀마의 젊은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있으면서 함께하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 저는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시위에 나선 미얀마의 젊은이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시위를 하되 위험한 행동을 피하고 안전하길 바랍니다. 더 이상 군부의 무력 진압에 희생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미얀마의 미래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미얀마 민주화운동 사진을 보고 있는 얀나잉툰 지부장.
 심각한 표정으로 미얀마 민주화운동 사진을 보고 있는 얀나잉툰 지부장.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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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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