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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어김없이 '백신 접종 후 사망' 속보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어김없이 "백신 접종 후 사망" 속보가 잇따르고 있다.
ⓒ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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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한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그 후 어김없이 '백신 접종 후 사망' 속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독감 백신 접종 당시 언론들은 무분별한 '접종 후 사망' 속보를 내보내 불안을 조성했다. 실제로도 무분별한 속보로 독감 백신 접종률이 급전직하하는 피해를 불러왔다. 수많은 방역 전문가들이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했지만, 언론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언론의 보도 양태는 지난 가을과 다를 것이 없다. 제목은 '백신 접종 후 사망 n명'이라는 아무 맥락도 파악할 수 없는 내용이다. 기사 본문의 결론은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 발언은 '그래도 백신접종 해야 한다'로 끝난다. 그러나 독자의 뇌리에 남는 것은 '이유는 모르겠는데 백신 맞고 죽은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명제뿐이다.

그리고는 백신 전문가들을 겨냥해 포털뉴스 댓글을 달아 댄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너나 너희 가족이나 맞아라!'.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마 내년이 될지도 모르는 필자의 백신 순번이 하루라도 더 빨리 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문제는 백신으로 집단 면역을 형성해야 의미가 있지 혼자 백신을 맞는 것은 방역에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권과 언론의 비과학적이고 무용한 백신 효능 비교 논란과 1호 접종자 논란으로 백신 수용성이 크게 저하된 상태인데, 언론들의 백신 속보가 백신 수용성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할까 크게 우려된다.

'접종 후 사망' 이상한 일 아니다

작년 가을 독감 백신 보도와 관련해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COVID-19 유행시기 중 보고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후 사망 사례에 대한 역학적 평가 및 위험 의사소통'이라는 글에서 '접종 후 사망' 사례는 조건부 확률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지적했다.

정재훈 교수의 논리는 이렇다. 한국에서는 매년 30만 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평균 사망자가 약간 증가하므로 독감예방접종이 있던 10월경에는 하루 1000여 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매일 전체 인구 중 1%가 독감 예방 접종을 받는다면 1000여 명 중 약 1%가 백신 접종 후 하루 이내 사망자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현재 코로나 백신 접종 대상자는 19세부터 65세까지이다. 2019년 사망원인통계는 연령별 사망자를 10세 단위로 집계하고 있기 때문에 편의상 19세부터 69세까지의 사망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19세부터 69세까지의 사망자는 연간 8만 6000명이다.

자료가 공개되어 있는 '10대 사망원인' 중 명백하게 '기저질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추락, 타살, 자살 등을 제외하면 7만 1000명 가량이 나온다. 일평균 196명꼴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26일부터 3월 9일 현재까지 약 2350명은 각종 질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19세부터 69세 인구는 3724만 명이니 이 비율을 백신 접종자 38만 명에 대입하면 확률적으로 24명은 '접종 후 사망'으로 보고된다는 결론이다.

현재까지 '접종 후 사망'으로 신고된 사례는 13건인데, 의료진들이 기저질환의 정도를 고려해 백신을 접종했을 것이라는 점, 1차 접종 대상자 상당수가 의료기관에서 일할 만큼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이다.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장인 김중곤 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이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사망 사례와 백신 접종 간 연관성이 있는지를 검토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사반은 지난 백신 접종 후 사망한 8명에 대한 조사 결과 이상반응과 사망의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장인 김중곤 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이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사망 사례와 백신 접종 간 연관성이 있는지를 검토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사반은 지난 백신 접종 후 사망한 8명에 대한 조사 결과 이상반응과 사망의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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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혼동 말아야

세상에는 그래프상으로 보았을 때 마치 서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많다. 해적의 숫자 감소에 따라 지구의 평균온도는 상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대해적시대를 열어야 하는 걸까?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 사망자의 그래프는 무서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사 사고를 막기 위해 아이스크림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여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백신 접종 후 사망자'들이 사망 3일 이내로 물을 최소 1잔 이상 마셨을 확률은 100%에 한없이 가깝다. 물을 3일 이상 마시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 역시 단시간에 6.3L 이상(70kg 성인 기준) 섭취하게 되면 절반이 사망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사망'이라는 기사만 나오지 '물 마시고 사망'이라는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실 때 사람이 죽는 원인은 혈중 전해질 농도가 떨어져 뇌세포에 물이 차 파괴되는 '저나트륨혈증' 때문이다. 우리는 사망자들이 '저나트륨혈증'으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사망 원인이 물이 아니라고 일단 추정하고 더이상 물을 마시는 데 아무 불안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이다.

백신 접종 시 인과관계가 있는 부작용은 알레르기 반응의 일종인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항체가 말초신경을 공격해 신경이 마비되는 갈랑-바레 증후군이 알려져 있다. 우리는 사망자들에게 해당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사망 원인이 백신이 아니라고 일단 추정하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 알고 나면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는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언론계 격언 중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이뤄지는 일상적인 일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언론사가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보도한 순간 그 사건은 '개가 사람을 무는' 으레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무는'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된다. 기사에 언급된 수많은 방역 전문가들의 조언이 사람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이유이다.

사람들이 백신 부작용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접종 후 사망'사례를 매일 속보로 내보내는 것은, '어느 집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기사를 매일 속보로 쓰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해무익한 '접종 후 사망' 속보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태그:#코로나19, #백신, #인과관계,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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