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매창시인의 '이화우 흩날릴 제' 시비
▲ 매창시인의 "이화우 흩날릴 제" 시비 매창시인의 "이화우 흩날릴 제" 시비
ⓒ 오승준

관련사진보기

 
반골남아의 삶은 고달팠다.

조선왕조시대 관리가 관직을 지키며 뜻을 펴는 길이란 여간해서 쉽지 않았다. 더욱이 전시인데다 당쟁이 심화되고 있었다. 맏형이 대사간을 거쳐 판서로 영전되어선지, 허균은 파직 5개월 여 만에 병조좌랑에 이어 1601년 1월에는 호남지방의 전운판관(轉運判官)이 되어 전라도로 내려갔다. 호남 각지를 순방하면서 세금으로 거둔 양곡을 검사하여 바닷길을 통해 서울로 실어 보내는 역할이었다. 대단히 힘든 일이다. 

허균은 서른세 살이던 1601년 7월 23일 부안에서 기생 계랑을 처음으로 만났다. 관기였다. 스물네 살에 아내와 사별한 후 강릉에서 칩거할 때인 스물일곱 살에 김효원의 딸과 재혼하였다. 두 번째 부인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이나 시문을 남기지 않았다. 

7년 째 계속되는 전쟁은 전국적으로 전답의 황폐화가 극심해서 군량미의 조달이 어려웠다. 그나마 호남지방에서 양곡이 생산되어 버틸 수 있었다. 전쟁 전에 170만 결(結)에 이르던 경지면적이 54만 결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허균의 양곡수급의 역할이 막중하였다.

다음 날부터 세미를 거둬들이는 일이 시작되었다. 각 고을에 선 그가 오기 전에 벌써 서울로 보낼 쌀을 쌓아 놓았다. 허균은 이를 조사해서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한 세리(稅吏)들에게는 곤장을 내려 벌주기도 하고, 고을의 수령들로부터는 가는 곳마다 술을 대접받았다. 파리가 많고 썩은 냄새가 나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는 그토록 그리던 조관의 일을 맘껏 수행했다. (주석 2)

 
매창
▲ 매창 매창

관련사진보기

 
지방관들은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주연을 베풀고 기생을 불러 잠자리를 만들었다. 관행처럼 되었다. 허균이 기생 매창을 만난 것은 이때였다. 

23일엔 부안에 이르렀다. 비가 몹시 내렸으므로, 일을 하지 못하고 객사에 머물었다. 허균과 가깝게 지내었던 이귀(李貴)의 애인 계생(桂生)이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시를 읊었다. 얼굴은 비록 아름답지 못했지만 재주가 흘러넘쳐서, 함께 얘기를 나눌 만하였다. 하루종일 술을 나눠 마시며, 서로 시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계생이 아무리 기생이라지만, 허균은 애인의 친구였다. 피할 것은 서로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밤이 깊어지자 계생은 자기 대신에 조카딸을 허균의 방으로 들여보내어서 수청을 들게 했다. (주석 3)
 
허균 선생의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추모시비
▲ 허균 선생의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추모시비 허균 선생의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추모시비
ⓒ 오승준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기생의 시문학사에서 황진이에 버금가는 매창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내 정령(精靈) 술에 섞여 님의 속에 흘러들어
 구곡간장(九曲肝腸)을 마디마디 찾아가며 
 날 잊고 님 향한 마음을 다스리려 하노라.

 기러기 산 채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력(歷歷)히 가르쳐주고
 한밤중 님 생각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등잔불 그무러갈 제 창(窓) 앞 짚고 드는 님과 
 오경종(五更鍾) 나리올 제 다시 안고 눕는 님을
 아무리 백골이 진토(塵土)된들 잊을 줄이 있으리.

 내 가슴 흐르는 피로 님의 얼굴 그려내어 
 내 자는 방안에 족자 삼아 걸어두고
 살뜰히 님 생각날 제면 족자나 볼까 하노라. (주석 4)

 
이매창 시인의 묘
▲ 이매창 시인의 묘 이매창 시인의 묘
ⓒ 오승준

관련사진보기

 
허균은 뒷날 사귀던 기생 매창의 부음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애도했다.

계량을 애도하며 

 신묘한 시는 비단을 펼친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했지. 
 반도(하늘나라의 복숭아)를 훔친 죄로 인간세계에 유배 왔다가
 선약을 훔쳐 인간세계를 떠났네.
 부용꽃 수높은 장막에 등불은 어둡고
 비취색 치마에는 향기가 사라져 가네.
 내년 복사꽃 필 때
 절도(당나라의 명기, 여기서는 계랑)의 무덤을 누가 찾아 줄까.

 처량해라 반첩여의 부채(쓸모없는 가을부채)
 서글퍼라 탁문군의 거문고(배신당한 여인의 상징)
 다부끼는 꽆잎에 부질없이 한이 쌓이고
 시든 난초에 공연히 마음 상하네.

 봉래도(신선이 산다는 섬)에 구름은 자취 없고
 큰 바다에 달은 이미 잠겼네.
 내년 소소(제나라의 명기, 여기서는 계랑)의 집엔 
 버드나무 시들어 그늘 이루지 못할 테지. (주석 5)


주석
2> 허경진, 『허균평전』, 164쪽.
3> 앞의 책, 165쪽. 
4> 문정희 엮음, 『기생시집』, 35~36쪽, 해냄, 2000.
5> 정길수, 앞의 책, 71~7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