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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사람들 밥상에 못생긴 놈 하나 오르나니

책상물림으로 책을 파는 이들에게는 물고기고 풀이고 나무고 벌레고 조상을 캐고 갈래를 따져 이름 붙이겠지만 물고기 잡고 풀을 나물 삼고 산 사람들이야 어디 그런가. 본 대로 들은 대로 혀 끝에 맛나는 대로 아무 눈치도 보잖고 이름을 붙인다. 동해 바닷가 사람들이 '심퉁이'라고 하는 물고기가 꼭 그렇다. 쉰퉁이, 신퉁이, 씽퉁이라고도 하고 뚝지니 멍텅구리니 하는 이름도 있다. 요 녀석 본디 이름은 '도치'다. 이동순이 쓴 시 <도치>에 '씽퉁이'란 이름이 나온다.
 
묵호 사람들
겨우내 밥상 위엔
항상 못생긴 놈 하나 오르나니
이곳 사람들이
씽퉁이라 부르기도 하는
도치란 녀석

몸이 온통
불룩한 뱃집뿐인데
그 속엔 엄청난 알을 품고 있어
터질 듯 어눌한 몸짓으로
춥고 배고픈 사람들
허기를 다래 주던 주둥이 뭉퉁한 생선

폭삭은
김치 한 보시기
숭덩숭덩 썰어넣고
도치란 놈 알집을 한 솥 가득 담아 (뒤 줄임) 
_이동순, <묵호>, 시학,  2011

'뚝지'나 '멍텅구리'라는 이름은 무뚝뚝하게 생기고 행동이 굼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욘석은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바위 따위에 쩌억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뱃전에 잡았다 놓쳐도 화닥닥 달아날 생각조차도 않는다. 그러니 미련하고 둔하다고 뚝지, 멍텅구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 심퉁이계 이름들은 생김새가 심퉁 맞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심퉁이를 보면 마치 양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 앙 다문 얼굴이다. 거기에 작은 두 눈 사이 툭 불거진 이마,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으로 삐죽 나와 있고 양턱에는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이 한 줄로 나있으니 영락없이 심통이 잔뜩 난 것처럼 보인다. 심통이 뭔가. 뭔가 마음에 차지 않아서 마땅치 않게 여기는 마음이다.

심퉁이를 등쪽에서 보면 커다란 올챙이같이 동그랗고 퉁퉁하다. 배에는 배지느러미가 모양이 바뀐, 커다란 빨판이 나 있어서 바위나 바닥에 척 달라 붙으면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다. 복어처럼 욘석도 놀라면 몸을 동그랗게 부풀린다. 생김새는 이래도 보기와 다르게 살이 질기지 않고 쫄짓한데다 기름기도 거의 없다.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많이 잡히던 시절엔 눈구덩이에 묻어두고 먹기도 했다지만, 어부들한테는 썩 좋은 소리 듣지 못했다. 끌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곰치나 물망치처럼 물텀벙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심퉁이(뚝지, 멍텅구리, 도치)
 심퉁이(뚝지, 멍텅구리, 도치)
ⓒ 국립수산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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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퉁이는 '도치'야 '뚝지'야

우리말샘에서는 "'도치'의 방언(강원)"으로 풀어놨다. '도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도치를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쓴 듯하다.
 
도칫과의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6.5cm 정도이고 몸에 어두운 빛깔의 무늬가 조금 있거나 전혀 없다. 몸은 타원형이며, 두 눈 사이에 혹 모양의 돌기가 나 있다. 한국, 사할린, 베링해 등지에 분포한다.(Eumicrotremus orbis)

몸 길이가 고작 6.5센티미터라니, 어이가 없다. 심퉁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설명이 잘못 되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심퉁이는 우리 나라 동해와 일본 북부, 오오츠크해, 베링해에서 사는 물고기로 크게는 4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어릴 때는 뭍 가까운 얕은 바다에서 살다가 자라면서 점점 깊은 바다로 간다. 어판장이나 어시장에서는 20~30센티미터쯤 되는 심퉁이가 흔한데 그쯤 되려면 3년쯤 걸린다. 심퉁이를 달리 '뚝지'라고도 하는데, '뚝지'는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도칫과의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25cm 정도이며, 갈색이고 잔점이 많다. 몸이 통통하고 가슴지느러미가 크며 배에 빨판이 있어 바위 따위에 붙는다. 한국, 일본, 베링해 등지에 분포한다. ≒멍텅구리. (Aptocyclus ventricosus)

도치와 뚝지는 도칫과 바닷물고기인 것 말고는 전혀 다른 물고기다. 학명도 전혀 다르지 않나. 풀이로만 보면 심퉁이는 '도치'가 아니라 '뚝지'다. 그러니 '우리말샘' 풀이는 다시 써야 한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검색 결과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검색 결과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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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운명은 책상물림이 정하는 게 아니다

심퉁이는 강원도쪽 바다에서 주로 사철 잡히는 물고기지만 아무래도 제철은 겨울이다. 11월에서 2월 사이에 얕은 바다로 나와서 바위나 방파제 같은 데 붙어서 알을 낳는다. 알 낳기 전 심퉁이는 살이 오르고 알도 꽉차서 인기가 좋다.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건져서 껍질에서 나온 끈적한 액을 싹 없앤 다음 먹음직한 크기로 썰어 다시 뜨거운 물에 한 번 더 데쳐서 먹는다. 다른 물고기와는 다르게 살이 부드러우면서 쫄깃한데다 뼈가 연해서 뼈째 먹을 수 있다.

알찜도 해먹는데, 심퉁이 배에서 나온 알에 소금을 솔솔 뿌려 하루쯤 재웠다가 이튿날 탱글탱글해지면 적당한 불에 쪄낸다. 이동순 시에서 보듯 탕으로도 흔하게 먹는다. 냄비에 묵은지를 썰어넣고 손질한 심퉁이와 알, 무, 대파, 갖은 양념을 넣고 물을 부어 국물이 자박해지도록 푹 끓여서 먹는다. 크기와 다르게 심퉁이 알은 부드러워서 훌훌 잘 넘어가고 살코기도 쫄깃쫄깃해서 누구라도 좋아한다.

부둣가에 가면 '도치'라는 말보다 '심퉁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말을 금밖으로 내모는 일은 책상물림이 정하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지금 세대가 가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 심퉁이란 이름은 어찌 되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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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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