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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스쿨>의 양크라테스 (김명민 분).
 JTBC에서 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스쿨>의 양크라테스 (김명민 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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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이 사건의 쟁점은?
학생 : 예습을 한다고 했는데...
교수 : 예습을 했으면 답할 수 있네
학생 : 생각이 짧았습니다...
교수 : 대답을 포기하겠다는 건 수업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네!


4월부터 방영 예정인 드라마 <로스쿨>의 티저영상 일부다. 검사 출신의 명문 로스쿨 형법 교수 양종훈의 별명은 '공포의 양크라테스'. "교수로서 훌륭한 법조인은 못 만들어내더라도 양아치 법조인은 단 한 마리도 안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신념을 실현하는 교육방식이 '소크라테스식'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 장면, 낯설지 않다.

교수 : 호킨스 vs 맥기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게. 의사가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은? 그 수술의 결과는? 그 손해를 법정에서 어떻게 산정할 수 있지? 의사가 소년에게 배상할 것은? 
학생 : 의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배상해야 하고.. 음...


영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원제 'The Paper Chase', 1973년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버드 로스쿨의 악명높은 킹스필드 교수는 첫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출석부를 펴 주인공 하트를 지명하고는 질문을 퍼붓고, 하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한다. 킹스필드는 왜 저렇게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까?
 
"우리는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사용한다. 나는 여러분을 호명해서 질문할 것이며 여러분은 답을 할 것이다.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최종적인 답은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내 수업에선 항상 질문에 질문이 따라올 뿐이다. 왜 나는 여러분에게 강의하지 않는가? 그것은 내 질문을 통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가르치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기서 뇌수술을 받는 것과 같다. 쓸데없는 것으로 꽉 찬 머리로 여기 와서 법률가처럼 생각하며 떠날 것이다."

영화 속 대사가 답이다. 킹스필드는 미국 로스쿨의 목표, 법률가답게 사고하는 '뇌수술'을 위해 콜드 콜( cold call : 학생을 얼어붙게 하는 독한 질문)을 퍼부은 것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살아남으려면 요약해서 암기하는 공부만으론 안된다. 사실관계와 쟁점, 원피고 주장의 논거와 법원의 결론에 관해 끝없이 '왜?'가 따라붙고 사실관계를 바꿔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 그 경우 변호사의 전략 등을 묻기까지 하니, 내 머리로 분석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법학공부여야 한다. 

드라마 예고 영상을 본 반응... 저런 로스쿨이 있다고? 
 
2012년 6월 마이클 샌델의 연세대학교 노천광장에서의 토론수업에 참여한 일이 있다. 킹스필드와 달리 따뜻하게 수업을 이끌었지만, 그 역시 정답을 정해놓지 않은 채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며 미국 하버드 로스쿨의 '스스로 사고하는 수업'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관련기사 - http://bit.ly/JLrsqK)
 2012년 6월 마이클 샌델의 연세대학교 노천광장에서의 토론수업에 참여한 일이 있다. 킹스필드와 달리 따뜻하게 수업을 이끌었지만, 그 역시 정답을 정해놓지 않은 채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며 미국 하버드 로스쿨의 "스스로 사고하는 수업"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관련기사 - http://bit.ly/JLrsqK)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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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필드의 수업이 미국 로스쿨의 교육과 백퍼센트 일치하지 않는단 지적도 있다. 모든 수업이 문답식·토론식은 아니고,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처럼 웜콜(warm call)로 수업을 이끄는 교수도 많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속 킹스필드의 수업이 팩트왜곡은 아니다. 그럼 '양크라테스'의 수업은 어떨까?

"우리나라 로스쿨에서 저런 수업 하면 폐강된다."
"로스쿨 영화라면 수업시간에 변호사시험 기출문제 풀어야 하는 거 아님?"
"저런 로스쿨이 있다고? 다들 학원 인강 듣고 앉았거늘..."


위 티저영상에 대한 로스쿨 커뮤니티의 댓글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냥 넘겨볼 수 없는 대목이다. 더는 수험법학에 매몰되지 말고 진정한 법조인양성교육을 하자고 만든 로스쿨이었거늘, 지금의 로스쿨은 고시학원이라고 아니 고시학원 역할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로스쿨생이 로스쿨에 많은 등록금을 내고도 따로 변호사시험 학원에 돈을 퍼붓고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현실 로스쿨 교육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기 때문이다. 

로스쿨 설립 초기인 2011년, 김경목 당시 헌법재판소 연구관은 한 칼럼에 "킹스필드 교수처럼 실력으로 무장한 로스쿨 교수들이 한국의 로스쿨에 맞는 다양한 교수기법을 마련하여 학생들을 단단히 교육시킬 것을 기대해 본다. 그렇게 되면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대신 우리네 로스쿨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될 날도 곧 오지 않을까"라고 썼다. 그로부터 꼭 10년째에 정말 우리 로스쿨에 관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다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가짜 로스쿨에 대한 드라마가 말이다.  
 
2020년 4월 제9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틀 뒤부터 얼마간 나는 함께 합격한 이들과 1인시위를 했다. '신규 변호사 수를 늘리면 우리는 배고픈 사자보다 더 무서워질 것'이라고 협박하며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인위적으로 통제해온 '그들'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관련기사 - http://omn.kr/1nh4a)
 2020년 4월 제9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틀 뒤부터 얼마간 나는 함께 합격한 이들과 1인시위를 했다. "신규 변호사 수를 늘리면 우리는 배고픈 사자보다 더 무서워질 것"이라고 협박하며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인위적으로 통제해온 "그들"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관련기사 - http://omn.kr/1nh4a)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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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로스쿨에선 미국 로스쿨에서처럼 '뇌수술' 하는, 진정 로스쿨다운 교육이 펼쳐지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 로스쿨에선 전인적·실무적·전문적인 법조인양성이 이뤄지지 못하는 걸까? '시험에 의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라는 위대한 구호와 함께 사법개혁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이거늘, 대체 왜 로스쿨생들은 '로스쿨은 기출문제나 푸는 곳'이라고 하는 걸까? 문제의 힌트는 다음과 같다.  

공포의 양크라테스는 "교수로서 훌륭한 법조인은 못 만들어내더라도, 양아치 법조인을 안 만드는 게 신념"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 로스쿨의 교육자들은 "교수로서 훌륭한 법조인은 못 만들어내더라도, 우리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최대로 높이는(정확히는 '높아 보이는') 게 신념"인 듯하다. 우리 법조계의 법조인들은 "선배 법조인으로서 훌륭한 후배 법조인은 못 만나더라도, 기득권 법조인들의 밥그릇만은 최대로 수호하는 게 신념"인 듯하다. 

그리고 8일 한 언론은, 이날 대한변협이 '변호사시험 합격자 대상 실무연수 인원 감축' 안건 상정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보도하면서, 해당 안건이 최근 변협이 TF까지 출범시키며 강력히 피력해온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축소' 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감축하지 않으면 '배고픈 사자보다 무서워지겠다'고 협박해온 변협은 이제 실무연수까지 협박의 무기로 삼는 듯하다. 교육을 통해 양질의 법조인을 많이 양성해 대국민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추겠다며 설립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지금 변협 집행부에 대거 포진해있음에도 말이다. 

"독일 변호사단체는 신규 변호사 배출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나요? 우리나라 의협처럼 입학정원 통제에 총력을 기울이나요 아니면 우리나라 변협처럼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통제에 총력을 기울이나요?"

얼마 전 독일 변호사에게 물었을 때 그는 질문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의 설명 후에야 당황하며 "네에? 신규 변호사 배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요? 그건 변협의 일이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실무연수 관련 소식에, 교육과 사회의 철학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라 하여도 '변협의 일이 아니'라던 말이 아프게 떠오른다.

다들 테스형을 찾지만 나는 양크라테스에게 묻고 싶다.

"양테스형, 그들은 '양아치 법조인'이야 아니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은선 시민기자는,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대국민 법률서비스 문턱 낮추기를 지향하는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활동가입니다. 법률저널에도 중복송고 합니다.


태그:#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시험 합격률 통제, #신규 변호사 수 통제, #로스쿨, #양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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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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