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 드라마 <빈센조>(연출 김희원, 극본 박재범)는 어릴 적 이탈리아로 입양된 한국계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액션 느와르 활극을 표방했다. 한류스타 송중기가 주인공 빈센조 까사노 역할을 맡았고 <열혈사제>, <김과장> 등을 성공시킨 박재범 작가가 집필을 맡아 상반기 드라마 최고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드라마 초반부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뭔가 몰입도가 없이 지나치게 산만한 분위기였다. 세계 최대 마피아 패밀리의 콘실리에리(자문 변호사)였던 주인공 빈센조는 보스의 죽음 이후 조직에 배신 당하고 모국인 한국으로 홀로 돌아온다. 금가프라자 지하 금고에 숨겨져있는, 지금은 주인이 사라진 금괴를 손에 넣어 떠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금고의 원래 주인인 중국 부호는 1년간 갑작스럽게 타계했고 이제 금괴의 비밀을 알고있는 사람은 그에게 처음 은닉 방법을 자문해줬던 빈센조와 조사장뿐이다. 빈센조는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을 무너뜨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금가프라자를 노리는 '바벨 그룹'이라는 또다른 악의 세력과 마주치게 되면서 어쩌다가 오히려 약자를 지키는 반영웅으로 각성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방송 2주차까지 진행된 내용이다.

<빈센조>는 하나의 플롯안에 액션, 느와르, 반전 미스터리, 코미디 등 여러 장르를 한꺼번에 담아내려는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지나친 과욕은 오히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공감대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빈센조>는 포스터와 홍보과정에서부터 송중기를 전면에 내세운 진지하고 박진감있는 액션활극으로서의 분위기를 부각시켰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3회까지의 내용은 사실상 코미디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첫회의 초반 10분에서 빈센조가 사망한 보스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상대 조직의 농장을 불태우거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 보스의 아들에게는 살벌한 경고를 남기고 한국으로 떠나는 장면까지는 전형적인 느와르물의 진지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무대가 옮겨오면서 극 분위기는 갑자기 180도 바뀐다.

빈센조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택시 강도들을 만나 수면제에 든 음료수를 마시고 금품을 도난 당하는가 하면, 금가프라자에서도 여기저기서 찬밥 대우를 받으며 연이어 카리스마가 무너지는 곤욕을 치른다. 금가프라자 주민들이나 홍차영(전여빈), 장준우(옥택연), 최명희(김여진)같은 등장인물들은 수시로 만담에 가까운 속사포같은 대사를 쏟아내거나, 뜬금없이 댄스를 추기도 하고, 예측불허의 4차원적인 언행을 남발하며 하나같이 튀는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문제는 이런 장면들이 전혀 웃기지도 않았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가하는 설득력이나 공감대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의 전작인 <열혈사제>나 <김과장>도 곳곳에 유머 코드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극의 메인 줄거리를 방해하지않는 수준에서 사회풍자적인 현실이 반영된 블랙 코미디라는 개연성이 뒷받침되어있었다. 적어도 개그 요소가 주인공의 캐릭터나 이야기의 몰입도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에 비하여 <빈센조>의 초반 코미디는 말 그대로 '개그를 위한 개그' 욕심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수 있는지 보여준 반면교사였다. 극의 흐름속에서 자연스럽게 유머가 묻어나오는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전후 맥락없이 과장된 '오버 연기'로만 일관하다보니 이야기 자체가 집중력을 잃고 산만해진다.

금가프라자의 주민들이나 홍차영의 로펌 인물들, 국정원 직원들, 검사들, 바벨그룹 일당에 이르기까지 코믹하게 묘사된 정도를 넘어서, 아예 정상인처럼 보이는 인물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오버스럽지 않았던 홍유찬(유재명)도 정의로운 변호사라는 설정이 무색하게 말만 앞세우는 무능력하고 고지식한 면모가 더 두드러진다.

히어로의 활극이 통쾌함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빌런들에게 고통받는 약자들의 절박한 상황이 공감을 줘야하는데, <빈센조>의 초반부는 지나칠 정도로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극의 몰입감을 깨뜨리고 말았다. 이는 송중기나 전여빈같은 배우들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극본과 연출의 무리수가 낳은 패착이었다.

정작 중심이 되어야할 빈센조의 캐릭터는 오히려 만화적이고 코믹한 분위기의 인물들속에 둘러싸여. 혼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쓸데없이 '겉멋'만 부리는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렸다.

회사의 부조리에 맞서는 경리과장(김과장), 거대한 음모에 종교인(열혈사제) 등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매력은 기존의 관행이나 질서에서 자유롭기에 더 거침없어도 되는 '외부자(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인물이라는데 있다.

그런데 <빈센조>에서는 주인공이 굳이 왜 이탈리아에서 마피아 변호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어야만 했는지 납득할만한 개연성을 주지못하면서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이러다보니 빈센조라는 히어로가 주변인물들과의 위화감만 부각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배경만 튀게 설정한다고 해서 인물의 개성과 매력까지 보장되지는 않는다. 어떻게보면 작가의 전작과 기본 설정과 세계관에서 겉포장만 살짝 바꾼 자기복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빈센조>는 4회에 이르서야 홍유찬 변호사의 사망을 계기로 겨우 본론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개그와 과장된 연기가 줄어들면서 다크 히어로의 활약상과 '악당과 반악당의 대결'이 주는 긴장감도 조금씩 살아난다.

큰 부상을 당했던 빈센조는 홍유찬과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거대악을 향하여 복수를 시작한다. 그동안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악의 대변자 노릇을 수행하던 변호사 홍차영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로펌 우상에 사직서를 내고 빈센조와 의기투합하는 것으로 각성한다. 빈센조가 바벨제약 저장 창고를 화끈하게 폭발시키는 클라이맥스는, 1회의 농장 공습 장면과 더불어 기존의 법과 질서가 아닌 '악의 방식으로 악을 단죄하는' 다크 히어로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또한 드라마 막바지에는 홍차영을 짝사랑하는 순진한 조력자처럼 보였던 장준우가 실은 바벨그룹의 숨은 흑막이었다는 깜짝 반전도 밝혀진다. "제가 반드시 잡아서 형님 앞에 무릎 꿇리겠다"고 악을 쓰는 장한서(곽동연)에 눈길도 주지않고 "닥쳐"라는 짧은 한 마디만으로 압도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옥택연의 존재감은, 앞으로 전개될 빈센조와의 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처음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금괴를 찾기 위해 시작된 빈센조의 모험은 이제 장준우, 최명희같은 빌런들와의 대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더 이상 여러 장르적 재미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무리수를 포기하고 주제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는데 주력해야할 시점이다. <빈센조>는 과연 개그와 자기복제의 유혹을 극복하고 성공한 작품이 될수 있을까.
빈센조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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