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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순덕 씨가 로컬푸드 매대에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설순덕 씨가 로컬푸드 매대에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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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왕복 약 20킬로미터의 거리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간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순창읍터미널에서 하차해 하나로마트까지 다시 도보로 이동한다. 오가는 데 1시간이 훌쩍 넘는다. 농산물 짐 꾸러미도 손수레 가득 싣고 이고 지는 게 평균 3개 이상이다. 15개월 동안 오간 거리가 대략 9000킬로미터, 2만7000분 이상을 길에서 보낸 셈이다.

한데서(노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매일 순창읍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에 출하하고 있는 설순덕(68)씨 이야기다. 설씨는 그동안 로컬푸드매장에서 농산물 판매를 지원해 준 것이 고마워, 어려운 학생에게 전달해 달라며 장학금 100만 원을 최근 농협에 맡겼다. 이것이 종자돈이 돼 순창농협노동조합 조합원과 임직원도 뜻을 모아 장학금 규모가 600만 원으로 늘었다.

선재식 순창농협조합장은 전화통화에서 "설순덕씨는 정말이지 노지에서 손끝으로 땅을 일구며 온몸으로 농사를 지었다"며 "고생스럽고 억척스럽게 모으신, 귀한 돈을 장학금으로 주셨기에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농협 조합과 간부들이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로컬푸드 매장에 감사한 마음, 장학금에 담아 
 
설순덕 씨가 매일 같이 손수레 가득 싣고 이고 지는 농산물 짐꾸러미는 평균 3개 이상이다.
 설순덕 씨가 매일 같이 손수레 가득 싣고 이고 지는 농산물 짐꾸러미는 평균 3개 이상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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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8시 10분, 순창읍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에서 농산물을 진열하는 설씨를 만났다. 매일같이 버스 타고 나오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여쭸다.

"혹시 자녀들 하고 뭔 일이 있어서 어딜 가거나, 병원에 일찍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못 오지.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나 눈이 와도 나오제. (로컬푸드 출하농가회 김정숙) 회장님을 위해서라도 더 안 빠지고 열심히 댕겨요. 회장님이 원체 성실하시니께. 또 인자, 한 번 로컬푸드에 물건을 담았잖아요? 그믄 손님들이 둘러보고 가실 때 물건이 없으면은 또 찾으시고 그런 께. 또 손님들을 위해서 오기도 하고."

설씨를 비롯해 로컬푸드 출하회원들의 농산물들은 모두 친환경 인증과 안전성 검사를 받았다. 호박고지 1봉(상품) 5000원(설순덕), 순송화버섯 1팩(중품) 2200원(김정숙), 달래 1팩(상품) 2000원(나운식), 샐러리 1봉(상품) 1900원(한경희) 등 회원이 직접 상·중·하품 별로 품질을 구분해 가격을 매겼다.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실명인증이다. 수입은 어느 정도나 될까?

"제가 쓰는 생활비 정도 벌어요. 농사는 노지에서 제가 다 지어요. 농산물이 계절 따라서 대략 스무 가지가 넘어요. 겨울에는 주로 대파하고 냉이하고 달래하고, 이 달래도 노지 거예요. 근데 손님들이 뭐가 있냐면요? 노지 거라 조금 지저분하잖아요. 노지에서 서리 맞고 햇볕 쬐고 그게 더 좋은데, 그걸 안 알아줘요. 이 시금치는 하도 흙이 심난해서 제가 씻었어요."
  
농산물 출하회원들이 직접 상ㆍ중ㆍ하품 별로 품질을 구분해 가격을 매기고 실명인증을 한다.
 농산물 출하회원들이 직접 상ㆍ중ㆍ하품 별로 품질을 구분해 가격을 매기고 실명인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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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는 모과, 가지, 죽순, 딸기, 도라지, 시금치 등 다양한 농산물들이 있었다. 이름표를 살펴보니 설씨의 이름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일일이 다듬고 종류 별로 포장해서 가져와요. 여그 와선 가격표 출력해서 붙이고 진열하죠. 사실은 제가요,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어요. 컴퓨터에 컴 자도 몰라요. 회장님과 팀장님한테 배웠어요. 로컬푸드 농산물들은 정성 들여서 갖고 오니까 많은 회원분들 상품이 그날 그날 다 팔리면 좋죠. 상해서 버리면 아까운게."

어떤 질문에도 설씨의 표정은 밝았다. 매일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힘든 기색이 별로 없다. 더구나 어렵게 발품, 손품을 팔아가며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는 더 쉽지 않았을 터. 설씨는 장학금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가 어려서부터 못 배웠어요. 저희 때 없는 사람은 정말 없었(가난했)거든요. 못 먹고, 못 배우고, 배도 많이 굶주리고 했어요. 제가 뭘 할까, 고민 끝에 회장님께 말씀을 드렸죠. 작은 금액이지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어쩌겠냐고. 다행히 회장님도 농협도 흔쾌히 동의해 주시더라고요."

"아부지 생전에 봉사하자" 팔덕면 마을 돌며 냉면 봉사

설씨는 3녀 1남, 4남매를 두었다. 큰 딸이 공무원이고, 작은딸(살림)·셋째딸(식자재도매)·막내(은행원)가 수원·부천·전주 등에서 살고 있다. 설씨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 돕고 부대끼는 마을살이를 자연스레 들려줬다.

"아들이 팔덕면 전체 25개 마을인가, 작년 재작년에 주민들에게 냉면 봉사를 했어요. 왜냐면, 그것도 제가 원했어요. 아부지(남편)가 그동안에 마음이 너무 좋다 본께, 보증 잘못 서고 이십 년 넘게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청산하고 나니까 몸이 아파요. 그래서 아들한테 아부지 살아계실 때 봉사를 좀 하자 그랬어요."

팔덕면 25개 마을 인구는 1400명 남짓이다. 어림잡아도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여름날 냉면으로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설씨는 "팔덕면 농협 직원들하고, 농가주부모임 회원들이 많이 협조해 주셨다"며 "아들이 냉면을 택배로 부친다고 하기에, 농협에 농협 차량으로 싣고 오면 어떻겠냐고 문의했더니 도와주시고, 동네마다 다니며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냉면을 대접해 주셨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왼쪽부터 설순덕, 한경희 씨, 김정숙 농가출하회 회장
 왼쪽부터 설순덕, 한경희 씨, 김정숙 농가출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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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가 출하하는 농산물은 노지에서 재배, 생산한다. 언뜻 보기에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설씨는 이 대목에서 다소 섭섭한 속내를 털어놨다.

"시골에서 노지 농사져 갖고 뭐가 남는 게 있겠어요. 그나마도 로컬푸드에서 이렇게 판매할 수 있게 해준께 감사하기는 한데. (전남)담양농협, (전북)남원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다른 로컬푸드에 가보니까 전부 마트 입구부터 로컬(푸드) 위주로 해 놓았더라고요. 냉장시설도 다 돼 있고, 포장실도 있고, 또 물건이 남았을 때 보관하는 냉장고도 따로 있었어요. 우리 로컬푸드도 그렇게 좀 바꿔주셨으면 좋겠어요."

"로컬푸드, 순창농협에서 애정과 관심 가져 주세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개장 시간인 오전 8시 30분이 넘었다. 하나로마트 직원들이 분주해진 가운데, 이른 손님도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설씨는 상품 진열을 마치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다른 로컬푸드는 시설이 정말 잘 갖춰졌어요. 냉장시설, 진공포장 그런 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거기는 제가 갈 데가 아니었어요. 농협 조합장님, 과장님, 계장님 그런 높으신 분들이 직접 가서 보고 느꼈어야 해요. 여기 진열대 문제도 회장님이 엄청 건의했어요. 그런데도 안 바뀌잖아요. 농사 안 지어본 사람은 이런 맘 절대 몰라요. 농협에서 조금만 더 애정과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내에 있는 로컬푸드 매대.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내에 있는 로컬푸드 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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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3월 4일자에도 보도되었습니다.


태그:#순창농협, #로컬푸드, #설순덕,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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