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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 한 마을의 눈 덮인 언덕에서 2월 말 스키방학 중인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는 모습
 핀란드 헬싱키 한 마을의 눈 덮인 언덕에서 2월 말 스키방학 중인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는 모습
ⓒ Jun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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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꽃샘추위와 더불어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춘삼월이 머지 않았다. 그러나 핀란드는 아직도 겨울이다.

핀란드에서는 1월 말에서 2월 말 사이 몇주간 남쪽 수도권이 영하 20도, 북쪽 지방은 영하 30도 안팎의 최저기온을 기록한다. 지붕에 닿일 만큼 수북이 쌓인 눈은 3월말에서 4월 초 부활절 즈음이 되어서야 완전히 사라지고 5월이 지나야 나무마다 초록 새싹을 틔우다가 꽃가루가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일년의 반이 겨울인 겨울왕국, 핀란드에서 한국인이 보통 체감하는 봄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이다. 핀란드의 봄은 꽃이 피면서가 아니라 눈이 녹으면서 오기 시작한다. 

시마다 시작 시기는 다르나 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일주일 동안 스키방학이 있어 지금 핀란드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한겨울 막바지를 즐기고 있다. 스키장, 썰매장을 가기도 하고, 멀리 스키장을 시간내어 갈 필요도 없이 동네 어귀에 쌓인 눈언덕에 모여들어 눈썰매를 타거나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집주변에서 즐긴다. 몇 주간 영하 20도에 육박해 꽁꽁 언 발트해 바다나 호수 위에서 얼음을 깨고 수영을 하거나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핀란드인들만의 겨울 적응법
 
꽁꽁 언 호숫가의 얼음을 깨고 아이스 수영을 즐기는 핀란드인
 꽁꽁 언 호숫가의 얼음을 깨고 아이스 수영을 즐기는 핀란드인
ⓒ 핀란드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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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는 '안 좋은 날씨란 없다. 단지 안 좋은 옷이 있을 뿐'이라는 속담이 있다. 날씨에 맞게 두꺼운 옷을 입고 대응하면 추위는 그다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환경에 잘 적응하는 태도를 갖추라는 의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겉옷은 하나같이 스키복처럼 위아래가 붙어 있는 패딩 방한 우주복 형태로 마치 길거리 스키장을 방불케 한다. 쌓인 눈 위에서 언제라도 나뒹굴 준비가 되어 있다.

눈, 비가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오더라도 계획된 야외 행사는 연기되는 일 없이, 일정대로 치러진다. 폭설로 학교가 갑자기 휴교되는 일도 없다. 매일 오전, 오후 실외활동 일정이 잡혀 있는 유치원은 영하 15도가 이르러야 비로소 제한된다.

가정보건원 네우볼라의 간호사들은 아기들이 환기가 안되는 답답하고 건조한 실내환경에서 낮잠을 자는 것보다 실외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낮잠을 자는 것이 더 건강에 유익하다고 하면서 어린 갓난 아기를 패딩 방한복을 잘 입혀서 유모차에 뉘여 집밖에서 꼬박꼬박 재우라고 권고한다.

외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와서 신생아 정기검진 차 보건원에 왔다가 이런 조언을 듣고는 다들 기겁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곤 한다. 이런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들은 핀란드의 혹독한 겨울철 날씨가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악천후라는 개념을 잘 모르고 자라게끔 만든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기나긴 겨울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하여 학교에서 스키, 눈썰매, 스케이트와 같은 동계 스포츠를 정규교과 시간안에 포함시켜 교육시킨다. 기초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매년 인근 스케이트장이나 스키장에 가서 한달정도 지도를 받으며 기술을 익힌다.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수영, 스케이트, 스키와 같은 운동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인기 있는 아이스하키나 아이스 스케이트도 평소 핀란드인들이 즐겨하는 스포츠이고, 시에서는 도시외곽에 눈 덮인 숲에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랙을 만들어 놓아 일반 시민들이 집 주변에서 쉽게 스키를 겨우내 즐길 수 있도록 해 놓는다. 전국 통계에 따르면 등록된 스포츠 협회만도 12만 3천개가 넘으며, 인구 10명 중 1명이 이중의 한 스포츠 협회에 가입돼 즐기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와 함께 이글루를 만들고 있는 아버지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와 함께 이글루를 만들고 있는 아버지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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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린 어느 날 동네 길가에서 아이와 함께 눈으로 이글루 집을 만들고 있는 한 아이 아버지를 만나 인터뷰했다. 만 세 살짜리 일마리라는 아이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그는 종종 이렇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다가 아이와 함께 이글루 집을 만든다고 했다. 이것이 세번째 완성작으로 10분정도면 이런 이글루 집이 탄생한다고. 얼어버린 바다 위에서 주말에는 스케이트를 타러갈 예정인데 한껏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아반또 우인띠'(겨울철 바다나 호수의 얼음을 깨고 수영하는 것)도 한 겨울에 꼭 해야 할 것 중 하나인데, 뜨거운 사우나와 차가운 '아반또 우인띠'를 번갈아 하면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건강에 매우 좋다고 추천하면서 핀란드의 추운 겨울에도 즐길거리가 많다고 답했다.
 
눈썰매에 아이를 태우고 거리를 누비는 핀란드인 부모들과 눈썰매를 타는 배경의 아이들
 눈썰매에 아이를 태우고 거리를 누비는 핀란드인 부모들과 눈썰매를 타는 배경의 아이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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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1세인 브리따 얌사씨는 핀란드 중북부지역 출신으로 눈은 겨울에 필수라고 하면서 폭설로 인한 휴교령은 여지껏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려서는 매일 스키를 타고 학교에 등교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야 학교에서 따로 수업시간 중에 가르치지만, 예전에는 겨울에 스키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것이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핀란드에서 한겨울에 어린 유아를 썰매에 태워 끌고 가는 부모를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퇴근 후 노르딕 스키장비를 착용한 채 동네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가끔 목격하게 된다.

브리따씨는 또한 해마다 핀란드인들이 겨울이 오면 전통적으로 하는 일로 카페트 청소를 꼽았다. 내린 지 얼마 안돼 깨끗한 눈 위에 집안의 각종 카페트들을 뒤집어 놓고 두드려 털고 빗질하기를 1시간 가까이 하고나면 바닥의 눈이 까매져 묵은 때가 빠진 것을 실감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루 정도 밖에 걸어두어 영하의 기온에 얼려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것이 필수라고 소개했다.  

항상 준비된 나라, 겨울왕국 핀란드
 
밤에도 분주히 제설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헬싱키의 한 도심가 거리
 밤에도 분주히 제설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헬싱키의 한 도심가 거리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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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의 반이 겨울인데다가 눈이 많이 오는 기후 속에서 핀란드인들은 일상생활에 별 지장을 받지 않고 큰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신속한 제설작업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제설작업 차량을 운전하며 제설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라우리 이솔라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설명하기를, 큰 대로변은 시 정부가 관리를 하고 작은 골목길은 주거관리협의회에서 나눠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각 건물의 관리실은 제설작업이 이루어진 이후 미끄럼 방지책으로 모래를 건물주변에 뿌린다고 한다. 

핀란드에는 밤낮으로 제설작업을 위한 관리업체나 인부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서 지난 1월말 처럼 30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한번에 내려 10년만의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사나흘 밤낮으로 눈이 연속으로 내린 시기에도 제설작업이 지체없이 이루어졌으며, 국지적 접촉 사고로 부분적 교통 정체 및 지연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시 도로 전체가 마비되는 일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핀란드는 겨울을 위한 준비나 대비가 늘 되어 있는 나라라고 했다. 하루에 1미터 정도의 눈은 와도 제설작업으로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하면서 높이 쌓인 눈은 도시 인근 바다로도 옮겨 제거한다고 한다.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한동안 남쪽의 헬싱키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지난 몇 년 간 겨울에 눈이 몇 차례밖에 내리지 않았는데, 올해는 눈이 자주 내리고 곳곳에 쌓여 핀란드는 예년의 겨울왕국의 면모를 되찾으며 이번 주말까지인 스키방학동안 다양한 겨울 막바지 즐기기로 분주하다. 

태그:#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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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중학생, 초등학생 두아이를 낳아 키우며 IITA 국제 통번역협회 인증 통역사, 방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용한 변방에 위치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 교육, 문화, 사회 분야의 야생 블루베리같은 알찬 소식들을 찾아 고국의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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