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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데리고 있으니 잠깐 차 한잔 하고 와." 

남편에게 이 말이 너무 듣고 싶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 틈에서 단 10분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을 위로하는 진심 어린 말이 그리웠다. 하지만 남편은 이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부탁하려고 했지만 매일 밤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 말을 꺼내기 미안해서 꾹꾹 참았다.

어느 날 폭발하고 말았다. '셋째 낳은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는 나에게 그런 말도 못 해주냐'라고 따졌다. '정말 힘들었구나'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남편은 짜증 섞인 말투로 가방을 던지며 나갔다고 오라고 말했다. 자신도 너무 힘들다며 울먹거렸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겪은 다음에야 깨달았다. 나는 육아 우울감에 빠져 있고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내 상태를 인정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지나치게 남편을 의지하고 있었고 자신의 스트레스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남편 말고 좋아하고 의지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바로 책이었다. 

책이 없었다면
 
같은 책을 읽어도 그만큼 다채로운 글과 삶에 감동을 받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그만큼 다채로운 글과 삶에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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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세 명을 키우는 동안  틈틈이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책모임을 나갈 수 없을 때는 소셜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책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혼자 책을 읽으면 완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늘 아쉬웠고 얼른 아이를 키우고 난 뒤 모임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1년 동안 매주 책 한 권 읽고 글을 쓰는 수업'을 발견하였다. <로고스 글쓰기 과정>이었다. 집에서 버스 타고 지하철 환승하면 왕복 3시간이 걸렸다. 남편이 일찍 들어와야 했고 밤 늦게까지 남편 혼자 아이 세 명을 봐야 했다. 가능할까. 

남편은 등록하라고 했다. 매일 늦게 일해야 하지만 아내가 치료(?) 받는 날이라며 양해를 구해서 일찍 퇴근하겠다고 했다. 상황은 열리는데 막상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온종일 육아만 하던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책 읽고 글을 나누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굳이 애써 그럴 필요가 있나, 쉬기 바쁜데, 그 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되나?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돈까지 내고 왜 그래야 하지?'
'아직 셋째가 어리잖아, 나중에 해도 돼. 계속 매 학기마다 모집하던데 그때 하면 되지.'


자신감 없이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며 뒷걸음치려고 했다. 머뭇거리는 내가 싫었다. 결심했을 때 시작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내가 더 싫어질 것 같아 바로 등록했다. 로고스서원은 기독교 기반이며, 1년 동안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 또는 칼럼을 쓰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셋째가 열심히 기어 다닐 때 시작하여 사뿐사뿐 뛰어다닐 때까지 참여하였다. 매주 정해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거나 자유 주제로 칼럼을 써도 되었다. 지정 도서를 읽고 내 생각과 느낌을 편하게 적었다. 글을 읽고 발표하면 멤버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격려해 주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은 연령과 직업 모두 다양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그만큼 다채로운 글과 삶에 감동을 받았다. 

1년 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제 이것을 발판 삼아 무엇을 해볼지 고민하였다. 막상 책과 글쓰기 과정을 해보니 그렇게 재능 있는 것도 아니고 1년 과정만 끝나면 바로 책까지 쓸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나의 감정을 토로하고 주관적인 내 생각을 나열하는 글에 그쳤다. 심화 과정이 없어서 아쉬웠다. 

결국 셋째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할 수 있는 일은 예전처럼 영어 강사였다. 마음 먹으면 돈도 벌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또다시 상황에 밀려 그럭저럭 당장 할 만한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한참 육아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내가 좋아하는 건 책이었고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된다면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그런데 막상 육아에서 벗어나게 되니 좀 더 효율적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영어 강사 하면서 영어책 읽고 책의 유익도 누리는 동시에 돈도 벌면 좋지 않을까. 혼자 꿈을 꾸었다.

넷째가 생겼다
 
넷째를 만나고 다시 공부하고 싶은 나를 낳았다.
 넷째를 만나고 다시 공부하고 싶은 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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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꿈을 꾸며 계획을 세워도 모래성처럼 소리 없이 부서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꼼짝없이 그저 겪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넷째를 임신하게 된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1년 동안 읽고 글 쓰는 과정을 통하여 회복과 안정을 얻었는지 방심했던 것 같다. 극한 육아 스트레스 상황이 이어졌다면 넷째를 만날 수 있었을까. 책 때문에 얻은 넷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째는 단 1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겨우 벗어난 이 육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아찔했다. 되찾았던 내 인생은 또 사라지고 말 것인가.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건강하게 낳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랄 수밖에.

다시 시작된 육아 스트레스는 상상초월이었다. 임신 5개월부터 허리가 아파서 기어 다녔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이제 막 입학한 첫째와 5살, 3살 그리고 뱃속 아이와 함께 매일매일 전투를 벌이며 살았다. 그리고 넷째가 태어났다.

휘몰아치는 육아 폭풍 속에 겨우겨우 버티었다. 막둥이를 등에 업은 채 세 아이 저녁을 먹이고 목욕까지 끝내면 한겨울에 입은 반팔티는 땀이 가득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한 번은 네 아이가 차례로 독감에 걸렸고, 또 가족 모두 눈병으로 고생했을 때, 이젠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자포자기 심정이기도 했다. 동시에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냈던 지난날의 소중함도 깨닫기도 했다. 우울감과 긍정의 힘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줄기차게 타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번씩 수렁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 네 명 모두 건강하게만 살게 해 달라는 기원에 내 인생 전부가 담보 잡힌 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너무 억울하고 주체 못 할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특히 아이들이 싸우거나 한꺼번에 다양한 요구를 할 때면 결국 소리 지르고 아이들 머리를 쥐어박으며 혼을 냈다. 곧바로 엄마 자격도 없다면서 수없이 나를 책망했다. 그날 밤은 자책과 우울감으로 잠을 설쳤다. 끝도 없이 떨어지다 바닥에 닿았을 때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이 순간, 단순해졌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죽지 않을 바에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지? 내가 좋아하는 것 하면 되잖아. 책 읽자. 더 이상 육아기간에 나중을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하지 말고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자. 남들 보기에 아무 쓸모없는 책 읽기 일지 모르지만 내가 좋으면 된다.'

살기 위해 참여한 책 모임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을 보낸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하는 이 고민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인정받는 세상을 향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였다. 이 몸부림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 네 명'이란 상황은 누가 봐도 무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주변의 모든 기대를 잊어버리고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열망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열망은 동네 엄마들 책모임으로 이어졌다.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 참석하기 시작한 책 모임은 넷째가 4살이 된 지금도 쭉 참여하고 있다. 육아가 힘들면 다른 것 할 여력이 전혀 없지만 이상하게도 책모임이 있는 날은 밤을 새워서라도 책은 읽었다. 독후감도 제출했다. 오로지 육아에만 박혀 있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책은 시각을 넓혀주고 크고 작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다. 잠깐이라도 고민해보고 그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주었다. 2~3주 만에 한 번씩 하는 책모임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온라인 프로그램 <80일 삼국지 읽기>와 <100일 글쓰기>를 연이어 수강했다.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공부는 그 자체로 존재의 기쁨이자 능동적 표현'이라고 마무리를 하는 순간, 갑자기 강연장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리에 있던 아줌마들의 얼굴이 연꽃처럼 활짝 피어났기 때문이다." -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40쪽

넷째를 만나고 다시 공부하고 싶은 나를 낳았다. 태어났으니 이제 책 읽고 공부하는 일이 사는 길이 되었다. 그 길은 물론 쉽지는 않지만 혼란과 갈등과 머뭇거림은 더 이상 없다. 눈에 보이는 성취와 실리를 따지는 눈을 의식하고 움츠려들지만 않으면 된다. 매일 조금씩 걸어가면 길동무도 만나고 예상치 못한 근사한 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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