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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말씀에는 다 공감이 되는데요. 그럼 대안은 뭐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다.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는 식의 이런 요구는 우리가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때마다 '머리로 공감한다면, 가슴으로 연대하고, 발로 뛰면 된다'고 답하지만, 반응은 늘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는 식이다.

사실상 질문자가 바라는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요구하는 대안이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해야 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질문자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게 어디 교육만의 문제일까마는 '손 안 대고 코 풀길' 바라는 거다.

학부모들의 고민은 거창할 게 없다. 입으로야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성토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녀의 학교생활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태반은 대학 진학 문제로 귀결된다. 공교육 정상화를 둘러싼 갈등도, 해묵은 공정성 논쟁도, 기준은 오로지 당신 자녀의 '유불리'에 있다.

거칠게 말해서, 당신 자녀의 대학 진학에 유리하면 '개혁'이고, 불리하면 '퇴행'이라고 낙인찍는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춰 개정되는 교육과정의 취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강의 도중 현행 교육과정을 함께 살펴보자고 하면, 학부모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아우성이다.

'본론'이란, 물론 대학 입시 제도의 변화 내용을 말한다. 결국, 대부분의 학부모 대상 강의는 '입시 설명회'로 수렴된다. 하긴 요즘 들어선 지역 교육청에서조차 서울에서 '1타 강사'를 초빙하여 '입시 설명회'를 주최하고 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공교육과 사교육은 그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된다.

학부모들의 질문 중 대다수는 '교사답지 않은 교사'에 관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녀의 학급 담임과 교과 담임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교사답지 않은 교사'의 행태는, 만약 사실이라면, '교사답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직무 유기를 넘어 범죄에 가깝다.

그들은 자녀의 입을 빌려 성토했다. 수업 시간에 자습시켜놓고 버젓이 주식 앱을 들여다보는 교사. 수업 중 급한 용무라며 수시로 전화기를 들고 교실 밖에 나가 통화하는 교사. 조회도 게을리하고, 종례도 없이 학생보다 먼저 퇴근하는 교사. 상담은커녕 학급 아이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교사.

매번 EBS 강의만 링크시켜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 전년도 시험 문제를 가져와 날짜만 바꿔 똑같이 출제하는 교사.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내용을 3인칭으로 바꿔 직접 써오라는 교사. 심지어 몇몇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친구가 써온 내용을 문맥에 맞는지, 오탈자가 있는지 등을 감수하라고 시켰다는 교사까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었다.

'대안'이란

그중에도 가장 민망했던 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아이에게 학원에서 배워 오라고 돌려보냈다는 교사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남들 학원에서 공부할 때 대체 넌 그 시간에 뭐 했느냐"며 대놓고 면박을 당한 경험도 들려주었다. 한 학부모의 자녀는 그 경험을 한 뒤로 교과 공부를 아예 접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단에 설 수 있는지 황당해하면서도, 학부모 대다수는 현실에 체념하는 눈치였다. 한 학부모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 데다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 현장의 변화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했다. 분노가 체념의 단계를 지나면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 법이다.

교사 집단을 향한 분노는 인터넷 댓글 창에서만 불타오를 뿐 응집되지 못했다.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분노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러가며 학원 순례를 자청하고 '어머니의 정보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더 혹독한 현실로 귀결됐다. 그들에게 학원은 학교의 보완재나 대체재가 아닌, 그냥 또 다른 이름의 학교다.  

교사가 공공연히 학원에서 배워 오라고 말할 지경이면, 학원은 더 이상 사교육 기관이 아니다. 학부모들은 우리 교육을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평가하는 '분업 체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형편이 어려워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은 있어도, 학원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랬다. 강의 내용의 골자였던 고교 학점제의 취지나 교육과정 개정의 필요성,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 따위는 학부모들에게 '공자 왈 맹자 왈'이었을 뿐이다. 그들이 요구한 '대안'이란,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만들고, '교사답지 않은' 교사를 일벌백계할 방법을 제시하라는 뜻이었던 셈이다.

23년 교직 생활 내내 곱씹었던 거라 답변하는 게 어렵진 않다. 문제는 과연 그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게 빤한데 굳이 말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럴 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이 제격이다. 

게다가 자칫 말 꺼냈다가 동료 교사들과도 척을 질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사실 교직 사회 내부에선 강고한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한다. 수업이든 생활지도 방식이든 동료 교사의 교육 활동에 간섭하는 걸 철저히 금기시한다. 학교장 등 근무평정을 하는 인사권자에게만 밉보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자녀 볼모론'

아무튼 현직 교사로서 학부모들의 질문에 답한다. 먼저, 지금도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학원에서 배워 오라고 다그치는 교사가 있다면, 증거 자료나 증인들을 확보한 다음 학교에 해당 교사의 실명을 밝히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라. 그래도 미진하다면 교육청 등 상급 기관에 민원을 신청하면 될 것이다.

벌써부터 현실적이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기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가 누군지 드러나면 애꿎은 자녀가 학교생활에 있어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한다. 이른바 '자녀 볼모론'인데, 학부모가 학교 일에 함부로 나서길 꺼리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뒤로 빠진 채 누군가 총대를 메주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만 하기 때문에, 들끓는 분노가 고작 인터넷의 뒷담화로 끝나기 십상이다. 교사 집단에 대한 모진 뒷담화는 정작 아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교사에게 생채기를 남길 뿐 득 될 게 전혀 없다.

내가 아는 한, 교사들은 질문이 많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질문을 한다는 건 수업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그것은 최고의 수업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부러 교무실에 찾아와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를 교사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하물며 귀찮다는 듯이 학원에 가라며 내쳤다면, 그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 학업성취도와 상관없이 학교는 아이들의 기초 학력을 책임지고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사명이 있다. 힘에 부친다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 게 아니라 교육청 등 상급 기관에 강사와 예산 지원 등을 요청하는 게 맞다.

'교사답지 않은' 교사를 일벌백계하는 방안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교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아이들이지만, 교과서에서나 그렇게 적혀 있을 뿐이다. 실제로 교사의 '천적'은 학교장 등 인사권자와 학부모다. 오매불망 승진을 꿈꾸는 교사든, 원만한 교직 생활을 영위하려는 교사든 마찬가지다.

학교 일에 개입하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십중팔구 교사를 대면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하지만, 교사의 경우 부담이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촌지를 챙겨가며 교사가 교육의 유일한 주체로 군림하던 시절이 아니다. 이미 학부모들의 조직된 힘이 능히 학교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문제는 학교와 교사를 성토하는 것 말고는 조직된 힘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로지 당신의 자녀 문제로 시야가 좁혀져 있는 데다 학교 일에 나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답이 없다. 직접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 바라는 학교와 교사는 영영 만날 수 없다.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손꼽는 이유다. 알다시피,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들이 교사, 지역사회의 인사 등과 함께 학교 운영에 대해 자문하고 심의하는 법적 기구다. 위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학교의 모든 학사 일정이 멈춘다고 말할 정도로 학교운영위원회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학부모 위원을 읍소하며 모셔오는 실정이다. 자원하는 학부모가 드물어서다. 대개 생업으로 인해 겨를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다. 솔직해지자면, 거수기라는 편견에다 막상 심의 과정에서 교사들과 얼굴 붉히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별 불만이 없는 우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법적 권한을 손에 쥐게 된다. 그들은 분명 '학부모 대표'로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거지만, 모든 학부모의 이해를 대변하진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 역시 당신의 자녀 문제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학부모일 뿐이다.

새삼스럽지 않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으로 멀리 돌아왔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민원을 제기하든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든, 무조건 학교 일에 개입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 교육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대우할 권위를 학부모 스스로 세우는 일이다. 이는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자녀가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담하건대, 그런 돼먹지 못한 교사는 극소수다. 안심해도 좋다. 질문이 많은 아이들을 선호하듯, 교사는 학교 일에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학부모를 존중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만 지고 있으면 달라질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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