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타이얼주앙’ 운하 갑문 유적지 교육기관에 걸린 공자와 마오쩌둥.
  ‘타이얼주앙’ 운하 갑문 유적지 교육기관에 걸린 공자와 마오쩌둥.
ⓒ 김기동

관련사진보기

 

중국 내 마르크스주의와 유가사상의 결합이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하 공산당)이 유가사상을 문화의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지배이념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유가사상을 지배이념으로 채택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예(禮)로 대변되는 수직·종속적 인간관계 등 마르크스주의에는 없는 지배이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를 지배 이념으로 삼는 공산당이 유가사상을 채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경제사상과 유가의 경제사상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선 공산당이 현재 유가사상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유가사상의 부활
 
2013년에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초기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색채를 뺀 '중국몽(中國夢,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지배이념으로 삼았다. 이 때부터 공산당은 유가사상을 새로운 지배이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은 그동안 각급위원회와 지방정부가 자발적으로 활용했던 유가사상을 <중화 우수 전통문화 전승·발전 공정의 실시에 관한 의견>이라는 이름의 문건으로 체계화해서 발표했다. 이것은 공산당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첫 중국어 문건이다. 그 내용을 보면 공산당이 유가사상을 문화의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고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중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장기적인 목표는 '중국몽의 실현'이다. 또한 해당 문건은 단기적인 목표로 2025년까지 자국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중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해당 문건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되) 의식형태의 영역에 있어서 지도적 지위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공고히 한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중국의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문건은 어떠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밝히고 있는데, 대부분이 오랫동안 중국의 주류사상이었던 유가사상의 관념과 이념이다. 해당 문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고(革故鼎新)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나아간다는(與時具進) 사상, 일을 함에 착실하게 하고(脚踏實地)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기초해서 진실을 탐구한다는(實事求是) 사상, 백성에게 혜택을 주고 백성을 이롭게 하고(惠民利民)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는(安民富民) 사상,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고(道法自然) 하늘과 인간은 하나라는(天人合一) 사상 등은 국가를 다스리고 정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인한 사랑(仁愛)을 말하고 백성이 근본임(民本)을 중히 여기고 진실한 신의(誠信)를 지키고 바르고 적합함(正義)을 중시하고 조화롭게 합쳐짐(和合)을 숭상하고 크게 평등함(大同)을 추구하는 등 핵심 사상과 이념을 강하게 확대·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여기서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 받는다'가 도가사상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유가사상이다.
 
이와 함께 해당 문건은 유가사상의 도덕관념과 윤리의식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匹夫)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책임의식 △충성을 다해서 국가에 보답하고 중화를 진흥시키는 애국심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향해 가고 현명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풍조 △효도하고 공경하고 충성하고 신의를 지키며 예를 알고 염치를 느끼는 영예와 치욕의 관념 등이 그것들이다.
 
생산수단의 공유화
 
마르크스주의와 유가사상은 정치사상도 유사한데 그 주체가 누구인가만 다를 뿐 권력이 소수로부터 나오고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경제사상이고 마르크스주의 경제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산수단을 공유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사상은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주장하는가 아니면 공유화를 주장하는가? 공유화를 주장한다.
 
<예기(禮記)>의 한 편으로 전국시대의 문헌으로 여겨지는 <예운(禮運)>은 편명 그대로 예의 순환에 대해서 다룬다. 공자는 자신의 고향이자 주나라 건국 당시 예악(禮樂)을 제작한 주공의 아들 백금이 처음으로 분봉되었던 노나라의 제사에 참여한 후 탄식을 한다. 탄식을 하는 이유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대도(大道, 사람이 걸어가야 할 큰 길)가 시행됐을 때에는 천하를 공(公)으로 여기고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자를 지명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하게 지냄을 갈고 닦도록 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부모만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인들은 제 수명을 다 할 수 있었고 성인은 모두 쓰였고 어린이는 모두 길러졌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 독신, 불구자도 모두 부양을 받았다. 남자는 모두 직분이 있었고 여자는 모두 시집을 갔다. 재화가 땅에 버려져 있음을 싫어했지만 절대 스스로 가지려고 하지 않았고 힘이 자신의 몸에서 나오지 않음을 싫어했지만 절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다…이러한 사회를 일러 대동(大同, 사람 사이의 큰 평등)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하를 공(公)으로 여긴다는 것은 군주의 자리를 세습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요(堯)와 순(舜), 우(禹) 왕 사이에 있었던 것처럼 선양(자식이 아닌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자에게 물려줌)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선양을 하면 예를 교육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예를 갖추게 되고 재화를 공유화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대동 사회다.
 
하지만 이것은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다. 반면 공자가 살던 시대의 현실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지금은 대도(大道)가 이미 숨어버리고 천하를 한 가문(家)의 것으로 여기게 됐다. 백성들은 자신의 부모만을 가까이 하고 자신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고 자신만을 위해서 재화와 힘을 사용한다…예를 기강으로 만들어 군신관계를 바로잡고 부자관계를 돈독히 하고 형제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부부관계를 조화롭게 한다…이러한 사회를 일러 소강(小康, 작은 평안)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천하를 한 가문(家)의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하는 것은 군주의 자리를 세습하게 됐다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대동 사회와 달리 소강 사회에서는 세습을 하기에 신하들과 백성들은 예를 갖추지 않게 되고 재화를 사유화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를 가르쳐야지만 신하들과 백성들은 예를 갖추고 재화를 공유화한다. 이것이 곧 소강 사회다.
 
한편 대동 사회와 소강 사회는 공산당이 현재 활용하고 있는 지배이념이다. 중국몽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소강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소강 사회를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로 해석하는데, 공산당은 지난해 전 국민이 성공적으로 빈곤을 탈출했으며 전면적 소강 사회를 건설했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단계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에 중국몽을 완성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대동 사회를 국가적 차원으로 국한하지 않고 국제적 차원에서 해석하는데, 운명공동체인 인류가 다 함께 대동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유가사상의 결합
 
유가사상의 대동 사회는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는 공산주의 사회와 유사하고, 유가사상의 소강 사회는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생산수단을 사유화하는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유가사상이 그리는 이상사회와 현실사회의 모습이 유사한 것이다.
 
물론 둘 사이의 차이점도 있다. 소강 사회에서 대동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미래로 가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대동 사회가 수직·종속적인 인간관계를 상정하는 반면 공산주의 사회는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상정한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활용하면서 경제사상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유가사상의 결합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동 사회는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자를 군주로 지명한다. 하지만 새로 지명된 군주는 또 다시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다. 하지만 일당독재를 하기에 공산당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된다. 대동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는 이렇듯 권위주의와 절대군주제하에서 공유제를 시행하기에 결국 군주와 공산당이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형태의 사유제가 된다.
 
공산당이 진정으로 이러한 사회를 구현하려고 한다면 공산당은 향후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들로부터도 지지를 얻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태그:#중국, #경제, #중국경제, #정민욱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일보 자매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