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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부모님과 지내는 순간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두곤 했다. 우선은 핸드폰이라는 편리한 도구 덕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이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마음 한 곳을 차지하면서부터인 듯하다.

내 존재의 근원이자 생존의 울타리였고, 한때는 몹시도 벗어나고픈 속박이기도 했던 부모. 매우 익숙하고 밀접한 존재였지만, 막상 그들을 떠올려보면 재미없는 교과서에나 나열될 듯한 사실 몇 조각들이 내가 아는 전부인 듯했다.

그 무지를 깨닫게 되면서 내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삶에 대한 궁금함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궁금함이 생겨나면서 나의 무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뒤늦게 찾아온 궁금함을 안고 예전 앨범을 뒤적이며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을 새삼스레 들여다보곤 했다. 표현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그 시절 그들의 고단했을 삶을 혼자서 그려보기도 하고, 부모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부모는 미지의 영역이 더 많은 익숙하고도 낯선 존재인 듯하다.

그렇게 익숙하고도 낯선 존재인 아버지가 지난해 1월 31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벌써 1년이구나 싶은데, 어머니는 1년밖에 안 됐냐고 너무 오래전 일인 것만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 삶의 일부나마 추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과 동영상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들을 모았다. 어머니 구순 영상을 만들어주었던 선생님에게 아버지 1주기 영상도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바다 나들이 재작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마을 바닷가를 다녀왔다. 부모님은 맑은 날씨와 고요한 바닷가를 매우 좋아하셨다. 이것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바다 나들이가 되었다.
▲ 아버지의 마지막 바다 나들이 재작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마을 바닷가를 다녀왔다. 부모님은 맑은 날씨와 고요한 바닷가를 매우 좋아하셨다. 이것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바다 나들이가 되었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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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몇 년 전 아버지의 노환이 시작되던 즈음부터 '건강한 듯 하시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는 거구나. 내일 돌아가신다 해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의 숙명인 '죽음'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살아있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 많아졌다. 모두의 미래이면서도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주저되었던 '죽음'에 대해서 부모님과도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늘나라 갈 때 부르고 싶고 듣고 싶은 노래, 부모님의 '하늘송'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아버지는 '저좋은 낙원 이르니'를, 어머니는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선택했다. 부모님의 하늘송을 부모님과 함께 부르며, 나는 삶과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기에 하늘송을 불러드리지는 못하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두 달 반 정도 일반병원과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래도 긴 시간 고생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이 조문객들이 해준 위로의 말이기도 했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으려면, 24시간 간병인이 되었든 가족 중 누구가 되었든 간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까지 몇 년간 걱정과 고민을 안고 있긴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기에 적절한 곳은 아닌 것 같았지만, 다른 대안을 내오지는 못하던 상황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실지, 얼마나 외로우실지,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으신지 등 마음만 수시로 서성대는 시간들이었다. 요양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무슨 생각하며 지내냐고 물었더니 "생각이랄 게 있을까?" 하시더니 "인생이 홀로 홀로..."라는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를 탓하느라 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한 받아들임으로 읽혀졌다.

약기운일지 계속 누워계신 탓일지 계속 기운은 떨어지셨다. 조금만 움직일 수 있어도 뭐든 하려하던 아버지는 눈을 떠있는 것도, 일어나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애써 힘을 내서 하시는 듯 했다. 휠체어 타고 복도라도 나가볼까 했더니 무리하지는 말자며 거부하셨다. 그래, 그럼 따뜻한 봄 되면 휠체어 타고 바깥 구경하자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셨다.

길지 않은 아버지의 병원생활을 간간이 지켜보면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 같다. 의료인 개인을 탓할 수 없는,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해주고 있다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명확한 것 같다.

병원에서의 '연명'의 시간들을 '살아있음'이라고 하기는 너무 어려워 보였다. 이런 상태로라도 아버지가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살아계신 시간이 덜 외로우시기를, 육체적으로 덜 고통스럽기를 기도드릴 뿐이었다. 힘들었을 그 시간에도 감사의 마음을 지켜주신 아버지께 두고두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아버지의 1주기를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다가 육지의 언니 둘만 내려와서 며칠 같이 지내기로 했다. 언니들은 어머니와 내가 이사한 후 코로나 때문에 아직 집에 한 번도 와보지 못했으니 집들이도 겸한 만남이었다. 어머니는 미국에 있는 큰언니와 영상통화하면서 너만 왔으면 딸들 다 모이는 건데 라며 아쉬워하셨다.

함께 모이지 못한 가족들에게 15분 조금 안 되는 1주기 영상을 보냈다. 각자의 공간에서 영상을 보며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단톡방에서 수다를 떨었다. 보고나서 잊어버리는 어머니 덕에 나와 어머니는 몇 번 반복해서 영상을 봤다.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다 만들었냐고, 고맙다고, 이걸 보니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만 같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 구순 영상과 아버지 1주기 영상을 기꺼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선생님께도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 같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울고 웃으며 맘껏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예전에 제주에 내려왔을 때 우리 부모님을 본 적이 있는 선생님이 영상을 만들고나서 이렇게 카톡을 보내주었다.

'제가 잠깐이지만 두 어른 모습을 뵈면서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냥 존재로도 고마운 분들인 것 같아요.
영상 만들면서도 인생공부가 되었어요.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마워요. 두 분 위해 저도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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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을 지리산 자락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멀리 한라산과 가까이 파란 바다를 보며 지낸다. 아직은 조금 비현실적인 듯한 풍경들 속에서 이사와 정리와 청소로 이어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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