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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온택트'(Ontact·온라인을 통해 대면하는 방식)로 진행하기로 했다. 주된 생각은 결혼이라는 관례가 '생각을 나누는 과정'으로 재정립됐으면 하고 소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 결혼은 신랑 혹은 신부 한 측의 손님으로 식장을 방문해 지인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박수만 치다 돌아온다. 이러한 결혼식이 과연 '대면'의 본질을 잘 살리는 것인가? 오히려 부부가 결혼하게 된 까닭과 서로가 가진 가치관 등을 주변에 소개하는 것이 더욱더 '대면'적인 것 아닐까?

2020년 12월 2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구청 문이 열리자마자'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우리는 이로부터 정확히 180일 뒤인 2021년 5월 30일, 화려한 결혼식장을 대관하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행위가 아닌 유튜브로 '시민결합선언식'을 생중계하기로 했다.

이처럼 우리가 왜 관습을 타파하는 결혼식을 하고자 했는지 설명하는 '이상결혼' 시리즈를 5회차에 걸쳐 연재해 보고자 한다. (관련 기사 : 요즘 것들의 결혼식은 이렇습니다 http://omn.kr/1s00s)

이 이상결혼은 '이상한' 결혼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이상적인' 결혼일 수도 있다. "이렇게 결혼하는 부부도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통해 집안과 집안 간 만남이라는 결혼이 그저 주체적인 '개인 간 만남'으로 거듭나길, 누군가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다음은 2021년 2월 16일 오후 8시, 결혼식까지 103일이 남은 상태에서 우리 부부와 우리의 친구인 '진구' 셋이서 나눈 대담이다.

보통시민과 비정상시민
 
EBS 1TV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것' 편
 EBS 1TV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것" 편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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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 "지난번 '보통시민'의 재정의에 대해 이야기했잖아. 오늘은 '비정상시민'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어. 우선 비정상시민은 어떤 사람이고, 정상시민은 누구야?"

설아: "우리가 사회에서 쉽게 '보통시민'이라고 정의해왔던, '정상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큰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이 '정상시민'으로 '패싱(passing, 어떤 특정한 범주로 생각하거나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것)'되고 있다고 봐.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결손가정' 아닐까? 당장 '결손'이라는 단어에도 결핍이란 의미를 담고 있잖아. 그만큼 우리 사회는 부모 없는 가정을 '비정상'으로 바라보고 있어. 또 미혼부는 자녀 생의 첫 단계인 출생신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야. 비정상시민에겐 정상시민은 볼 수 없는 장벽이 있어.

대리모 문제도 마찬가지야. 한국 사회에선 불법이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첫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시민권을 보장받는 데 제한이 따르는 가정에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이들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살고 있다는 데 문제 의식을 갖고 있어."

동현: "사회적 편견을 하나하나 깨뜨려 나갔으면 좋겠어.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잖아.

그런데 '같은 성별은 안 되나?' '단둘이어야 하나?' '아이를 낳아야 할까?' 등 이런 질문들을 조금 더 던져보고 싶어.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대안을 싫어하겠지만, 다른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가정의 범위를 넓혀가고 싶어."

진구: "그런데 둘은 정상가족의 범주에 속해 있잖아. 그런데 왜 비정상시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야?"

설아: "우린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결혼이야. 결혼 대신 '시민 결합'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건, 서로의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시민과 시민의 만남이기 때문이야. 남들 눈에는 정상 가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극 말하고자 했어.

결혼 후에 '너네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 우리와 같은 결혼이 생각보다 나아 보인다는 뜻이지. 그간 사회의 가치관을 깨도 된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단 것이기도 해. 우리의 만남이 정상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결합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결혼은 '두 당사자' 간 이야기
 
결혼은 '두 가문의 결합'이 아닌, 두 당사자 간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벤트다.
 결혼은 "두 가문의 결합"이 아닌, 두 당사자 간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벤트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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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 "둘은 자녀를 '가질' 생각이 있어?"

동현: "자녀를 갖는다는 표현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임신과 출산으로 정의되는 것도 정상시민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봐."

진구: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떻게 성립돼야 한다고 봐?"

설아: "불과 몇 개월 전까진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를 합법적으로 체벌할 수 있었어. 아무도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혼도 마찬가지야. 나는 결혼의 주인을 부모라고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우리 마음이 맞아서 결혼한 것인데, 그 주인이 왜 부모이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중을 받아야 해. 적절한 나이가 돼도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봐."

동현: "우리 결혼은 '두 가문의 결합'이 아닌, 두 당사자 간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벤트였으면 좋겠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대화하는 것도, 두 사람의 결합 혹은 동지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나눠야 하는 생각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지.

보통 결혼식을 가면 이해가 안 갔던 게 있어. 신부(신랑)의 하객은 신랑(신부)의 이름을 제외하곤 누군지 모른다는 거야. 내가 결혼한 상대는 이러한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나누는 자리로서 결혼식을 하고 싶어."

진구: "앞서 기사들을 통해 부성우선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도 그런 이유야?"

설아: "맞아. 민법상 부(父)의 성을 따르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지. 모(母)의 성을 따르면 '비정상시민'이라는 편견을 깨고자 했어. 민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이 점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려고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기도 해. 그런데 문제가 있더라. 헌법소원을 하려면 법이 개정되고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제69조 청구기간 ① 제68조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는 날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절차를 거친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최종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

나는 태어난 지 28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성우선주의가 담긴 민법은 태어나기 전에 개정됐어. 실질적으로 이 법에 구속을 받고 있는데도, 그게 부당하다고 헌법재판소에 말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헌법재판소와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거야. 물론 각하될 가능성이 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정상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그대로 두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 헌법에 적힌 행복추구권을 추구하기 위해서."

태그:#결혼, #보통시민, #비정상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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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시민선언'의 공동대표입니다. 보통시민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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