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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 '인신매매 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안'(아래 인신매매특별법)이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해왔던 현장단체와 전문가들은 유엔 인신매매의정서(2000년 채택)를 이행하는 인신매매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20년간 주장해왔다. 그래서 이번 법안 발의는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인신매매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을뿐더러,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이에 단체와 전문가들은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하였고, 국회와 정부에 제대로 된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자 22일부터 5일간 총 5편의 릴레이 기고를 이어갈 예정이다.[기자말]
지난 4일간의 연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착취,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사례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였다. 그런데 이 인신매매 범죄는 이 현장들에서 끝나지 않는다. 장애인들을 착취하여 생산된 소금이, 이주어선원들을 착취하여 잡힌 수산물은 공급망을 거쳐 결국에는 우리 식탁에 오르기 때문이다.

사실 소금과 수산물 외에도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많은 음식들이 이런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들에 의해 생산이 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태국산 칵테일 새우, 코트디부아르산 초콜릿과 커피, 방글라데시와 터키에서 생산된 패스트 브랜드의 옷 등 인신매매 당한 피해자들의 노동 착취의 결과로 생산된 물건들은 매우 다양하다.

인신매매는 공급망을 타고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많은 음식들이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들에 의해 생산이 되고 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많은 음식들이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들에 의해 생산이 되고 있다.
ⓒ envato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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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이란 어떤 제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거치게 되는 다양한 생산 및 서비스의 과정을 총망라한 것이다. 가령 한국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태국산 새우는 태국에서 양식이 되는데, 양식 새우의 사료가 되는 잡어를 잡기 위하여 미얀마, 캄보디아의 이주노동자들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있다. 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노예선에 팔려가서 하루에 쌀 밥 한 그릇을 먹고 20시간씩 일을 한다고 한다. 더욱이 선내에서 실수를 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구타뿐 아니라 살해를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노예 노동은 새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미얀마나 캄보디아에서 돈을 잘 벌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은 이주노동자들은 태국의 새우 가공공장으로 보내지는데, 이들은 공장에서 감금된 채로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도 거의 돈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가공된 새우는 태국의 수산물 가공 기업을 통해 전세계 각국으로 수출이 되고, 우리나라 마트에까지 유통이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새우의 공급망이 되는 것이다.

공급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방법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에 새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으로 얼룩진 새우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업의 공급망을 소비자들이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기업이 직접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문제, 특히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대해 파악하고 대처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캘리포니아 공급망 내 투명성 법(California Transparency in Supply Chain)'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 중 1억 달러 이상의 총수입이 있는 기업은 제품 생산을 위한 공급망에서 노예노동과 인신매매를 척결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밝혀야 한다.

구체적인 노력의 내용으로는 기업이 ▲ 제품의 공급망에서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의 위험에 대해 평가하고 확인하는 과정에 제3자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참여하고 ▲ 원료의 공급자가 공급망에서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관한 기업의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감사를 실시하고 ▲ 1차 공급자에게 원료 생산 과정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관한 법을 준수하였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하고 ▲ 노예노동과 인신매매에 관한 기업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직원들과 계약업체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부 기준을 마련하고 ▲ 공급망 관리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직원 및 관리자에게 특별히 공급망에서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였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법 제정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는 공급망에서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대응하기 위한 법이 제정이 되고 있다. 2015년 영국에서는 인신매매특별법인 현대판 노예법(Modern Slavery Act)이 제정이 되었다. 이 법은 인신매매를 포함한 현대판 노예제에 대응하기 위한 법으로, 기존에 여러 법에 산재되어 있던 관련 법들을 모아 정의를 하였고, 현대판 노예제에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한 표명으로 최고형량을 기존의 14년에서 종신형으로 증가시켰으며, 범법자의 재산을 철저하게 몰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법원을 통해 노예제와 인신매매 관련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명령과 위험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였으며 효과적인 법의 시행을 위하여 독립적인 반노예위원(The Independent Anti-Slavery Commissioner)을 설치하였고, 피해자가 부당하게 처벌되는 일이 없도록 피해자가 활용할 수 있는 방어조항을 법 상에 명시하는 등 인신매매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였다.

더 나아가 기업이 사업이나 공급망에서 노예제 혹은 인신매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취한 조치에 대해 공개하는 조항이 추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기업에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한 조치에 대해 밝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캘리포니아 법과 구조는 같으나, 제품 뿐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적용이 되고, 총매출 3600만 파운드를 초과하는 기업에게 적용이 된다는 점이 캘리포니아 법과 다르다.

2018년에는 호주에서도 현대판 노예법(Modern Slavery Act)이 제정되었고, 캐나다에서도 2020년에 현대판 노예법 (Modern Slavery Act)이 발의가 되어 국회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 캐나다 법안의 경우, 관세법 개정과 같이 발의가 되었는데 강제노동이나 아동노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유럽 각국에서는 기업의 공급망에서 인신매매에 국한되지 않고 인권 전반에 대해 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이행하도록 하는 법들이 제정되었거나 논의가 되고 있다.

인신매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기업이 공급망을 모니터링하고 이행하고 있는 노력을 공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법들은 대부분 이행을 하지 않더라도 벌칙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망에서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대한 공시의무를 기업에게 부과한 것은 인신매매 반대 운동의 큰 진보로 평가가 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법이 제정되기 전, 이러한 내용을 굳이 현대판 노예법에 추가하지 않더라도 개정된 회사법을 통해 공시의무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판 노예법에는 포함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영국 회사법은 2013년 10월 1일부터 특정 회사들이 전략 보고서를 발행할 때 '인권 이슈'와 관련된 사항들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어 여기에 공급망과 관련된 정보를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조항을 굳이 현대판 노예법에 포함시킨 것은 현대판 노예제 근절을 위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영국 내무부장관은 현대판 노예법이 범법자에게는 '이 더러운 산업에 몸을 담근다면 기소되고 철창 속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피해자들에게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 돕기 위해 있다'는 도움의 메시지가 되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우리가 원하는 법

이수진 의원실에서 대표로 발의한 인신매매특별법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신매매의 정의와 부합하지 않는 정의 조항을 두고있으며, 가해자 처벌 조항의 부재와 불명확한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 절차의 규정으로 인하여 실제로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호할 수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없다는 것은 지난 기고를 통하여 상세하게 밝힌 바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꾸려진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연대회의'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입법안을 준비하였다. 이 법안은 ① 인신매매 정의에 '취약한 상태를 이용하는 행위'를 포함시켜 의정서 상의 정의에 부합하도록 하였고 ② 가해자 처벌조항을 신설하였으며 ③ 피해자 확인 절차의 대강을 규정하였고 ④ 법 집행 공무원들에게 인신매매 피해자를 식별하고 통보하도록 의무를 두고 ⑤ 취약한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보호 특례 규정을 보완하였다. 이와 더불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⑥ 기업이 공급망에서의 인신매매 대응 내용에 대해 공시를 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을 추가하여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의 과오를 비판하기는 쉽다. 우리는 노예선을 운영했던 사람들의 잔인함에 대해 쉽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지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대판 노예와 인신매매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있을까?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언제까지 복잡해진 공급망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일들을 묵인할 수 있을까? 훗날의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도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과연 우리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할까?

복잡해진 이주의 양상과 사회구조로 인하여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이 나타나는 양상도 복잡해지고 대응하기도 어려워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으로 얼룩진 제품을 거부하기 위하여 기업들에게 공급망에 대해 밝히도록 요구를 하고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신매매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는 인신매매범을 처벌하고 공모를 막을 수 있는 진짜 인신매매특별법이 필요하다. 진짜 인신매매특별법을 통해 우리 시대가 인신매매를 철폐하는 시대를 열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기획 / 처벌 조항 없는 인신매매특별법 필요없다]
① 이수진 의원의 '인신매매특별법', 실망스럽습니다 http://omn.kr/1s648
② 대통령까지 나섰던 '염전 노예사건'의 허무한 결말 http://omn.kr/1s6l8
③ 욕설, 폭행, 착취에도... 그들은 배 안을 벗어날 수 없었다 http://omn.kr/1s75f
④ 인신매매에 감금까지 당했는데... 그녀는 피의자가 됐다 http://omn.kr/1s7ul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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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센터 어필은 소송, 법률교육, 국제연대, 공익법중개, 제도연구, 입법운동 등을 통해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다국적기업의 인권 침해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공익변호사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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