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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 '인신매매 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안'(아래 인신매매특별법)이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해왔던 현장단체와 전문가들은 유엔 인신매매의정서(2000년 채택)를 이행하는 인신매매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20년간 주장해왔다. 그래서 이번 법안 발의는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인신매매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을뿐더러,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이에 단체와 전문가들은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하였고, 국회와 정부에 제대로 된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자 22일부터 5일간 총 5편의 릴레이 기고를 이어갈 예정이다.[기자말]
 
A는 태국 국적 여성이다. A는 한국에 가서 마사지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태국 현지 브로커 B의 말을 믿고, 2016년 7월 26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날 밤 A는 한 남성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강간을 당했다.
 A는 태국 국적 여성이다. A는 한국에 가서 마사지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태국 현지 브로커 B의 말을 믿고, 2016년 7월 26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날 밤 A는 한 남성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강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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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로커에 속아 한국행, 업주에 속아 성폭력 피해

A는 태국 국적 여성이다. A는 한국에 가서 마사지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태국 현지 브로커 B의 말을 믿고, 2016년 7월 26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서 곧바로 고속버스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C 마사지 업소로 보내졌다.

그날 밤 업주 C는 테스트해보겠다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성이 있는 방으로 A를 들여보냈다. A는 그 남성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강간을 당했다. 알고 보니 테스트는 성매매를 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본다는 의미였다. 

A는 태국 현지 브로커 B와 업주 C에게 계속 당장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B와 C는 왕복 비행깃값과 알선비인 선불금 200만 원을 갚기 전까지 본국에 돌아갈 수가 없다며 A의 여권을 가지고 협박했다.

A의 숙소는 마사지 업소의 한 방이고 업주는 24시간 카운터에서 여성들을 감시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겠던 A는 태국 사람들이 많이 접속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구조요청 글을 남겼다.

며칠 후 태국 대사관이 움직여 경찰에게 요청, 이 업소가 단속되면서 풀려나게 됐다.

피해자인 A는 인신매매피해자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성폭력처벌법상의 국선변호사가 연결되었다. 피해자 변호사는 검찰에 이 사건을 형법상 '인신매매죄'로 입건하여 조사하고, 관련 모집책, 브로커, 인수·인계받은 모든 연계책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업주만을 조사하여 성매매 강요 및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만 기소하였고, 모집책과 브로커들에 대한 추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법원은 성매매 강요는 물론 업주를 성매매알선으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업주는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만 처벌받았다.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 D는 업주 G와 함께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 D는 업주 G와 함께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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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의자가 된 피해자
 

D는 태국 국적 여성이다. 일자리를 구하던 중 태국 현재 브로커인 E로부터 '한국에서 마사지를 하면 돈을 번다. 그리고 그만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 소개비 한화 200만 원이 있지만, 이거는 일하면서 나중에 갚으면 되고 금방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D는 E와 그 일당(알선책)에게 소개비 200만 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약간의 생활비를 가지고 2018년 6월 15일에 한국에 왔다. D는 도착 직후 E와 그 일당의 지인인 F를 만나 광주로 이동하여 허브샵(퇴폐업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D는 허브샵 업주인 G로부터 이상한 말을 듣는다.

"성매매를 하는 거고, 성매매 1회당 4만 원이다. 네가 빚이 있으니 성매매 50회까지 빚으로 충당하게 되고 네 몫은 없다. 50회가 넘으면 그 이후부터 1회당 4만 5천 원 받는다."

D는 업주 G와 브로커 일당인 E와 F에게 "(성매매를) 안 하고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E와 F는 "네가 나한테 줘야 할 소개비가 있는데, 안 하면 어떻게 줄려고 하냐"고 말하였다.

D는 빚을 갚기 위해 꾹 참고 서너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업주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E와 F에게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F는 피해여성 D를 전라남도 광양시에 있는 원룸으로 데리고 가 "200만 원을 변상하지 않으면 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돈을 갚지 않으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겠다"고 감금, 협박하였다.

피해자 D는 휴대전화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무명의 사람에게 휴대전화로 도움을 청하였고, 이 사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여 체포되었다.

그러나 알선자인 E가 감금 협박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 오히려 피해자 D는 업주 G와 함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성매매처벌법에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피해자 D는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고, 범죄가 인정되나 기소만을 하지 않기로 하는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그 외 누구도 인신매매로 조사되지 않았다. 다른 모집책 및 브로커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D는 인신매매 피해자임에도 무혐의 처분이 아니라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였고, 2년이 지난 2020년 9월 29일에야 헌법재판소는 판결이 부당하다며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 모든 일(인신매매인데 인신매매로 수사되지도 처벌되지 않는 일)은 형법에 도입된 인신매매조항이 도입된 2013년 이후에 일어났다. 

인신매매로 수사되지 않는 이유
  
이렇게 인신매매가 분명한 사건임에도 인신매매로 수사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인 나만 해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와 유사한 사건을 4차례 접했다.

인신매매로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도 결국 어느 수사기관도 인신매매로 조사하지 않았고, 단지 업주만 성매매알선 혐의로 기소되었을 뿐이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라는 규정까지 있지만, 그 규정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태국 여성이 인신매매/성매매 피해자인지 여부도 가려지지 않은 채, 업소 단속을 당한 다음 피의자로 입건되어 한 차례 조사를 받고 강제퇴거명령을 당했다. 이 경우 인권지원단체에 연계조차 되지 않으니 현황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목소리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업주만이 성매매알선으로 처벌되고 모집책, 연결책, 이동책, 피해자 관리책 등 중간 관리자들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자는 브로커들에 의한 보복 우려로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조차 없다. 인신매매는 조직범죄인데도 현실에선 조직범죄로 수사되지 않고 있다.

기존 법으로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
 
 
처벌규정이 없는 인신매매피해자 보호법은 기존의 수사기관의 수사관행을 바꿀 수?없다.
 처벌규정이 없는 인신매매피해자 보호법은 기존의 수사기관의 수사관행을 바꿀 수?없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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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처벌법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 아동학대 처벌법, 장애인복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도 '이론적으로는' 기존의 법으로 다 처벌 가능하고 수사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범죄 특성에 따른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범죄별 특성에 따른 절차적 규정과 피해자보호를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규정은 처벌 규정 및 수사/재판 절차 규정과 별개로 두고 있다.

기존의 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고, 적용 안 하는 관행이 문제라고 하는 주장은, 다른 특별 형법들 모두 다 필요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장애인 학대 사건은 일반 형법 규정보다 오히려 관련 특별법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그 특별법들도 모두 필요 없다는 말인가?

인신매매만 처벌 관련 특별법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신매매 범죄의 피해자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이주여성이다. 특별히 취약하다. 이 사람들의 취약성만 특별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수진 의원안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 규정이 없으면 수사/재판 절차상 피해자보호 조항 역시 실질적으로 수사기관에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수사기관은 철저히 '법률의 처벌 규정과 죄명으로만 범죄를 인식'하고 업무분장을 하여 특별법상 그 죄명으로 수사를 한다. 예를 들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처벌 규정 때문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죄라는 죄명으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고 유무죄를 내린다.

그런데 이수진 의원안은 '인신매매'라는 죄명으로 별도의 처벌 규정 자체를 두지 않고 있다.

이 의원 안에는 여러 특별법(성매매처벌법,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청소년 보호법, 아동복지법, 근로기준법, 장애인복지법, 선원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에 흩어져 있는, 인신매매와 관련 있는 법률조항을 끌어모아다가 '인신매매·착취범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어떤 문제점도 바꿀 수 없는 자족적인 규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인신매매죄' 자체로 수사하지도, 기소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벌 규정이 없는 인신매매피해자 보호법은 기존의 수사기관의 수사관행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재 이수진 의원안이 규정하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위한 절차적 보호 규정 자체가 체계에 맞지 않게 되어버리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여성가족위원회 검토의견에서 이와 같은 지적이 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위한 규정들이 매우 절실한 것인데도 말이다.

처벌 규정 없는 인신매매특별법은 앙꼬 없는 찐빵, 빛 좋은 개살구다. 앙꼬 없는 찐빵을 누가 먹는가, 빛만 좋은 개살구를 누가 먹는가? 법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을 규율할 수 있어야 법이다. 현실과 괴리된 이론도 의미 없는데, 하물며 현실과 괴리된 법이야말로 의미 없는 종이에 기재된 문자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겠는가?

처벌 규정 없는 인신매매특별법은 쓸모가 없다. 인신매매방지의정서의 이행입법이 될 수도 없다. 인신매매'처벌'특별법을 도입해야 한다.

[기획 / 처벌 조항 없는 인신매매특별법 필요없다]
① 이수진 의원의 '인신매매특별법', 실망스럽습니다 http://omn.kr/1s648
② 대통령까지 나섰던 '염전 노예사건'의 허무한 결말 http://omn.kr/1s6l8
③ 욕설, 폭행, 착취에도... 그들은 배 안을 벗어날 수 없었다 http://omn.kr/1s75f

덧붙이는 글 |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 입니다.


태그:#인신매매특별법, #성매매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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