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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영하권에서 머무르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빨래가 골칫거리였다. 이불빨래를 번번이 빨래방에 가서 하고 올 수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가족들의 방마다 커버를 벗기고 세탁하고 씌우고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불 빨래만으로도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거기에 유난히 깔끔 떠는 아이는 하루 나가서 생활하고 들어오면 옷을 몽땅 빨랫감으로 내놓는다. 겨울이라 겹겹이 껴입으니 그 종류나 부피가 엄청났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을 피해 세탁기를 돌리다 보면, 세탁 용량이 넘게 꾸역꾸역 빨랫감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잦은 빨래가 귀찮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겉옷은 큰 얼룩이 묻지 않았으면 먼지만 털어 다시 입어도 괜찮다고. 한 번 입었다고 세탁하는 것은 옷감을 상하게 할 뿐더러 오히려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옷걸이에 잘 걸어 환기시키고 입어도 된다고 마음대로 합리화해서 말하곤 했다.

물론 정확한 얘기인지 알 수는 없다. 어딘가에서 얼핏 들은 얘기라서 근거를 따지면 대답이 옹색했다. 정보가 믿을 만한 것인지 따지기 전에 나는 이미 설득되었고 가족들에게 무작정 말했던 것이다.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지은이)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지은이)
ⓒ 자연과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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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의 <착한 소비는 없다>를 읽으며 내가 강조했던 말은 어느 정도는 인정할 만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환경에는 좋은 방법이었고 더구나 몸에도 좋은 일이었다. 책에서는 빨래를 좀 덜 하고 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깨끗하게 사는 것이 결국엔 미세 플라스틱을 우리 몸속에 들어오게 하는 원인이 된다며.

바다생물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나온 것이나 거북의 목을 감고 있는 플라스틱은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많이 접했다. 그러나 그 플라스틱이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몸에 들어오는 양을 알고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고, 한 달이면 칫솔 하나 무게인 21그램을 섭취한다고 적혀 있었다. 생수에 있는 미세 플라스틱은 걸러낼 수도 없고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미세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이 빨래라고 책에는 적혀 있었다. '세계 자연보전 연맹(IUCN)이 추산한 바로는 전 세계 플라스틱 오염의 35퍼센트는 합성 섬유 세탁 과정에서 발생한다'라고 한다. 합성 섬유가 세탁 과정에서 마찰하며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고 다시 바다생물과 소금, 생수를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우리 집처럼 빨랫감을 왕창 넣고 세탁을 하는 것은 옷감의 마찰력을 줄여 미세 플라스틱이 덜 발생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한꺼번에 하되 용량을 초과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빨래하는 횟수와 사용하는 물만큼 미세 플라스틱은 많이 나오고 우리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셈이 된다는 것이었다.

휴대폰 사용주기에 대한 통계도 언급되었다.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조용히 따져 보았다.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은 내가 그간 사용했던 휴대폰 중에서 가장 오래 사용하는 것이다.

액정이 깨진 후 적당히 쓰다가 교체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마음먹고 큰 비용을 지불해서 액정을 교체하게 되었다. 새것처럼 바뀌니 교체 비용만큼 더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이 줄어 휴대폰 사용이 줄어든 것도 교체를 미루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휴대폰은 사용한 지 만 4년 하고도 1달이 더 지났다. 출시되고도 2년이 더 지난 제품을 성능 대비 값이 싸고 기능이 나름 좋다는 이유로 구매해서 2년 약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약정기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2.7년의 평균 교체 주기는 지나 뿌듯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휴대폰 사용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의미가 달랐다.
 
콩고 민주 공화국은 세계에서 광물 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입니다. 특히 콜탄은 전 세계의 70-80퍼센트가 콩고 미주 공화국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콜탄은 그저 흔한 돌덩어리였다가 정보 통신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다이아몬드급으로 격상된 광물입니다.... 세계 시민들이 분쟁 광물인 콩고 민주공화국 콜탄을 불매하겠다고 다국적 기업들을 압박했습니다. 그러자 콜탄이 전혀 매장돼 있지 않은 르완다의 2013년 콜탄 수출이 전 세계 생산량의 28퍼센트를 차지했고 2014년 단일 국가로 최대 수출국이 됐습니다. 콜탄은 현재 내전이 끊이지 않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도 정부군과 대립각을 세우는 반군 점령지에 다량 매장돼 있습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콜탄을 캐는 노동에도 강제 동원되다시피 하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최원형 <착한 소비는 없다> 중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모델명을 바꾸어 계속 나오는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는 신제품의 출시 속도에 다른 정보를 몰라도 놀랄 때가 많다. 이렇게 계속 나와도 수요가 뒷받침되고, 매번 새로운 제품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믿을 수 잆다.

그 개운치 않음의 원인이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너무 많이 새 것이 나오고 너무 많이 버려지고 가치에 비해 너무 빠르게 그 쓸모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마트폰 71억 개. 2020년 지구의 인구가 77억 명이니, 지구 인구의 숫자만큼의 스마트폰이 단 10년간 만들어진 것이다. 문명을 위해서는 이런 빠른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집안을 조금씩 정리하며 비우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한 번씩 서랍을 뒤집어 정리하던 중 서랍에 잠자고 있는 휴대폰을 한 곳에 모아 둔 것이 여섯 개. 속도가 느려서,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서, 2G에서 3G로의 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했다. 사용했던 것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일부는 분실했고, 일부는 어디 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버리기에는 휴대폰 안에 들은 정보가 염려되었다. 새것으로 교체하면서도 기존 휴대폰의 정보를 삭제하거나 지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 볼 수 없으니 그대로 안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서랍에서 잠드는 것이다.

폐휴대폰 1대 속에는 '평균 금 0.034g과 은 0.2g, 구리 10.5g이 함유' 되어있다. '금광 1톤당 약 4g의 금이 채취되는 반면, 휴대폰 1톤에서는 280g의 금을 채취할 수 있으며, 휴대폰 100대면 금 1돈을 캘 수 있다'(부천시 공식 블로그)고 한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폐 휴대폰 1대에는 '납 0.26g, 카드뮴 2.5ppm, 코발트 274ppm 같은 중금속이 포함돼 있다'라고 하니 어떻든 고이 모셔둘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단 두 가지만 나의 생활을 점검했는 데도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일단 미세먼지가 좋음인 날을 골라 햇볕에 소독도 하고 먼지도 털어주며 천연의 스타일러를 부지런히 이용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빨랫감들의 세탁 주기를 늘려보는 거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빨래하는 것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도 당장 자원순환센터로 보내야겠다. 더불어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은 쓸 수 있을 때까지 작정하고 수명을 길게 잡아야 할 것 같다. 더는 어떤 파괴나 폭력에도 일조하고 싶지 않다. 이참에 아예 휴대폰과 거리두기를 하며 책과 더 가까워지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 같고.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 (지은이), 자연과생태(2020)


태그:#휴대폰 사용주기, #미세 플라스틱, #빨래, #자원순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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