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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꺽정이
 고무꺽정이
ⓒ 국립수산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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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제철인 풍덕궁이

바닷가 사람들이 '풍덕궁이, 풍덩궁이'라고도 하고 '물망치'라고도 하는 바닷물고기가 있다. 생김새로 보면 아귀와 비슷해서 '아귀 사촌'이라고도 한다. 물론 아귀에 대면 한결 날렵하게 생겨서 인물로 치면 단연 아귀보다는 윗길이다. 아귀는 우리나라 어느 바다에서나 잡히지만 풍덕궁이는 동해안에서만 잡힌다. 못난이 삼형제라고 하는 곰치, 도치, 장치처럼 풍덕궁이도 겨울이 제철이다. 살맛은 아귀랑 비슷하지만 좀더 쫄깃하고 단맛은 난다. 탕으로 끓이면 시원한 곰칫국에 아귀의 살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시인 이동순도 풍덕궁이 맛에 끌렸던 모양이다. 그가 쓴 <물망치>(≪묵호≫, 시학, 2011)란 시가 있다.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이
안묵호에서 생선 팔던 우리 고모
시장 좌판에 곤지랑 횟대랑 물망치 늘어놓고
날마다 깡통에 피워 놓은
모닥불 쬐셨지 (뒤 줄임)
여기에 곤지, 횟대, 물망치가 나온다. 좌판에서 생선을 판다고 해놓고선 '곤지, 횟대, 물망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곤지'는 명태 뱃속에서 꺼낸 이리와 알, 내장을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달리 '고지'라고 한다. 흔히 명태 내장에서 나온 '곤이'나 '고니'라고도 하는데, 이때 곤이는 명태는 두말할 것도 없고 물고기 뱃속에 든 알을 말한다. '곤이'(鯤鮞)에서 '곤'(鯤)은 고기 '어'(魚) 자에 자손이라는 뜻인 '곤'(昆) 자를 보태 만든 글자인데 물고기 '알'이나 '새끼 물고기'를 뜻한다. 명태 암컷 뱃속에 든 알집이다. 알이 꽉 찬 것은 명태알이라는 뜻으로 '명란'(明卵)이라고 한다. '이리'는 물고기 수컷 배에 든 하얀 정액 덩어리다. 명태 배를 갈라보면 이리(정소), 애(간), 알집(곤이/고니) 따위가 있다. 뇌처럼 꼬불꼬불 주름진 것이 바로 '이리'다. 시에 나온 '곤지'는 명태 이리와 애, 곤이를 싸잡은 말로 '고지'인 셈이다. 고지는 명태 내장에만 쓴다.

딴 이름 한 물고기: 물망치, 풍덕궁이, 고무꺽정이

그리고 횟대, 물망치는 동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다. 물망치(풍덕궁이)는 머리가 크고 울퉁불퉁한 데다 혹 같은 가시도 돋아있다. 몸빛은 연한 회갈색을 띠는데 배 쪽은 더 연하고 옆구리에 어두운 점들이 있다. 몸통은 납작하고 배 쪽이 편평하며, 등지느러미가 두 개인데 서로 떨어져 있다. 35센티미터 정도로 자란다. 차가운 물을 좋아해서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살면서 게나 새우 따위로 주로 잡아먹는다.

앞서 말했듯 생긴 거야 이래도 기름기가 적고 살이 단단해서 얼큰하게 탕으로 끓이면 누구라도 좋아한다. 물망치(풍덕궁이)를 표준어로는 '고무꺽정이'라고 한다. 고무꺽정이라는 이름은 민물에 사는 꺽정이하고 닮았는데 점액이 많은 몸이 마치 고무처럼 탄력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혼자 생각이지만 민물 사는 꺽정이하고 구분할 요량이라면 '바다꺽정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귀 사촌이나 황아귀(아귀와 다르게 몸빛이 갈색이라서) 같은 이름은 어땠을까. 예전에는 다른 고기를 잡다가 흔하게 걸려 올려와서 욘석 때문에 그날 조업은 다 '망쳤다'고 해서 물망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물망치를 잡아봐도 너무 흔해서 값이 지나치게 헐했기 때문이다. 어부들 처지에서 보면 힘은 힘대로 쓰고도 푼푼한 댓가는 없으니 그닥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거다. 그래서 물텅벙이처럼 바닷물에 내던지면 '풍덕궁' 하고 떨어진다고 해서 '풍덕궁이', '풍덩궁이'라고 했다고 한다. '풍덕궁'(소리흉내말)에 이름씨 뒷가지 '-이'가 붙어 만든 말이다.
 
사전이 버린 말 풍덕궁이와 물망치
 사전이 버린 말 풍덕궁이와 물망치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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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는 앎과 삶의 주인이 되는 일

살갗이 끈끈한 점액으로 덮였는데 보기하고 딴판으로 탱탱하다 해서 '고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몰라도 고기를 잡고 음식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물망치'나 '풍덕궁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이름조차 찾을 수 없다. 

세상 온갖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단순한 이름 붙이기를 넘어 환경을 알아가고 자기 삶과 앎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 아니겠는가. 이름 모를 물고기를 잡았다는 말과 풍덕궁이를 잡았다는 말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크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머릿속에 고유한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까지 바닷가 사람들이 만들어온 이름을 깡그리 무시하고 책상물림들이 붙인 이름을 쓰라는 건 누가 봐도 폭력이고 야만이다. 굳이 말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름 지으려는 대상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이미 쓰는 사람의 삶의 모습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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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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