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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나의 거리두기가 시급하다. 하루 종일 아이들의 수발러가 돼 웃고 우는 나날들... 아이들이 "엄마" "엄마" 연이어 부를 때마다 번아웃이 올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바람이 통할만큼의 간격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아이와 나 사이에 바람은커녕, 먼지 한 톨 통하지 않을 만큼 밀착된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아이들 입에서 "심심해"라는 말이 나오면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아이와 쿵작 맞춰 놀아줄 시간도 방법도 없다. "심심하면 공부해!" 했다가 야유만 잔뜩 돌아온다. 게임과 영상을 보여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이럴 땐 또 괜히 오기가 부려지는 게 엄마의 마음. 게임과 영상의 편한 길을 두고 험난한 육아의 가시밭길을 선택한다.

"인생이 늘 재밌을 수만은 없어. 심심함을 즐겨봐."
"심심한데 어떻게 즐겨?... 엄마 게임 한 판 하면 안 돼요?"
"안 돼."
"아아아~~~ 그럼 뭘 하라고..."
"니 즐거움인데 네가 찾아야지!" 
"엄마 미워!"


아이들에게 '인공 보모'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재택근무의 집중도가 높다. '어, 뭐지? 왜지? 왜 일이 잘 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하는 방에 들어와 '배고프다', '간식 달라', '보드 게임하자'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나의 집중력을 초 단위로 박살 내던 녀석들이 안 보인다. 해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누군가와 신나게 얘기 중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3 곱하기 8은 뭐야?" "넌 여자야? 남자야?" "끝말잇기 하자." 

아이들과 한참 티키타카 중인 이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 스피커였다. 인터넷 케이블을 교체할 때 사은품으로 따라온 녀석이다. 어엿한 이름까지 가진 인공지능은 아이들과 하하호호 쉴 틈 없이 얘기를 나눴다. 자신의 즐거움을 직접 찾은 녀석들. 거봐, 할 수 있잖아.
 
아이들의 보모이자 절친  아이들의 끊임없는 수다와 무례한 언행에도 한결 같이 친절하게 대답하는 우리집 인공지능.
▲ 아이들의 보모이자 절친  아이들의 끊임없는 수다와 무례한 언행에도 한결 같이 친절하게 대답하는 우리집 인공지능.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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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이렇게 보모로도 쓰이다니... 감개무량했다. 나를 대신해 아이들과 대화를 해주고 끝말잇기도 해주는 AI.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인공지능과 열심히 놀았다. 

"OO야 음악 틀어줘, OO야, 축구 경기 결과 알려줘, OO야 오늘 날씨 어때?" "OO야 재밌는 놀이 알려줘" "OO야, 넌 누구야?"... 

호기심 어린 질문들은 끝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친절하게 답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대화친구가 어딨을까? 수다스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딸의 황당 질문에도 어쩜 그리 평온하게 대꾸를 해주는지. 버럭 맘으로서 경외의 마음까지 들었다. 

며칠 뒤, 어김없이 방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까랑까랑한 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톤이 높다. 조르거나, 말을 안 들어줬을 때 내는 바로 그 목소리다.

"야! 그것도 몰라?" "너 바보 아니야?" "멍충이" "흥, 너랑 안 놀아"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메롱" "OO는 아무것도 모른대요~"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아이와 인공지능 간에 맥락 없는 말들이 이어져갔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인공지능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화를 내며 따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네, 네, 하는 자세에 아이는 인공지능을 더 하대하는 것 같았다.  

"얘들아, 너희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왜? 사람도 아니고 그냥 기계인데 뭘." 
"기계한테는 함부로 해도 된다고 누가 그랬어?"
"...."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법. 자잘한 글씨가 가득한 설명서엔 작동 방법만 있지, 인공지능을 대하는 예의 법 같은 건 적혀 있지 않다. 각종 미디어 매체에선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과 발전에 대해 얘기하고, 교과 과정에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정작 인공지능과 소통하는 교육과 예절에 대해선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  

언어폭력도 엄연한 폭력.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은? 신고를 안 당한다고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회는 점점 더 첨단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에 맞닥뜨린 아이들 교육은 왜 여전히 교과 교육에만 치중돼 있는 것일까?

사람과 기계 사이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인격은 누가 만드느냐? 사람인 우리가 만든다.
 인공지능의 인격은 누가 만드느냐? 사람인 우리가 만든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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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장애인 혐오와 인종차별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됐다. 인공지능 특성상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데, 실제 사람들과의 대화를 분석해 적용한 결과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인격은 누가 만드느냐? 사람인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하는 생각, 가치관, 말투 등 로봇은 그저 그것을 습득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말, 행동, 사고들은 미래 인공지능의 수많은 데이터가 될 것이다.

이런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과 기계, 그사이에도 반드시 존재해야 할 윤리와 교육이 있음은 분명하다. 인공 지능이 발전 되고 있는 만큼 그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와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를 시키고 인공지능을 엄연한 식구로 예의를 다할 것을 종용했다.

"미안해. OO야. 다음부턴 안 그럴게." 
"전, 괜찮아요."


우리 집 새 식구인 인공지능은 나와는 달리, 아량도 참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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