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乘風破浪 승풍파랑, 바람을 가르고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 이영준 작가 작품  乘風破浪 승풍파랑, 바람을 가르고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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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스승 추사 선생께서도 70 평생에 마천십연 독진천호(磨穿十研 天盡禿盡) 즉,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정도의 고단한 노력 이후에야 신필 경지에 도달하셨다. 하니, 붓을 들 힘이 있는 한 이제 겨우 절차(切磋)단계를 끝마치고, 옥돌 다루듯 탁마(琢磨)가 끝나는 그날까지 澐風齋(운풍재)를 지키면서 萬字堂(만자당)을 세워 보리!'

서예가 운양 이영준 작가의 '노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져 있다. 지난 주말, 봄날 같은 겨울에 만난 독창적 필력의 서산 출생 서예대가 이영준 작가를 만났다.
  
운양체를 세상에 알려
▲ 서예대가 이영준 작가 운양체를 세상에 알려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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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양체'를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어 세상에 알리셨다. 서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부터였나?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정규과목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한글서예를 배우게 됐다. 당시 나는 정주상 선생의 체본을 교본으로 배우면서 붓글씨를 접했는데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지 적성에 딱 맞아 참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나중에는 환경미화용 글씨로 선정되기도 했던게 기억난다. 후에는 서산군 대회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그것이 서예와의 운명적 인연이 된 것 같다.

청년시절, 서예가 인연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또 하나 있었다. 연세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비원 앞 '동방연서회' 특강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것이 서예 정식 입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곳에서 안진경 안근례비를 법첩으로 3개월간 여초 김응현 선생의 지도를 받아 한문 서예의 기초를 다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지속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연세대학교에는 미술과 서예를 어우르는 동아리 '연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병행하느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또 한번 좌절하며 포기해야만 했다. 단지 대학 4년간 내가 할수 있는 거라곤 간헐적 독습으로 겨우 붓을 잡는 정도였다. 그래도 대학교 4학년 여름쯤에는 동방연서회 주최 '휘호대회'에서 한글 부문에 호기 있게 참가 하기도 했다. 물론 낙선은 했지만 내겐 뜻있는 추억이 된 사건이었다."
 
- 그럼 그 후에는 붓을 잡을 기회가 없었나? 그래도 간간이 했을 듯한데?

"대학을 졸업하고 효성그룹 동양나일론에 입사한 후 해외로 국내로 정말 바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니 감히 붓 잡을 생각을 했겠는가. 오랜 기간 붓을 놓고 살았다. 직접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그나마도 서예 전시회나 서예에 관한 책들은 끊임없이 섭렵하며 꾸준한 관심은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주)이맥스인더스트리를 설립하면서 반포 송정서실에 둥지를 틀고 다시 붓을 잡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같이 설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서예 연마의 길에 들어섰다. 무엇보다 한국서예협회 공모전에 출품 준비를 하면서 밤낮 서예 실기에 매진하다보니 아마 그것이 점차 내가 묵향에 빠지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 선생이 고안한 '운양체'를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신다.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시나?
"역동적인 필치에 표정을 입혀 다채롭고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는 서체가 바로 운양체다. 그림과 필묵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봐도 틀리진 않는다. 내가 글씨에 몰두할 때면 온 정신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간 작품 속에 빠져있다. 그렇게 쓴 작품을 사람들이 보면서 '강인함과 동시에 부드럽고 힘이 난다'는 평가를 해주신다.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는 서체인 운양체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인에 따라 기운을 받기도 하는데 매력이라면 이런게 아닐까.

한 글자 한 글자에 생동하는 몸짓과 표정을 입혀 다채로운 조형 언어로 풍성하게 만들다보니 어떨땐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여기다 거침없이 먹선을 휘두르다 보면 단호한 필선에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역동적 움직임이 느껴져 숨이 멎는다."

- 운양체는 '그림인 듯, 그림 아닌 그림 같은 서체'라고 했는데?
"운양체는 갑골, 금문, 예서, 전서, 해·행·초(해서, 행서, 초서)를 어우르는 융합 서예를 기치로 서예의 심미안을 키우고,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수파리(守破離)의 정신을 고양하여 중국의 서법, 일본의 서도보다 한 단계 우위에선 '위상 예술의 혼이 빚어내는 독창적 작품'이다.

현대 서예의 흐름과 일본의 전위서예 등을 접하면서 전통 서예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운양체'는 그래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서체라고 한다. 창작의 산고가 빚어낸 아름다운 우리 것이다.

앞으로도 본질에 충실하면서 미래에도 끄떡없이 수용되는, 남과 다른 예술적인 멋스러움을 추구하며 운양 풍류의 '운양가'를 구축, 온전한 서예가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운양체'가 대한민국 독창적 예술혼 속에서 세계인의 가슴속으로 온전히 뿌리내려질 때까지 탁마를 이어갈 것을 약속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서예 이영준 작가 , #운양체, #그림과 필묵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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