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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에 사랑이 있었다면 우리의 코로나 시대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전염병으로 계속해서 어딘가에 묶여있어야 했던 우리는 시선을 묶어둘 무언가를 찾아 세렝게티 대신 집안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맞이한 2021년 새해에도 이불 밖은 위험하고 당분간, 이 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오늘도 거리두기로 서로의 안전을 절실히 바라는 우리를 위해 2020년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정리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이건 다난하게 시작된 우리들의 20년대에게 보내는 연서다.[편집자말]
OTT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양질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지금은 브라운관만을 바라보던 과거와는 다르다. 요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방송국이 정한 프로그램만 담을 수 있는 급식이 아니라 시청자가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호텔식 뷔페다.

지난 몇 년 간의 콘텐츠 경쟁 상황에서 메인 방송사들은 자극적인 반찬을 차리는데 열심이었다. 웃음이라면 누군가의 불편쯤이야 알 바 아니라는 듯, 마라 맛 타이틀에 중독된 간판 예능들은 보증된 자극성에 기댔다. 혐오발언, 소수자 차별발언, 가학적인 연출 등 끊이지 않는 논란에 분노와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들은 서서히 브라운관을 등졌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다고 했던가. 총체적 난국인 한국 예능 속에서 마라 맛을 등지고 올해의 프로그램으로 우뚝 선 순한 맛 예능이 나타났다. 한때 국민 예능이었던 KBS의 '1박2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박2일 시즌 3'가 출연자 정준영의 성범죄, 차태현과 김준호의 내기골프 논란으로 12년간의 국민 주말 예능 자리를 내려놓았다. 사실 이전에도 시대착오적인 연출은 늘 논란이었다. 2016년 이미 불법 촬영 혐의가 있었던 정준영이 불기소처분되자 곧바로 시즌에 복귀시키는 과오를 범했고, 모닝 엔젤이라는 칭호로 여성 연예인을 출연시켜 멤버들을 깨우는 등 착실히 '남초예능'을 구현해냈다.

수많은 논란과 함께 사실상 국민 예능이었던 1박2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2019년 12월, 1박2일 12년의 역사상 최초로 여성 PD가 지휘봉을 잡은 시즌 4가 출항했다. 굵직한 예능인을 섭외하는 대신, 당시 연극계 아이돌로 이제 막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던 김선호와 국민 도둑이라는 별명이 익숙한 한가인의 남편, 연정훈을 선택했다.

김종민, 문세윤, 딘딘, 라비를 포함한 시즌 4 멤버들은 그동안 예능이 자행해온 마라 맛의 무엇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시즌 4의 항해는 큰 우려와 함께 시작됐다. 그 구성으로 '국민 예능'을 탈환할 수 있어? 출항 후 1년, 2020년 KBS 연예대상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1박2일 시즌 4'가 선정되면서 모든 우려를 잠식하고 주말 밤을 책임지는 국민 예능의 귀환을 화려하게 알렸다. 
 
 2020 KBS 연예대상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고 있는 방글이PD/ 시즌4의 연출 예시
 2020 KBS 연예대상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고 있는 방글이PD/ 시즌4의 연출 예시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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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4의 성공에는 연출자인 방글이 PD와 작가진을 포함한 제작진의 노력이 중심을 가득 채운다. 혐오와 웃음 사이를 아슬하게 줄 타는 출연진들의 과도한 언행은 찾아볼 수 없고, 가학적으로 과장된 '버라이어티 정신'은 내다 버렸다.

멤버들이 게임으로 얻어낸 커피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텀블러에 담아서 제공되고, 게임에 사용된 밀가루는 그날 저녁 요리로 재활용된다. 폭우에는 출연진이 몸을 내던져 슬랩스틱 코미디로 한 회를 채웠던 과거와는 달리 시즌 4는 실내촬영으로 변경하거나 과감히 촬영을 접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방'이라는 애칭으로 PD를 찾는 출연진과 제작진 사이에는 불필요한 긴장감 대신 화기애애한 동료애가 더 많이 느껴진다. 웃음을 담보로 잡고 행해진 이전 '남초예능'의 불편한 그것이 방글이 PD의 시즌 4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편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주말 저녁 예능이다. 마라 맛이 아니어도 너무 웃어서 갈비뼈가 뻐근해져 오는 예능은 충분히 가능했던 것임을, 1박2일은 진짜 국민 예능이 무엇인지 제대로 증명해냈다.
  
 1박2일 시즌4는 멤버들의 다양한 관계성에서 재미를 찾는다.
 1박2일 시즌4는 멤버들의 다양한 관계성에서 재미를 찾는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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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간의 흥미로운 관계성을 재료로 매번 웃음 특선을 선보이는 제작진의 능력에 우리는 기꺼이 소파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기립박수를 보낸다. 시청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과도한 예능인의 퍼포먼스에서 벗어난 시즌4 멤버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중소', '역부족과 덜부족', '라비와 라지', '딘선' 등. 그들은 기량과 성격, 취향의 차이에서 나오는 '다름'에 집중하고 그 다름을 토대로 예능의 화음을 쌓아낸다.

'1박2일 시즌4'는 '다름'을 지적하거나 희화하지 않고 그 인물만의 매력을 찾는다. 구성원간의 애정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과도한 자극점이 없어도 충분히 맛깔나는 한 상을 차려낸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예능과 웃음의 본질에 대한 무거운 책임의식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1박2일 시즌 4의 이미지는 완벽하리만큼 예능적이다.
 
 제작진이 등장해 멤버들과 함꼐 게임을 하고 화면 속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제작진이 등장해 멤버들과 함꼐 게임을 하고 화면 속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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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PD는 복불복 게임과 여행지 탐구 과정에서 제작진도 이 프로그램의 일원임을 계속해서 노출했다. 담당 멤버의 퇴근을 함께 기도하는 스태프들, 맛있는 음식을 획득하지 못한 멤버를 향한 안쓰러움과 아쉬움까지.

1박2일이 떠난 모든 여행은 마치 출연진과 제작진이 함께 떠난 MT 같았고, 제작진은 방구석 1열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까지도 늘 함께 챙겨 여행을 다녀왔다. '몸은 비록 이곳에 두었지만 내 영혼은 그들과 함께하고 있지...' 코로나 시국에서 여행과 일상을 포기한 우리에게 1박2일은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논란과 불편함 없이 잘 굴러가는 중이라 정말 다행이다. 출연진은 농담삼아 서로에게 '이 멤버 중 누구 하나 사고 치면 가만두지 않겠다.' '시청자분들 걱정마세요!'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느새 한국 예능판에 기본값이 되어버린 남성 출연진의 아슬아슬한 도덕성 줄타기를 향한 경고처럼 느껴져서 통쾌하기도 하다.

그래, 논란 없는 출연진과 논란 없는 연출. 그게 방송의 기본값이었지. 우리가 여태 본 건 마라 맛 예능이 아니라 기본을 못 해낸 부족한 예능이었구나. 웃지 못하는 내가 프로 불편러가 아닌 기본을 아는 시청자였어.

그렇게 보니 사실 그리방 예능은 순한 맛이라는 칭호보다는 장르 내 최강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진짜 실력이라는 평가가 더 적합하다. 그리방! 새해에도 한국 예능을 잘 부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고함20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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